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5722795
· 쪽수 : 431쪽
· 출판일 : 2011-09-08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 늦은 깨달음
2. 신부Ⅰ
3. 아제 아제 바라아제 수수리 사바하
4. 희망은 격렬하고, 삶은 너무 느리다. by 아폴리네르
5. 차가운 손
6. 오렌지
7. 해우
8. 울게 하소서
9. 도망치자, 누이
10. 시나리오
11. 눈
12. 크리스마스이브
13. The first noel
14. 다시, 장군이
15. 신부Ⅱ
16. 바리바리 바리데기
17. 짐승의 피
18. 부재
19. 악몽
20. 축복받은 집, 가현
에필로그 나는 나무다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예린의 방엔 오렌지 향이 가득했다.
짧은 노크 끝에 대답도 듣지 않고 들어온 우현은 방을 가로질러 맞은편 구석의 간접조명 스탠드의 조도만 조금 올렸다. 예린은 침대 위에 무릎을 안고 앉아 있다. 잠옷을 입고 있지만 눕지는 않은 모양,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다.
“안 잤어? 잘됐군.”
붙박이장 문을 연 우현은 바닥에 놓인 여행 가방을 꺼내 연다. 그 속에 조금 더 작은 가방이, 그리고 그 속에 조금 더 작은 가방이 있다. 우현은 가장 작은 가방을 꺼내 침대 위, 예린의 앞에 놓고 다른 가방은 처음 모양대로 정리해 장 속으로 도로 넣는다.
“한 달 정도면 충분할 테니 꼭 필요한 것만 챙기면 될 거야.”
예린은 놀라움이나 의문조차 표시하지 않고 발딱 일어선다. 우현이 열어 둔 장으로 다가가 그 속의 서랍에서 속옷을 한 줌, 잡히는 대로 가방에 넣고 편한 티셔츠 몇 벌, 면 팬츠 두 장, 원피스 두 장을 챙겨 가방에 넣는다.
“옷 갈아입어. 밖에 해우 와 있으니까 잠깐 해우한테 가 있어.”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던 예린의 손이, 우현의 다음 말에 멈칫, 한다.
“결혼하자.”
예린의 눈에 창황한 공포가 떠오른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덫에 치인 짐승 같은 눈. 우현은 그런 예린의 손에서 옷―얇은 원피스와 손뜨개 레이스 카디건―을 받아 한 팔에 걸고 잠옷을 위로 당겨 벗긴다. 속옷만 입은 몸이, 아무리 흐린 불빛이라 해도 부옇게 드러나는 데, 예린은 부끄러움조차 잊은 듯 저항이 없다. 우현은 원피스를 머리 위에서부터 입히고 등 뒤로 돌아가 지퍼를 올려 준다. 우현이 앞으로 돌아오기 전에 예린이 먼저 돌아선다.
“……우현.”
“여기 상황 대충 마무리 짓고 부를 테니까 해우랑 있어.”
예린의 눈에 서린 공포의 빛은 조금도 가셔지지 않는다.
머릿속이 왕왕 울렸다. 수도 없이 많은 말이 있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예린은 멍하게 우현이 입혀 주는 대로 카디건을 입고, 한 손에 가방을 든 우현에게 팔을 잡혀서 불 꺼진 집을 빠져나간다.
우현의 말대로 해우는 대문을 조금 돌아 나간 곳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다. 차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해우가 예린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로 운전석에 앉았고, 여행 가방을 뒷좌석에 던져 넣은 우현이 앞자리 문을 열고 예린을 태우려 했다. 우현이 미는 대로 자리에 앉은 예린이, 우현이 문을 닫으려 하자 문을 밀고 다시 내린다.
“……버리지…… 않을 거죠?”
절박하도록 간절한 목소리. 우현은 대답 대신 낮게 웃으며 예린의 이마에 입맞춤한다.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