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수국 프로젝트 (경제를 일으켜 조선을 구하다)
장한식 | 산수야
14,400원 | 20181116 | 9788980974436
미칠 만큼 집요하고 죽을 만큼 인내했던 수국(水國)의 지배자,
전시에 경제를 일으켜 조선을 구했던 경제 전문가,
이순신을 새롭게 만나다
는 ‘수국’의 건국과 명멸을 담은 역사서이다. 즉, 이순신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이룩한 수국의 성과가 훗날 어떤 모양새로 계승되는지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본 책이다.
혹자는 ‘수국도 좋지만, 또 이순신이냐?’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순신이라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순신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순신이 살았던 치열한 삶의 여운(餘韻)이 과거종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방략(方略) 탐구로 언제나 승리했던 불패(不敗)의 리더십, 인습이나 전통에 매몰되지 않는 현상 변경의 지도력, 창조적 상황 대처 능력은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던진 고독한 사나이의 일생, 보람과 슬픔, 고통과 자기절제의 삶은 후인(後人)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전시에 장수의 몸으로 산업을 일으켜 백성들의 살 길을 열었던 이순신의 웅략(雄略)에서 독자는 오늘의 위기에 대한 해법도 시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의 나라, 수국(水國)과 이순신
‘물 위에 뜬 나라’가 있었다. 한반도에 역사가 생겨난 이후 가장 엄혹했던 시절, 버려진 해변과 섬, 바다 위로 쫓겨난 백성들로서 이룩한, 작지만 굳센 공동체였다. 조선국 안의 또 다른 나라, 가칭하여 ‘수국(水國)’이었다. 7년 전쟁이라는 일대 혼란기에 불꽃처럼 생겨났다가 종전과 함께 왕조체제 안으로 녹아들어간 ‘군·산·정(軍·産·政)복합체’가 곧 수국이다.
수국을 세운 사람은 이순신이다. 수국은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 배경이 되었다. 7년전쟁의 기간 동안 조정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눈을 돌린 것은 ‘경제’였다.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경제’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둔전책’을 통해 버려진 땅을 일궈 백성과 군사를 먹여 살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다 농사’를 본격화하였고, 국내외 해상무역에 나섰으며, 공업 생산력을 확충하였다.
이순신이 강한 적과 싸워 언제나 이길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수국, 즉 전쟁의 물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수국이라는 명칭은 저자가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평소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다음은 이순신이 한산도 군영을 ‘수국’에 비유한 한시(漢詩)이다.
閑山島夜吟(한산도야음 : 한산도의 밤에 읊다)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수국(한산도)에 가을 햇살 저무니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군진 높이 날아가네
憂心轉輾夜(우심전전야)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殘月照弓刀(잔월조궁도) 새벽달은 활과 칼을 비추는구나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
이순신은 분명 싸움을 잘한 명장이다. 7년이라는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과 스물세 번 싸워 모두 이겼다는 설(23전 23승)이 정설처럼 통한다. 이순신은 탁월한 전략 전술로 한산·명량·노량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나라를 망국의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이순신을 단순히 ‘전쟁 기술이 좋은 무장(武將)’으로만 규정한다면 그의 진가를, 그의 삶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제는 이순신을 바라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당시 일본은 이순신의 함대보다 몇 배나 많고, 몇 배나 부유한 상대였다. 그런 강력한 적과 싸워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근본적 배경을 탐색하는 일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룩한 공적은 참으로 웅장하였지만, 알려진 것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이순신의 성과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책의 본질적인 의미도 여기에 있다.
는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 준다. 저자는 이순신을 전투에 능한 군신(軍神)이라기보다는 버려진 해변의 빈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세운 대(大)경제인이자 건국영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창업군주에 가까웠던 이순신…….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바닷가의 어리고 작은 나라 수국은 장군의 죽음과 함께 체제 안으로 소멸되었지만 한국과 동양의 역사에 긴 여운을 남겼다.
이순신은 ‘바다를 버린 왕국’ 조선에 해양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가 세우고 아꼈던 ‘물나라, 수국’은 종전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계승되며 우리 해양문화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훗날 식민지로 조락했던 그의 조국이 해양강국으로 재기하는데 있어 정신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깊고 푸른 역사는 이 책의 속편 격인 에서 저자가 자세히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