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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25557458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15-10-21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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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좋은 것은 작은 꾸러미에 담겨서 온다.”
자, 드디어 이 속담을 말했다. 말하고 나니까 토한 듯이 목이 따갑다. 하지만 어쨌든 이 말을 다시 할 필요는 없으니까. 살면서 이토록 점잔을 떨며 의기양양하게 생색내는 문장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게 무슨 뜻일까? 핵심도 없고 숨은 뜻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이 속담을 들으면, 땅꼬마로 사는 인생에 비애와 고통이 가득할 거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진심과는 달리 비꼬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느낌이 든다.
제발요, 다들. 그게 당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냥 솔직히 말하라고요. 난 몸집에 비해서 어깨는 넓으니까.(중략)
지난 2년 동안 너무 자주 들은 그 말이 도무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나는 객관적인 사실을 동원해 그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 고리타분한 말을 완전히 박살내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바보같이 작은 이런 내 몸에나 어울리는, 찍찍거리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하! 안 보여요?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커다란’ 꾸러미가 아니에요. 난 언제까지나 덜렁대는 나약한 실패자로 살 거라고요.” (_본문 중에서)
진정한 우정이 이런 식으로 생기는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이 좋았다.
어느 정도는.
녀석은 나를 비웃거나 내 작은 키를 모욕할 새롭고도 색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다. 내가 사물함에 물건을 넣는 동안 시비를 걸지 않았다. 측은하게도 내 사물함이 맨 아랫줄에 있는 바람에 놀림은 극에 달했다. 요즘 내 등에는 운동화 모양 문신이 박혀 있다. 땅꼬마를 밟고 서는 건 올림픽 경기였고 모두 그 금메달을 원했다.
박수가 그친 뒤 가장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당연히 사이너스가 몰락한 원인, 즉 녀석이 나와 나란히 실패자라는 3군으로 전락한 원인이었다.
그건 바로 코였다. (_본문 중에서)
“네 엄마에게서 영감을 얻었지. 최첨단 기술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네 엄마가 괜찮다고 생각할 거야.
네 엄마가 너를 솜으로 감싸 버리겠단 말을 했잖아?”
나는 그 제안을 먼저 한 게 나였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려 했지만 내 뒤에 모여 있던 아이들에게 부딪혔다. 사람들이 내 위로 우뚝 솟아 있는 건 익숙한 일이었지만, 이건 아예 새로운 구도였다.
“그런데, 그건 효과가 없을 거야.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솜은 네가 넘어지자마자 찢어져 버릴 거야. 하지만 우리가 마련한 대책은? 실패할 염려가 없지.”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태양이 사라졌고 여러 개의 팔이 나를 바닥에 눕히고 꼼짝 못하게 붙들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웃음소리와 테이프를 쫙쫙 뜯어내는 소리뿐이었다.(중략)
몸 곳곳에서 폭폭, 하고 뭔가 터지는 소리가 수없이 들렸다. 머리 위에서 또 한 번 웃음이 물결 쳤고, 그때서야 나는 그들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다. 버블 랩이었다. (_본문 중에서)
우리는 기다렸다.
그리고 주위의 불빛이 어두워지자, 이 순간이 엄마에게는 매우 오랜 기다림의 끝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20년 동안 이 순간이 다가올 것임을 알고서 마음으로 긴 세월을 버텨온 것이다. 자신만의 죄책감에 감싸인 채로. (_본문 중에서)
“하지만 네가 믿든지 안 믿든지, 너한테 한 가지 말해 줄게. 이 일의 어떤 부분도 나를 위해 하지 않았어.
너를 위해 한 거야. 너한테 빚을 졌으니까. 이렇게 말하려니 괴롭지만 사실이야. 넌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든지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가 버릴 수 있었어. 내가 너를 그런 식으로 몰아갔다는 걸 알아. 너한테 수없이 많은 틈을 줬지만, 넌 결코 그 틈을 이용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그리고 지금 우린 여기 이렇게 있어.
우리가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 우리 둘 다 저기에 서서 ‘어이! 우리를 봐.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라고 말할 기회와 함께.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상상해 봐, 찰리. 상상해 보라고. 그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상상해 봐. 그러고 나서,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과연 다시 찾아
올지, 나에게 말해 봐. 내가 말해 줘? 지금 우리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기회는 두 번 다시 안 올 거야.” (_본문 중에서)
“신사숙녀 여러분. 주머니 로켓, 자칭 버블 랩 보이, 찰리 한입니다!”
별명을 발표하자는 건 사이너스의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그래피티와 인물의 관계를 깨닫게 되는 거창한 폭로의 순간. 몇 주 동안 잠재의식 속에 메시지를 보낸 지금, 학교 아이들이 마침내 진상이 요란하게 밝혀지는 모습을 목격하며 나를 다른 눈빛으로 보게 될 순간.
어떻게 되었을까? 사이너스의 생각이 옳았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경사로를, 그다음에는 나를 가리켰는데 비웃음이 아니라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매우 다른 이유로 지켜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듯이, 구급차와는 관련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듯이.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