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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스페인/중남미소설
· ISBN : 9788901086972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08-08-25
책 소개
목차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책속에서
“그럼, 당신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클로스터가 단호하면서도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믿어야 한단 말입니다. 좀 다른 이유에서지만. 몇 시간 전, 이곳에 오기 전에 전 바로 그 장면, 요양원에서 일어나는 살인 장면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대충 틀만 잡아놓은 미완성 초고를 두고 나왔죠. 그런데 보시다시피, 다시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방법만 바뀌었을 뿐이죠. 마치 그가 자신의 날인을 찍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아니면 절 조롱하려는 것처럼 문체를 수정해서 말입니다. 매번 이런 식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쓰는 것뿐, 전 무조건 써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고 억지로 제 자신을 이해시키려 했습니다. 물론 아주 기묘한 우연의 일치였죠. 너무나 딱 들어맞는. 그러나 구술은……이미 시작됐습니다. 말하기 나름이겠지만 그 소설은 공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9쪽
얼굴을 마주한 그녀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녀였다. 순간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졌지만 분명 루시아나였다. 세월을 망각한 끔찍한 오해였다. 클로스터는 언젠가 작품에서 언급했었다. 여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세월이라고.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재회한다면 그것이 여인에 대한 가장 잔인한 복수가 될 수 있다고. 정말 그랬다.…… 정말 소름 끼치는 것은 내가 알던 예전 그 얼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아득한 과거 속에, 세월의 고랑에 파묻혀 버린 듯했다. 그녀는 절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도 세월의 참혹한 절단 수술로 자신의 매력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듯했다. --36쪽
루시아나는 복도에서 사라져 방 안으로 들어갔다. 2~3분이 흘렀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손목 위까지 올라오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커다란 책을 몸 앞에 받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비밀 종교의식에서 깨지기 쉬운 유물을 나르는 고귀한 여사제 같았다. 팔 밑엔 네모난 마분지 상자를 끼고 있었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책을 내려놓은 다음 상자를 내게 내밀었다. “대학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장갑이에요.” 나의 의아한 시선을 의식한 듯 그녀가 말했다. “페이지마다 클로스터의 지문이 묻어 있고, 그건 제겐 그를 궁지로 몰아세울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지문을 묻히고 싶지 않아요.” --85~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