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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소설 보다 : 봄 2026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5146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26-03-10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45146
· 쪽수 : 164쪽
· 출판일 : 2026-03-10
책 소개
『소설 보다: 봄 2026』에는 2026년 봄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김채원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위수정의 「귀신이 없는 집」, 최예솔의 「서해에서」 총 세 편과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해당 작품은 제16회 문지문학상 후보에 포함된다.
봄, 이 계절의 소설
찬바람에 움츠리던 것이 언제였냐는 양 신록이 명랑한 눈으로 기지개 켜는 봄이다. 그러나 겨울이 여기 있었음을 증언하듯 그늘진 도로변에는 여전히 녹지 않은 눈의 잔해가 산재한다. 어제를 온전히 떨쳐내지 못한 채로도 우리는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소설 보다: 봄 2026』은 무언가 시작되거나 끝난 각자의 자리에서 내딛게 될 걸음의 향방을 조심스레 더듬어보는 세 편의 소설을 소개한다.
김채원,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어떤 것은 처음부터 보고 들어도, 겪어도, 전혀 알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채원을 2022년 겨울, 2024년 봄에 이어 세번째로 ‘이 계절의 소설’에서 만난다. 첫 소설집 『서울 오아시스』(문학과지성사, 2025)를 펴내며 상실의 나날을 버티는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한 응달을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 선정작 「별 세 개가 떨어지다」를 통해 옅게나마 볕이 드는 곳으로 시선을 옮겨, 홀로 식물을 키우며 삶을 견디는 노인과 그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보는 손녀들의 며칠을 따라간다.
‘나’와 사촌 자매 ‘혜임’은 연락이 두절된 할아버지가 혼자 죽은 것은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죽은 사람처럼 잠잠히 몰두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걱정과 호기심을 안은 채 그의 집에 찾아간다. 어릴 적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했지만 “그날부터 지금까지 목숨을 지키며 씩씩하게 살”아가던 할아버지의 소식이 뜸했던 까닭은 그가 식물을 키우는 데 열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혜임은 할아버지가 가꾼 온실 ‘종묘원’을 누비다 누군가의 맨발을 발견한다. 할아버지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이 묻은 것임을 알리며 “죽어도 너무 죽었다는 느낌이” 드는 시체였다고 말한다. 그날 할아버지를 변호하는 상상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새벽녘 종묘원을 찾는데, 발밑의 남자에게 죽은 이유를 묻기보다는 식물에게 “말하고, 웃고, 움직이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일손을 도우며 ‘나’와 혜임이 종묘원에 머무르던 오후, 할아버지는 ‘나’와 달리 남자에게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몸을 어째서 그렇게 하루아침에 훼손하여 매듭지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말한다. 종묘원에서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려던 순간 별 세 개가 호를 그리며 떨어지고 세 사람이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김채원의 소설은 식물을 보듯 조심스럽되 다소 심상한 눈빛으로, 죽음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어떤 ‘기분 좋은 무책임성’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소설이 무질서하거나 아무렇게나 씌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상황의 모든 요소를 인과관계로 환원하려는 강박이나 집착에서 해방되어 있다는 뜻이다”(문학평론가 이희우). 갑작스레 닥친 상실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왜’라는 마음을 헐겁게 풀어주는 한편 그 마음이 동력으로서 인물을 끌고 가는 장면들을 포착하면서, 김채원의 소설은 누군가를 잃고 흐트러진 채로도 건강히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풍경을 희미한 빛으로 밝힌다.
소설 속 인물들이 무언가를 보거나,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 단 한 번, 그러니까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땅에 묻은 남자를 완전히 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작가인 제가 그 순간을 원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소설에서는 우연으로 여겨진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어요. 죽은 남자의 몸과 그의 몸속 어딘가에 아직 남았을지 모를 숨을 깨끗하게 지워주고 싶었어요. 터무니없는 일이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요.
