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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

엔딩 크레딧

(빨간 마후라 신영균의)

신영균 (지은이), 박정호, 김경희 (정리)
알에이치코리아(RHK)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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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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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엔딩 크레딧 (빨간 마후라 신영균의)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명사에세이 > 방송연예인에세이
· ISBN : 9788925591681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20-10-23

책 소개

1960~70년대 은막을 주름잡았던 원로배우 신영균이 인생 말미에 띄우는 편지다. <엔딩 크레딧>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여 중앙일보가 기획하고 2019년 11월부터 5개월 가까이 연재한 '빨간 마후라 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

목차

프롤로그 후회 없이 살았다

1장 빨간 마후라의 탄생
영화배우 신영균 | 아찔했던 키스의 추억 | 나의 살던 고향은 | 대배우의 꿈이 시작된 곳 | 첫 월급 700원 | 서울대 연극반 | 김선희, 평생의 연인

2장 100년 한국영화사가 나의 인생사
기억으로만 남은 영화 | 충무로 스타가 되다 | 신상옥, 100% 영화인 | 분단의 여배우 최은희 | 목숨을 건 촬영장 | 영화 인생 유일한 스캔들 | 만인의 연인이던 날들

3장 한국영화사에 남을 이름들
사랑해서 다시 한번, 전계현 | 김승호, 충무로의 영원한 아버지 | 스크린의 신사이자 만능 영화인 김진규 | 뜨거운 피를 가진 최무룡 | 신성일, 변함없는 맨발의 청춘 | 부끄럽지 않을 만큼 멋진 윤정희 | 뭇 남성의 마음을 흔든 문희 | 이름처럼 아름다운 고은아 | 김지미,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 합죽이 김희갑과 액션스타 박노식 | 남궁원과 윤일봉, 사라져가는 노병들

4장 배우는 극이 바뀔 때 역을 바꾼다
극장주, 사업가로 발돋움하다 | 명보제과, 신스볼링, 한주흥산 | SBS프로덕션에서 JIBS까지 | 정치로 이루고 싶던 꿈 | 한 그루의 예술나무, 문예련 | 스크린쿼터제, 자생과 경쟁 사이에서 | 박정희 대통령과 영화 검열 | 영화인을 위한 복지

5장 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다
진짜 빨간 마후라를 만났던 날 |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봉준호 |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안성기에게 | 송강호와 이병헌, 믿고 기대하며 | 받은 사랑에 대한 작은 답례 | 잘 자라준 자녀들에게 고맙다 | 100세 시대 건강관리 | 마지막 꿈, 노인과 바다

에필로그 주고 가는 마음
평론 신영균, 한국영화의 영원한 남성 아이콘 _전찬일

저자소개

신영균 (출연)    정보 더보기
1928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2020년 아흔둘을 맞은 대한민국 원로배우. 중학교 시절 연극에 관심을 갖고 졸업 후 청춘극장에 입단해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생계에 대한 고민으로 잠시 꿈을 접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했고, 해군 군의관 시절 만난 아내와 결혼한 뒤 치과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연기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 연극 <여인천하> 무대에 올랐다가 당시 조긍하 감독의 눈에 띄어, 1960년 영화 <과부>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데뷔 2년 만에 영화 <연산군>으로 제1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빨간 마후라>로 제 11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갯마을>, <미워도 다시 한번>, <대원군> 등 한국영화사의 주옥같은 작품 300여 편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톱스타로서 19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를 함께 누렸다. 1978년 영화 <화조>를 끝으로 배우로서는 잠정 은퇴했으나, 이후 한국영화배우협회장, 한국영화인협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 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금호극장, 명보극장을 인수하고, 명보제과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물론, 신스볼링, 한주흥산 등을 설립해 사업가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였고, 1996년에는 정치에 입문하여 제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1999년에는 사재 100여억 원을 들여 국내 최초이자 최대 영화박물관인 제주신영영화박물관을 개관했는데, 2010년 영화 및 예술계 인재 양성을 위해 500억 원 상당의 명보극장(현 명보아트홀)과 제주신영영화박물관을 영화계 및 문화예술계의 공유재산으로 기증했다. 2011년 창립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을 통해 예술인 복지와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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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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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정리)    정보 더보기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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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다. 그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일 당장 땅에 묻힌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다.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정말 후회가 없느냐고. 후회 없는 삶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맞는 말이다. 2020년 올해로 만 아흔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항로에서 어찌 잘한 일만 있겠는가. (중략) 순간순간 고달프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내일과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거북이걸음이자 황소걸음이었다. 덕분에 《파우스트》의 주인공과 달리 방황과 일탈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참으로 운이 좋은, 행복한 삶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 프롤로그


한국전쟁은 충무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53년 휴전 이후 사회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충무로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을 다룬 작품들이 잇달아 출시됐다. 전쟁영화는 한국영화의 전성기로 불리는 1960년대에도 꾸준히 제작됐다.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1964)도 한국전쟁이 낳은 찬란한 유산이다. 영화배우 신영균이란 이름 석 자를 가장 뜨겁게 달궈줬을 뿐 아니라, 이제 아흔이 넘은 노배우, 영화계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배우를 사람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는 데도 〈빨간 마후라〉의 공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 1장 빨간 마후라의 탄생


요즘처럼 보고 듣고 즐길 거리가 많지 않던 1960~70년대, 영화는 많은 사람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당시 극장가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서울 시내 개봉관은 물론 변두리 재개봉관, 재재개봉관에도 영화팬들 이 북적댔다. 보통 사람들은 필름을 너무 많이 틀어 비가 죽죽 내리는 화면을 보면서 일상의 고단함을 달랬다. 1988년 제작된 <시네마 천국〉 속 옛날 극장을 떠올려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 2장 100년 한국영화사가 나의 영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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