문학/사상: 바다정동(2025년 12호)
문학/사상 편집위원회, 조성백, 윤인로, 김건우, 김대성 | 산지니
13,500원 | 20251031 | 9791168615397
▶ 바다정동, 바다라는 미디어
주류 담론에 반격을 가하고, 담론의 지형을 재구축한다는 취지로 2020년 6월 창간한 반년간 문예비평지 『문학/사상』이 12호를 맞이하였다. 이번 12호는 ‘바다정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며 바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주목하였다.
구모룡은 「바다를 감각하고 사유하는 방법」에서 ‘대양의 느낌’을 매개로 바다를 감각하고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바다를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감정과 사유, 문명과 존재가 맞물리는 복합적 장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구모룡은 이처럼 바다를 감각과 사유의 원천으로 재위치시키며, 기술과 상품화로 인해 잊힌 바다의 숭고와 유동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번 글은 바다를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세계 감각과 미학적 사유를 모색하는 시도로 읽힌다.
전솔비는 「바다라는 미디어: 다른 방식으로 듣기를 연습하는 동시대 미술」에서 바다를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매개적이고 관계적인 미디어로 바라본다. 그는 바다의 비가시적 소리와 움직임, 흐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려는 동시대 미술의 시도를 통해 인간 중심의 인식 방식을 넘어서는 예술적 실천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예술이 세계와의 공존을 모색하고, 다른 존재들과의 새로운 감각적 소통 방식을 연습하는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현장-비평 「궐위(闕位)의 크리틱: 12·3에서 6·3까지의 협로 위에서」에서 윤인로는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한국 사회를 ‘궐위(闕位, interregnum)’의 시공간으로 비평한다. 국회 앞에서 군용차를 막아선 시민의 영상은 민주주의의 위기 속 ‘지금-이미지’로 제시되며, 벤야민과 디디-위베르만의 사유를 빌려 위기 속 정치적 각성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또한 세월호·이태원 참사를 겪은 세대의 감각이 민주주의를 몸으로 증명하는 힘이 되었음을 짚고, 생명과 안전이 정치의 최종 기준임을 강조한다.
▶ 돌봄, 성장, 도시, 젠더, 말: 문학과 비평으로 읽다
시에는 김형술, 김혜영, 송재학, 유선혜, 채수옥의 신작 시를 각 2편 수록하였다. 소설에 수록된 이정임의 「외롭고 고요한」은 병든 고양이와 아픈 아버지를 돌보는 ‘유진’의 하루하루를 따라가며, 가족 간의 책임과 거리, 그리고 관계의 회복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삶을 버티는 인물의 내면을 통해 돌봄과 생존의 의미를 묻고 있다.
조성백의 소설 「콘크리트 벽과 푸닥거리」는 ‘소리’와 ‘기억’이 교차하는 불안한 현실과 무의식을 탐색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혁은 새벽마다 원룸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웅성거림’에 시달린다. ‘벽의 웅성거림’은 사고의 잔향이자 죄책감의 메아리로, 소설은 기억·죄의식·무의식의 경계를 허물며 현실과 악몽의 층위를 넘나든다.
서평에서 김건우는 「끊임없이 모색하는 좌표와 마지막 말: 『최인훈의 아시아』라는 보조선」에서 장문석의 『최인훈의 아시아』를 통해 최인훈 문학의 핵심을 ‘교차와 좌표’의 사유로 읽는다. 『광장』의 이명준을 중심으로 한 ‘꿈과 현실의 교차’는 ‘한반도–아시아’로 확장되며, 이는 식민과 냉전의 질서를 전도하는 탈식민적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김건우는 이를 통해 최인훈 문학이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 인식의 지점을 모색하는 사유의 여정임을 밝힌다.
김대성은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소설 속 ‘곁이 없는 세상’을 응시한다. 이번 소설집은 팬데믹 이후의 고립과 단절 속에서 ‘곁 없음’을 그린다. 그는 김애란의 소설집이 새롭게 재편되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며 동시에 ‘곁’이 마모되고 있는 중에도, 여전히 타인에게 닿으려는 인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로 읽는다.
장영은은 『작업장의 페미니즘』(이현경)을 읽으며 남초 현장에서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한 여성의 변화 과정을 조명한다. 이현경은 오랜 기간 여성성을 지우고 ‘명예 남성’으로 살아왔으나,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을 학습하며 노동조합 내 젠더 불평등과 구조적 차별을 비판하는 연구자이자 실천가로 나아갔다. 장영은은 이현경의 작업을 여성 노동자가 자기 경험을 이론으로 세우는 ‘자기이론’의 실천으로 평가하며, 여성 노동자 페미니즘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고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