「인터뷰 김채원×강도희」에서
위수정, 「귀신이 없는 집」
“이것은 매혹인가 혐오인가. 둘 다인가. 둘은 하나인가”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위수정을 2021년 봄, 2022년 봄과 가을에 이어 네번째로 ‘이 계절의 소설’에서 만난다. 소설집 『은의 세계』 『우리에게 없는 밤』, 중편소설 『fin』 등을 펴내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온 작가는 “고도로 정교하게 감추어진 삶의 모호함”(심사위원 김중혁)을 담아냈다는 평과 함께 제49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해 그 저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선정작 「귀신이 없는 집」에서는 세계를 구성하는 규범 그리고 내면을 구성하는 환상에 융화되지 못한 인간 욕망이 무너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후쿠스케 17데니어 검정 스타킹을 신어보는 ‘재원’. 그를 수식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다양하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아내와 딸을 시드니에 보낸 ‘기러기 아빠’,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 그리고 이성의 복장을 착용하는 ‘크로스드레서’. 회사 동료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웃이 자신의 ‘취향’을 눈치챌까 두려워하며 남몰래 크로스드레싱을 해온 재원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은 아내 ‘상미’가 유일하다. 어느 날 상미로부터 “슬슬 그만두는 게 어때?” “이제 품위를 좀 지키자”라는 말을 듣고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낀 재원은 눈여겨보던 매력적인 크로스드레서 ‘코요’의 블로그에 댓글을 남긴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모두가 허용해주는 날”인 핼러윈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재원은 사진과 달리 볼품없는 코요의 실제 모습에 실망하지만, 함께 여장하고 거리를 걸으면서 불안과 흥분을 오가는 마음의 격랑으로 동요한다. 그러다 코요와 행인 간 벌어진 싸움에 쏠린 이목을 참지 못하고 코요를 향해 욕설을 뱉은 뒤 떠나고 만다. 다시 적막만이 존재하는 집. 재원은 자신이 다녀온 “이상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헤아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신의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홀로 눕는다.
위수정의 소설은 사회적 시선이 인물 안팎에서 그를 조여오면서 만드는 균열을 그린다. 나아가 욕망의 양면성과 정체성의 모호함을 예리하게 소묘함으로써 이상향이 붕괴된 자리에서 인간이 어떻게 환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왔는지 되짚어보게 만든다. “환상과 욕망의 이율배반적 관계를 예리하게 탐색하는 위수정의 「귀신이 없는 집」은, 욕망의 주체를 가로지르는 근원적 아이러니를 정교하게 해부한 탁월한 소설적 정신분석의 사례라 할 만하다”(문학평론가 강동호).
재원은 전통적 의미의 가장인 동시에 남성의 몸으로 여성적 취향을 향유하는 인물인데, 그것이 여성에 대한 매혹인지, 내면의 여성성의 발현인지도 모호하죠. 저는 그런 모호함이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어떤 ‘소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한 탐구를 권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단순화된 건 아닌가, 하고 평소에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자신을 정의 내릴뿐더러 타인에 대해서도 쉽게 일반화하고 편견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요.
「인터뷰 위수정×하혁진」에서
최예솔, 「서해에서」
“다들 후지게 사는데 나라고 안 후질 이유가 없지”
2023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예솔을 「서해에서」로 처음 ‘이 계절의 소설’에서 만난다. 「삼라만상」으로 데뷔할 당시 “이 시대의 감각과 정신과 양태와 질감을 더없이 또렷하게 발산”(심사위원 백지은)한다는 평을 받으며 자리매김한 작가는 여러 지면에 소설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 선정작 「서해에서」는 이른바 ‘후진’ 사람인 ‘나’와 또 다른 후진 사람인 ‘서해’가 만나 쌓아가는 결코 후지지 않은 관계의 켜를 담담히 펼쳐본다.
간호대를 휴학하고 대형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예전에 사귀었던 ‘영민’이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순간을 목격한다. 그녀의 이름은 ‘용서해’. ‘나’와 서해는 “허접한 놈”인 영민과 만난 적 있다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지고, 종종 만나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서너 시간 나누다 내일의 출근을 위해 헤어지는 관계를 이어간다. ‘나’는 짝사랑하던 약사 선생에게 차여서 망신을 당할까 봐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후진’ 남자들과만 연애해왔으며, 복학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 채 약국 아르바이트생으로 머무르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의 ‘후짐’에 질색하지만 서해는 그런 ‘나’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너는 충분히 멋지다, 그런 멋없는 빈말이 아니라 원래 세상에는 후진 사람이 더 많다, 그런” 말들로. 바다 대신 바다와 맞닿은 호수공원에 데려가고 “사슴도 없는 사슴 농장”을 보여주는 서해의 위로 방식은 ‘나’에게 충만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흘러 서해는 중국 청도의 회사로 발령을 받아 떠나고, ‘나’는 노인이 주된 환자층인 작고 낡은 동네 병원에 취직해 “가끔 작았고 가끔 후”져서 귀한 ‘우진’과의 연애를 시작한다. 별 볼 일 없는 삶의 면면을 두고도 “잘했다”는 말을 건네는 둘의 관계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등대처럼 반짝인다.
