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큰글자도서) (야외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
이원영 | 글항아리
40,500원 | 20250915 | 9791169094290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를 첫 책으로 극지동물 이야기를 해온 지 8년, ‘펭귄 박사’ 이원영이 『와일드: 야외생물학자의 동물 생활 탐구』로 돌아왔다. 이번엔 펭귄 얘기만 하는 게 아니다. 극지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미생물에서 유인원까지 종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집 앞 가로수에서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깊은 바다(마리아나해구)까지 서식지도 가리지 않는다. 제목부터 『와일드』인 이 책은, ‘야생’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장소를 현장 삼아 그곳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온갖 동물의 분투기를 다룬다. 그 각양각색의 삶은 진화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꿰어진다. 이 관점 아래선 생김새 하나 행동 하나가 모두 질문하고 해석할 코드가 된다.
동물이 살아 움직이는 곳,
그곳이 현장이다
“동물은 한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자유로이 움직인다. 따라서 동물이 살아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야외생물학자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 그곳이 어디든, 동물이 나를 찾아와주지 않으니 내가 동물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9) 어린 시절 잠자리와 매미를 잡겠다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소년은 이제 전 지구로 탐색 범위를 넓혀 남극에서 펭귄을, 북극에서 기러기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동물을 만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곤충을 채집하며 기뻐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는 펭귄을 포획하며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고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한다. 살금살금 조심스레 다가가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그의 눈앞에서, 동물들은 먹고 자고 쉬고 놀고 싸우고 사랑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관찰자의 눈’은 그렇게 생겨난다.
저자도 이것을 그냥 가지게 된 건 아니다. 더 이상 ‘그릇된 사랑’으로 동물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책으로 호기심을 채우며 동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그는, 조상들과 선대 연구자들이 쌓아온 과학적 지식으로 동물을 만나는 법을 배웠다. 쇼베동굴의 벽화를 그린 크로마뇽인, 진화생물학의 시초가 된 찰스 다윈, 처음 동물행동학자가 되겠단 꿈을 갖게 해준 제인 구달…… 그리고 이제는 지구 곳곳에서 최첨단 기술로 동물행동의 새로운 비밀을 밝혀내고 있는 동료 과학자들까지 모두가 스승이다. 직접 이름을 붙여준 연구동물인 젠투펭귄 ‘남극이’와 ‘세종이’도 과학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만났다. 이 책은 이렇게 동물을 만나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며 비로소 관찰자의 눈을 갖게 된 학자로서 그의 여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야생동물을 제대로 만나기 위한 동물행동학의 기본과 응용, 그것의 이 책의 핵심이다. 독자가 야생의 세계에 발을 들여 자기만의 탐험을 해내갈 수 있도록, 동물행동학자가 되기까지 배우고 익힌 과학기술과 지식, 오늘날 그와 동료들이 최전방에서 밝혀내고 있는 새로운 사실들,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터득한 태도와 요령을 모두 녹여냈다. “이것을 알면 야생동물을 전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만날 수 있고, 나아가 그들과 특별하게 연결될 수도 있다”(15)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동물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과 방법을 다룬다. 동물행동학의 주요 주제인 생존과 짝짓기, 이주, 공생, 먹이 활동과 휴식을 비롯해 의식과 감정, 인지 능력과 의사소통까지 두루 살펴보면서, 오늘날 동물 삶의 위기와 직결되는 주제인 동물윤리와 기후위기 문제도 논의해보고자 했다. 그 여정에는 미생물부터 유인원까지 다양한 동물이 등장하지만,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은 펭귄을 비롯해 내 연구종들이 속한 조류다. 이 책에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사례가 언급되는데, 이들을 따라가다 보면 동물행동학의 큰 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현장에서 사용하는 동물행동 연구의 새로운 방법들을 상세히 소개해보았다. 이 대목에선 바이오로깅으로 펭귄을 비롯한 극지 동물의 잠수행동과 의사소통, 수면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드론으로 흰죽지꼬마물떼새 둥지를 찾거나 분홍발기러기를 추적하는 과정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_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