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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아르슨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30009218
· 쪽수 : 252쪽
· 출판일 : 2025-12-10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88930009218
· 쪽수 : 252쪽
· 출판일 : 2025-12-10
책 소개
젊은 독일어권 문학의 기수, 라우라 프로이덴탈러의 기후소설
방화로 불타는 도시에서 어떻게 더 살아갈 것인가
라우라 프로이덴탈러는 현재 오스트리아 문단,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활약 중인 1984년생 작가다. 2014년 데뷔 이래 그는 일관되게 인간 내면의 균열과 사회적 위기를 개성적으로 서사화하고 정밀한 문체로 묘사해왔다. 작년 한 해에만 안톤빌트간스상, 라인하르트프리스니츠상, 오스트리아 우수예술가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줄줄이 수상한 작가를, 그의 작품세계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2023년 작 《아르슨》을 통해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아르슨》은 ‘방화’라는 소재를 내세워 불안한 인간 사회의 원인으로서 기후위기를 파헤치는 실험적 기후소설이다. 불타는 도시는 매해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된 지구 위 모든 생명체의 운명에 대한 은유이자 연쇄방화범을 자처한 인간이 지구 전체를 자신이 올라설 화형대로 만들어온 역사에 대한 은유다. 동시에 《아르슨》은 불에 매혹된 화자 ‘나’와 ‘그’의 감각과 생각을 따라가는 심리소설이기도 하다. 불안, 우울, 불면, 망상을 겪는 등장인물 각각은 더 이상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오늘날 인간이 느끼는 ‘기후불안’, ‘기후우울’의 초상이다.
작가는 어떤 SF적 음모와 해결, 현실적 행동의 촉구도 채택하지 않으며 기후소설 장르의 문법을 피한다. 또 공허한 기술해결주의나 소모적 종말론 중 어느 쪽으로도 결론 내리지 않으며 장르의 관습도 벗어난다. 문제가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복잡할 때, 그는 파국을 묘사하기보다 파국을 살아내는 인간의 지각과 심리를 해부할 새로운 언어를 찾는다. 문학적 언어로 구체화한 인간의 회복력이 그렇게 구한 해결책이다. 안과 밖, ‘나’와 세계가 똑같이 붕괴해가는 시점, 《아르슨》은 기후소설이 어떻게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 문학에서 보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견딜 수가 없다.”
스스로 불 지른 재난의 무대 위에 선 인간
도시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 방화로 불탄다. 잇따른 방화는 하나하나의 사건이기를 넘어 대규모 재난이 되었다. 불의 힘에 이끌리고 집착하는 ‘나’의 일상과 심신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르슨》은 ‘방화’라는 소재를 내세워 불안한 인간 사회의 원인으로서 기후위기를 파헤치는 실험적 기후소설이다. 불타는 도시는 매해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된 지구 위 모든 생명체의 운명에 대한 은유이자 연쇄방화범을 자처한 인간이 지구 전체를 자신이 올라설 화형대로 만들어온 역사에 대한 은유다. 프로이덴탈러는 두 명의 화자 ‘나’와 ‘그’의 심리적·육체적 위기를 따라가면서, 기후위기 시대 인간 존재 안팎의 디스토피아를 훑는다.
소설은 240여 쪽 분량 동안 개인·사회·생태계가 겪는 거의 모든 위기를 망라한다. 낫지 않는 상처, 고립, 불안, 무기력, 불면, 악몽, 우울, 호흡기 질환, 암 등과, 이민자·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 기술에 의한 인간소외, 계층 양극화, 기초학문 붕괴, 공공영역의 민영화, 감시사회, 지방소멸, 사다리 걷어차기, 선택적 공감 등과,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바다생물 집단폐사, 어종 감소, 대규모 녹조, 토양 산성화, 산호초 백화, 원시림 파괴, 집중폭우, 산사태, 지진, 산불, 우주쓰레기 등이다. 이래서는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한지, 어떤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세상은 통제 불능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아르슨》은 기후소설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아르슨》에는 어떤 권력체의 음모나 갈등, SF적 해결책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제들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조성해온 환경으로서 제시된다. 문명의 발달 끝에 서보니 그 환경이 인간에게도 적대적이게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아르슨》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지도 않는다. 현대인의 비겁한 마음에 불을 지피는 교훈도 없다. 작가는 “손가락을 까딱할 때마다”(101쪽) 연료를 태워 얻는 생활의 편리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폭염에 시름시름 앓더라도 여름날의 바비큐는 즐겁고 축제의 불놀이는 아름답다. 심지어 무력감에 잠긴 ‘나’와 ‘그’는 불과 불이 인간의 영역에 행사하는 파괴력에서 매혹과 해방감을 느낀다.
