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시어도어 M. 포터 | 한울
35,100원 | 20210507 | 9788946080119
우리는 숫자의 홍수 속에 살면서 맹목적으로 숫자를 숭배하고 있지는 않는가?
숫자의 유용성을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동반하는 ‘얇은 사회’의 약점을 넘어서야 한다
어원학적으로 ‘통계(statistics)’가 ‘국가의 과학(science of the state)’을 가리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숫자는 근대국가의 전개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 세계 전체에서 그리고 개별 국가들에서 인구, 국민총생산, 실업률 등의 숫자는 사람들의 사회적 삶을 집약해 표현할 뿐 아니라 온갖 의사결정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런 추세에서 예외가 아닐뿐더러, 숫자의 사용에 맹목적인 ‘수량 열광(quantifrenia)’을 보이고 있다. 간단한 사례로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모든 학생을 국가가 시행하는 단일의 시험에서 그가 획득한 ‘숫자’에 따라 등급 매기는 일을 50년 넘게 지속하면서도, 그것을 교사의 판단이나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숫자 사용의 확대와 심화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 일반에서 진행된 변동이었지만, 이 책이 보여주듯 그 과정이 사회의 마찰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숫자의 사용은 대체로 권력자들의 재량을 숫자 생산의 엄격한 규칙으로 제한함으로써 결정에서 자의성을 제한하려는 싸움 속에서 증가했다. 다양한 권력과 이해관심을 가진 사회세력들이 참여하고 논쟁하면서 숫자 생산의 규칙을 제정하고 그 규칙을 실행하는 제도들을 설치했다. 그러한 개방성이 숫자 생산의 규칙과 그 규칙에 의해 생산된 숫자의 중립성과 ‘기계적 객관성’을 보증하고 보호했으며, 그러므로 숫자는 일정 정도 민주적이고 합의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식민지 통치에서는 숫자 사용의 확대를 가져온 사회적 요구들을 제국주의의 물리적 폭력으로 질식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숫자 사용에 필요한 사회적 준비와 조정 없이 따라서 관련된 제도적 장치와 인식의 형성을 결여한 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실행되었다. 특히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숫자 사용이 생산의 제고, 효율적 분배, 재생산 기제의 안정적 유지, 사회적 위험 관리 등을 목적으로 했다면, 식민지에서의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민과 자원의 수탈과 통치의 효율을 겨냥했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구미 나라들보다 뒤늦게 식민지 침탈에 가담한 일제는 1910년 조선을 침탈한 후 인구, 토지, 산업 등에 대한 여러 형태의 대규모 경제조사들과 사회조사들을 실시하고 기록하면서 수량화와 계수화를 광범하게 도입했다. 그것은 식민지 수탈과 동원을 위한 사람과 자원에 대한 정보 수집의 도구였을 뿐 아니라, 조선의 기존 사회질서를 식민지 통치에 적합한 수량화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것으로 굴절하고 재편하며 인민을 길들이고 정당화하는 장치였다. 식민지 통치는 조사 항목들을 통해 인민의 삶의 영역들을 변경하고 수량화와 계수화를 통해 그것들을 계산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것으로 주조했다. 게다가 일제는 이 과정을 행정기구와 헌병경찰을 동원해 폭력적·돌진적으로 강제함으로써 숫자 사용을 협상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변동으로 만들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군부 쿠데타 세력이 주도한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숫자 사용의 형태와 내용을, 아마도 수탈과 동원의 목적의 순위는 바뀌었겠지만, 더욱 강화하고 확대했다. 권력자들과 (그들의 대리인이나 손발 노릇을 하는) 전문가들은 수량화를 식민통치의 도구로 사용하던 유산을 답습하여, 자신의 권력행사에 적합한 숫자 생산의 규칙을 선제적·일방적으로 제정하고 강제하면서 그렇게 생산한 숫자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압박했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숫자는 민주적이고 합의적인 성격은 거의 획득하지 못한 채 권력의 재량과 자의를 정당화하는 무기의 성격이 훨씬 더 강했다. 계산 가능한 사회질서와 원격 통치는 확고하게 정착했고 숫자의 지배 정당화 효과는 ‘자연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정당성이 취약한 정치권력은 숫자에 의존하는 ‘의심하는 신뢰’를 의도적으로 과도하게 활용했다. 숫자 사용은 이 책의 표현으로 ‘권력-재량’이 아니라 ‘권력+정당성’이었다. 군부 권위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에도 숫자 사용의 이런 전통은 약화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양하게 분출하는 사회적 요구들을 조정하려는 목적에서 숫자의 기계적 객관성과 몰주관성을 강조하며 숫자 사용을 확대함으로써 ‘숫자 숭배’를 촉진했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질서의 전면적 확장과 침투는 사회적 삶의 모든 요소들을 계량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교환가치와 화폐 숫자로 환원하며 수량화를 니콜라스 로즈(Nikolas Rose)의 표현으로, “영혼의 기술들(technologies of the soul)”로 만들었다. 그리고 사회적 삶의 수량화는 객관성, 정밀성, 합리성, 책임성, 효율성 등을 결합하면서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숫자 없는 세계나 숫자 밖의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숫자의 지배력은 보편적이고 공고한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숫자’의 사회적 생산과 사용에 관한 학술적 관심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책은 이런 학술 현실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다. 이 책에서 저자인 포터는 숫자가 객관적인 용어로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수량적 전문지식의 확산이 ‘기계적 객관성’의 추구에서 기원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공공적 활동에서 전문성을 표상하고 몰주관성을 증거하는 숫자의 권위는 과학과 공학의 성장에 의존해 자리 잡았지만, 수량화의 공공적 역할은 과학적 및 기술적 발전으로 환원할 수 없는 사회적 및 정치적 발전을 반영한다. 즉, 숫자의 사용은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동반하는 ‘양날의 검’이며, 따라서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은 오랜 사회적 갈등과 협상의 과정을 거쳐 그것의 긍정적 효과를 활용하고 부정적 효과를 제어하면서 숫자와 수량화의 권위를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