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의 모든 비밀 - 동이한국사1
이기훈 | 퍼플
0원 | 20140104 | 9788924012620
‘동이’라는 말의 원 뜻은 ‘해 뜨는 곳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이와 수천 년 동안 전쟁을 하던 중국 내륙 사람들은 동이를 ‘적’ 또는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 결과 동아시아에서는 지금까지도 동이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고고학적 발굴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중국 최초의 문명이 이들 ‘동이’에 의해 주도되었던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한국은 고대 중국 동부 문명인 동이(東夷)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나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왜 한국이 동이 문명권에 속하는지, 왜 중국인들은 고대로부터 수천 년간 우리를 동이라 불렀는지, 중국 동부의 고대 동이와 우리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1만 년 전 신석기시대 이후로 중국은 서쪽의 화하계와 동쪽의 동이계 사람들의 각축장이었다. 그들은 서로 인종과 풍습,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섞이지 못하고 수 천 년 간 다투게 된다. 그러다 기원전 11세기에 서쪽의 화하계 나라인 주나라가 중국 중부를 장악하게 되고, 이로 인해 동쪽의 동이계 사람들은 중국에서 점차 동쪽으로 옮겨가거나, 피지배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북경대의 원강(袁剛) 교수는 이러한 ‘동이’의 후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현대 언어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동이(東夷) 각 부족은 모
두 알타이어계, 퉁구스어계 사람들로, 종족 상 서로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 중, 거란, 실위, 해(奚), 습(?)은 동호계통에 속하는데, 그들은 과거 오환, 선비, 유연, 이후의 몽고와 같은 종족이었다. 고구려는 삼한의 백제, 신라, 임나(가야), 그리고 말갈과 함께 예맥계통에 속하며, 이후의 여진, 만주족 사람들과 같은 민족이다. 이들은 언어에 있어서는 서로 가깝지만 풍속에 있어서는 달랐는데, 고구려와 삼한은 농업 중심이었고, 나머지는 유목, 수렵 민족이었다.”
상기 연구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은 말갈, 선비, 거란, 몽고 사람들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모두 고대 ‘동이’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이들 ‘동이’ 사람들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유사 이래로 중국 역사에 자주 지배민족으로 군림하게 된다. 상기 ‘동이’로 분류된 민족들 가운데 거란, 선비, 몽고, 여진 등은 기원 이후 중국을 지배했던 민족들이다.
필자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축이었던 동이문명이 중국 대륙에만 꽃피운 문명이 아니라 그 기원이 북방 아시아 대륙이었고, 그 중심지가 요하를 중심으로 한 중국 동북지역이었다는 사실을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동이 문명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중국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추적하였다. 그 결과 동이 문명의 실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고대 한반도에 세워졌던 국가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특히 고대 동이문명을 담고 있는 갑골문을 분석하면 동이문명(상 문명)과 현대 한국문명 사이의 많은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러한 유사성은 두 지역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고 있다.
필자는 동이문명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전해지고 현재 한반도 사람들이 어떻게 그 문화적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역사적, 유물적 증거를 바탕으로 해석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