《아르슨》의 디스토피아는 외부 세계보다 인물의 내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기후소설의 외양 아래 불안한 현대인의 내면을 충실히 탐구하는 심리소설이 진행된다. 등장인물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정신적 위기에 처해 있다. 불안장애, 우울증, 불면증, 망상장애를 앓는 “세계고”(39쪽) 환자들이다. 이들 각각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통제할 수 없는 현재, 문제의 단초가 지워져버린 역사시대 이전의 과거 앞에서 오늘날 인간이 느끼는 ‘기후불안’, ‘기후우울’의 초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견딘다.”
기후위기 시대를 기록하는 새로운 언어의 발견
‘나’와 ‘그’는 우리의 거울이다. 불에 매혹당함을 시인하는 것, 오늘날 인간이 누리는 문명의 이기와 그것의 파괴력을 직시하는 것, 문명을 포기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 인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죄의식과 무력감을 수용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이제 숨만 쉬어도 파괴적인 존재가 되었는데(26쪽), 그렇다고 숨 쉬기를 멈출 수도 없다. 인간은 제 이기적 생존 양식 때문에 위기에 빠졌지만, 여전히 감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건강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다른 생명을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손바닥 사이에 나무 막대기를 비빌 것이고, 우리는 유리 밑에 종이를 깔아 태양 아래 내놓을 것이고, 우리는 불씨를 얻기 위해, 우리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야생 동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 온갖 것을 다 시도할 것이다.
(241쪽)
프로이덴탈러는 이 치열한 인간적 노력을 기록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와 형식이 필요했다. 문제가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복잡할 때, 그는 파국을 묘사하기보다 파국을 살아내는 인간의 지각과 심리를 해부하기로 했다. 어원을 파고드는 어휘 선택, 비대칭적 문장구조, 구분 없이 섞인 대화와 서술, 현실과 환상의 무차별한 묘사, 일관되지 않은 시점, 장면 간 느슨한 논리적 연결 등 전대미문의 현실을 재현할 새 언어를 찾는다. 불안, 불면, 우울, 악몽, 열대야, 전염병, 화상, 방화, 축제를 통과하며 주은 감각의 조각들은 이렇게 언어화된다.
작가는 이 조각들을 이미지의 끝말잇기로 한데 묶었다. 《아르슨》은 일견 ‘불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건과 장면 사이를 건너뛰며 진행되지만, 켜켜이 중첩된 은유들이 파편과 파편을 긴밀하게 엮는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인물들의 사고방식과 정신상태, 소설 속 세계의 논리가 거울을 앞에 둔 것처럼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안과 밖, ‘나’와 세계가 똑같이 붕괴해가는 시점, 작가는 기후소설을 쓰면서 공허한 기술해결주의나 소모적 종말론 중 어느 쪽도 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의식의 그림자 속을 헤집어, 문학적 언어로 구체화한 인간의 회복력을 결론으로 내놓았다. 《아르슨》은 기후 소설이 어떻게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 문학에서 보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젊은 독일어권 문학의 기수,
라우라 프로이덴탈러
라우라 프로이덴탈러는 현재 오스트리아 문단,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활약 중인 1984년생 작가다. 그는 2014년 데뷔 이래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의 호평과 독자의 환영을 고루 받고 있다. 2017년 첫 장편 《여왕이 침묵한다》는 브레멘문학상과 독일어데뷔소설축제 최우수상을, 다음 작품인 2019년 《유령이야기》는 유럽연합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작가는 2020년 독일어문학의날 3sat상, 2021년 가장 전위적 작가에게 주어지는 마누스크립테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2023년 《아르슨》 출간 이후 2024년에만 안톤빌트간스상, 라인하르트프리스니츠상, 오스트리아 우수예술가상 등 오스트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줄줄이 수상했다.
