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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8343898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5-11-10
책 소개
‘아무튼 시리즈’ 여든 번째 책.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기울어진 미술관』 등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며 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이유리 작가의 신작 에세이로, 오랜 시간 미술관을 오가며 보고 느낀 마음들을 솔직한 언어로 풀어냈다. 그의 전작들이 주로 화가와 작품을 둘러싼 권력 구조 및 불평등에 관한 문제의식을 짚어내는 데 집중했다면, 『아무튼, 미술관』은 보다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선사한 잊지 못할 순간들을 복기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어떻게 위로받고 성장했는지를 내밀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명화를 스크랩해 ‘나만의 미술관’을 만들던 유년의 기억에서 출발해 문턱이 닳도록 갤러리를 드나들었던 런던 어학연수 시절을 거쳐 천경자의 그림 앞에 서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까지, 책 속에는 인생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늘 마주쳤던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또한, 누구보다 미술관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액자와 굿즈, ‘무제’라는 제목을 단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 등 우리가 미술관에서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작은 것들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도 놓치지 않는다.
“이름 모를 독자와 둘이서 미술관을 거니는 듯한 마음으로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 고요한 미술관 내부를 그와 함께 소요하다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목차
첫 만남
일단 미술관으로 돌진하기
기다림의 자세
불편한 예술
공간의 힘, 로스코
뒷모습
스탕달 신드롬
미술관에 가는 여자들은 위험하다
장롱을 여는 일
미술관에 가면 왜 다리가 아플까
화이트 큐브
무제
액자
굿즈
지구에 해로운 미술관?
대안으로서의 미술관
미술관으로 변신한 공간들
조금 더 다정한 미술관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연습
삶의 마지막 페이지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렇게 자주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트인다.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비슷한 시대의 작품을 모아서 전시한다. 작가는 달라도 주제나 소재가 비슷해 어느 순간 공통의 패턴이 눈에 들어오고, 그림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자연스레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나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라는 단어가 ‘정물화’를 뜻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런데 16~17세기 네덜란드·플랑드르 전시관에 가니 해골과 꽃, 촛대가 나오는 작품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그림 속 촛불은 꺼지고, 꽃은 시들고, 과일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내게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비슷한 작품을 줄곧 보다 보니 자연스레 그림들이 내뿜는 허무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중에야 그것들이 라틴어로 공허, 가치 없음을 뜻하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를 갖고 있더라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진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네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교훈을 주는 그림 장르가 바로 스틸 라이프, 정물화였다.
불편하고도 진실한 예술은 그런 것이다. 비겁한 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편견의 머리채를 잡고 뿌리까지 사정없이 뜯어내는, 바로 그런 존재. 미술관은 그래서 때때로 성찰의 장소가 된다. 예술작품을 보러 들어갔지만, 끝내 나 자신과 맞닥뜨리고 나오는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