그는 일관되게 인간― 특히 여성―내면의 균열과 존재적 불안, 사회적 위기를 개성적으로 서사화하고 정밀한 문체로 묘사해왔다. “외부 세계를 통해 내면을, 내면을 통해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 특유의 장기가 거의 매 쪽마다 구사된 《아르슨》은 주제와 문체 모두 그의 작품세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방화로 불타는 도시에서 어떻게 더 살아갈 것인가
라우라 프로이덴탈러는 현재 오스트리아 문단,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활약 중인 1984년생 작가다. 2014년 데뷔 이래 그는 일관되게 인간 내면의 균열과 사회적 위기를 개성적으로 서사화하고 정밀한 문체로 묘사해왔다. 작년 한 해에만 안톤빌트간스상, 라인하르트프리스니츠상, 오스트리아 우수예술가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줄줄이 수상한 작가를, 그의 작품세계가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2023년 작 《아르슨》을 통해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아르슨》은 ‘방화’라는 소재를 내세워 불안한 인간 사회의 원인으로서 기후위기를 파헤치는 실험적 기후소설이다. 불타는 도시는 매해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된 지구 위 모든 생명체의 운명에 대한 은유이자 연쇄방화범을 자처한 인간이 지구 전체를 자신이 올라설 화형대로 만들어온 역사에 대한 은유다. 동시에 《아르슨》은 불에 매혹된 화자 ‘나’와 ‘그’의 감각과 생각을 따라가는 심리소설이기도 하다. 불안, 우울, 불면, 망상을 겪는 등장인물 각각은 더 이상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오늘날 인간이 느끼는 ‘기후불안’, ‘기후우울’의 초상이다.
작가는 어떤 SF적 음모와 해결, 현실적 행동의 촉구도 채택하지 않으며 기후소설 장르의 문법을 피한다. 또 공허한 기술해결주의나 소모적 종말론 중 어느 쪽으로도 결론 내리지 않으며 장르의 관습도 벗어난다. 문제가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복잡할 때, 그는 파국을 묘사하기보다 파국을 살아내는 인간의 지각과 심리를 해부할 새로운 언어를 찾는다. 문학적 언어로 구체화한 인간의 회복력이 그렇게 구한 해결책이다. 안과 밖, ‘나’와 세계가 똑같이 붕괴해가는 시점, 《아르슨》은 기후소설이 어떻게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 문학에서 보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견딜 수가 없다.”
스스로 불 지른 재난의 무대 위에 선 인간
도시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 방화로 불탄다. 잇따른 방화는 하나하나의 사건이기를 넘어 대규모 재난이 되었다. 불의 힘에 이끌리고 집착하는 ‘나’의 일상과 심신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르슨》은 ‘방화’라는 소재를 내세워 불안한 인간 사회의 원인으로서 기후위기를 파헤치는 실험적 기후소설이다. 불타는 도시는 매해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된 지구 위 모든 생명체의 운명에 대한 은유이자 연쇄방화범을 자처한 인간이 지구 전체를 자신이 올라설 화형대로 만들어온 역사에 대한 은유다. 프로이덴탈러는 두 명의 화자 ‘나’와 ‘그’의 심리적·육체적 위기를 따라가면서, 기후위기 시대 인간 존재 안팎의 디스토피아를 훑는다.
소설은 240여 쪽 분량 동안 개인·사회·생태계가 겪는 거의 모든 위기를 망라한다. 낫지 않는 상처, 고립, 불안, 무기력, 불면, 악몽, 우울, 호흡기 질환, 암 등과, 이민자·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 기술에 의한 인간소외, 계층 양극화, 기초학문 붕괴, 공공영역의 민영화, 감시사회, 지방소멸, 사다리 걷어차기, 선택적 공감 등과, 기온 상승, 해수면 상승, 바다생물 집단폐사, 어종 감소, 대규모 녹조, 토양 산성화, 산호초 백화, 원시림 파괴, 집중폭우, 산사태, 지진, 산불, 우주쓰레기 등이다. 이래서는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한지, 어떤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세상은 통제 불능의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아르슨》은 기후소설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아르슨》에는 어떤 권력체의 음모나 갈등, SF적 해결책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제들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조성해온 환경으로서 제시된다. 문명의 발달 끝에 서보니 그 환경이 인간에게도 적대적이게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아르슨》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지도 않는다. 현대인의 비겁한 마음에 불을 지피는 교훈도 없다. 작가는 “손가락을 까딱할 때마다”(101쪽) 연료를 태워 얻는 생활의 편리를 솔직하게 인정한다. 폭염에 시름시름 앓더라도 여름날의 바비큐는 즐겁고 축제의 불놀이는 아름답다. 심지어 무력감에 잠긴 ‘나’와 ‘그’는 불과 불이 인간의 영역에 행사하는 파괴력에서 매혹과 해방감을 느낀다.
《아르슨》의 디스토피아는 외부 세계보다 인물의 내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기후소설의 외양 아래 불안한 현대인의 내면을 충실히 탐구하는 심리소설이 진행된다. 등장인물은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정신적 위기에 처해 있다. 불안장애, 우울증, 불면증, 망상장애를 앓는 “세계고”(39쪽) 환자들이다. 이들 각각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 통제할 수 없는 현재, 문제의 단초가 지워져버린 역사시대 이전의 과거 앞에서 오늘날 인간이 느끼는 ‘기후불안’, ‘기후우울’의 초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견딘다.”
기후위기 시대를 기록하는 새로운 언어의 발견
‘나’와 ‘그’는 우리의 거울이다. 불에 매혹당함을 시인하는 것, 오늘날 인간이 누리는 문명의 이기와 그것의 파괴력을 직시하는 것, 문명을 포기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 인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죄의식과 무력감을 수용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이제 숨만 쉬어도 파괴적인 존재가 되었는데(26쪽), 그렇다고 숨 쉬기를 멈출 수도 없다. 인간은 제 이기적 생존 양식 때문에 위기에 빠졌지만, 여전히 감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건강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다른 생명을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손바닥 사이에 나무 막대기를 비빌 것이고, 우리는 유리 밑에 종이를 깔아 태양 아래 내놓을 것이고, 우리는 불씨를 얻기 위해, 우리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영양분을 섭취하고 야생 동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 온갖 것을 다 시도할 것이다.
(241쪽)
프로이덴탈러는 이 치열한 인간적 노력을 기록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와 형식이 필요했다. 문제가 압도적으로 거대하고 복잡할 때, 그는 파국을 묘사하기보다 파국을 살아내는 인간의 지각과 심리를 해부하기로 했다. 어원을 파고드는 어휘 선택, 비대칭적 문장구조, 구분 없이 섞인 대화와 서술, 현실과 환상의 무차별한 묘사, 일관되지 않은 시점, 장면 간 느슨한 논리적 연결 등 전대미문의 현실을 재현할 새 언어를 찾는다. 불안, 불면, 우울, 악몽, 열대야, 전염병, 화상, 방화, 축제를 통과하며 주은 감각의 조각들은 이렇게 언어화된다.
작가는 이 조각들을 이미지의 끝말잇기로 한데 묶었다. 《아르슨》은 일견 ‘불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건과 장면 사이를 건너뛰며 진행되지만, 켜켜이 중첩된 은유들이 파편과 파편을 긴밀하게 엮는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인물들의 사고방식과 정신상태, 소설 속 세계의 논리가 거울을 앞에 둔 것처럼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안과 밖, ‘나’와 세계가 똑같이 붕괴해가는 시점, 작가는 기후소설을 쓰면서 공허한 기술해결주의나 소모적 종말론 중 어느 쪽도 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의식의 그림자 속을 헤집어, 문학적 언어로 구체화한 인간의 회복력을 결론으로 내놓았다. 《아르슨》은 기후 소설이 어떻게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 문학에서 보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젊은 독일어권 문학의 기수,
라우라 프로이덴탈러
라우라 프로이덴탈러는 현재 오스트리아 문단,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활약 중인 1984년생 작가다. 그는 2014년 데뷔 이래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문단의 호평과 독자의 환영을 고루 받고 있다. 2017년 첫 장편 《여왕이 침묵한다》는 브레멘문학상과 독일어데뷔소설축제 최우수상을, 다음 작품인 2019년 《유령이야기》는 유럽연합문학상을 받았다. 이어 작가는 2020년 독일어문학의날 3sat상, 2021년 가장 전위적 작가에게 주어지는 마누스크립테상을 수상했으며, 특히 2023년 《아르슨》 출간 이후 2024년에만 안톤빌트간스상, 라인하르트프리스니츠상, 오스트리아 우수예술가상 등 오스트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줄줄이 수상했다.
그는 일관되게 인간― 특히 여성―내면의 균열과 존재적 불안, 사회적 위기를 개성적으로 서사화하고 정밀한 문체로 묘사해왔다. “외부 세계를 통해 내면을, 내면을 통해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 특유의 장기가 거의 매 쪽마다 구사된 《아르슨》은 주제와 문체 모두 그의 작품세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목차
《아르슨》
옮긴이 후기
책속에서
나는 잠에서 깨지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오늘은 아직 저만치 멀리에 있고 어제도 또 그만큼 멀리에 있다. 나는 어제에서 오늘로 건너오는 건널목에서 잠을 잤고, 내가 낯설다. 내 팔다리는 내 주위에 널려 있고, 나는 한가운데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불꽃은 발걸음이 가볍기로 유명하다. 불꽃은 조급함 없이 서두른다. 불꽃은 풀밭을 달려가고, 나무줄기를 기어오르고, 우듬지에서 우듬지로 건너뛰고, 기름띠 위를 달리고, 불꽃은 말 그대로 가스를 마신다. 그는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그러면서 자주 휘파람을 분다.
인간들은 더 이상 불을 지키지 않는다. 그럴 여유가 없다. 불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연소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도 많다, 손가락을 까딱할 때마다 뭔가를 태우면서도. 절대적 지배는 항상 파괴적 결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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