최예솔의 소설은 변화무쌍한 삶의 곡절을 담아 저마다의 특이점을 뽐내는 여느 작품들과 다르다. 어디 하나 특별한 구석 없는 인물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해진다. 이토록 평범해서, 이토록 평범한데도 흥미롭기 그지없어서. “심상한 목소리로 툭툭 뱉어지는 말들은 끊이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된다. 특유의 서술 톤은 최예솔이 그리는 인물들의 성격과 그들이 처한 상황과도 곧잘 맞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장면들 역시 이 목소리를 만나면 어딘가 흥미로워 보이고,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효과를 입는다”(문학평론가 소유정). 담백하고도 유머러스한 최예솔의 시선 아래 모인 장면들은 차분히 쌓여 인간 존재의 사랑스러움을 빚어낸다. 그 사랑스러움에 결부되는 필연적인 애틋함은 독자에게 긴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두고 두 우주가 충돌한다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그만큼 각자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슬프더라도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는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교집합은 늘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교집합에 머무는 것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에게 서해는 서해와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와의 교집합을 만들어준 인물일 것 같아요. 그것이 비록 후진 세계일지라도…… 모두가 이런 세계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면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으리라는 나름의 용기가 생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최예솔×홍성희」에서
찬바람에 움츠리던 것이 언제였냐는 양 신록이 명랑한 눈으로 기지개 켜는 봄이다. 그러나 겨울이 여기 있었음을 증언하듯 그늘진 도로변에는 여전히 녹지 않은 눈의 잔해가 산재한다. 어제를 온전히 떨쳐내지 못한 채로도 우리는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소설 보다: 봄 2026』은 무언가 시작되거나 끝난 각자의 자리에서 내딛게 될 걸음의 향방을 조심스레 더듬어보는 세 편의 소설을 소개한다.
김채원,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어떤 것은 처음부터 보고 들어도, 겪어도, 전혀 알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채원을 2022년 겨울, 2024년 봄에 이어 세번째로 ‘이 계절의 소설’에서 만난다. 첫 소설집 『서울 오아시스』(문학과지성사, 2025)를 펴내며 상실의 나날을 버티는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한 응달을 그려냈던 작가는 이번 선정작 「별 세 개가 떨어지다」를 통해 옅게나마 볕이 드는 곳으로 시선을 옮겨, 홀로 식물을 키우며 삶을 견디는 노인과 그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보는 손녀들의 며칠을 따라간다.
‘나’와 사촌 자매 ‘혜임’은 연락이 두절된 할아버지가 혼자 죽은 것은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죽은 사람처럼 잠잠히 몰두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걱정과 호기심을 안은 채 그의 집에 찾아간다. 어릴 적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했지만 “그날부터 지금까지 목숨을 지키며 씩씩하게 살”아가던 할아버지의 소식이 뜸했던 까닭은 그가 식물을 키우는 데 열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혜임은 할아버지가 가꾼 온실 ‘종묘원’을 누비다 누군가의 맨발을 발견한다. 할아버지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이 묻은 것임을 알리며 “죽어도 너무 죽었다는 느낌이” 드는 시체였다고 말한다. 그날 할아버지를 변호하는 상상으로 밤을 지새운 ‘나’는 새벽녘 종묘원을 찾는데, 발밑의 남자에게 죽은 이유를 묻기보다는 식물에게 “말하고, 웃고, 움직이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일손을 도우며 ‘나’와 혜임이 종묘원에 머무르던 오후, 할아버지는 ‘나’와 달리 남자에게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몸을 어째서 그렇게 하루아침에 훼손하여 매듭지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말한다. 종묘원에서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려던 순간 별 세 개가 호를 그리며 떨어지고 세 사람이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것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김채원의 소설은 식물을 보듯 조심스럽되 다소 심상한 눈빛으로, 죽음 언저리를 맴돌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어떤 ‘기분 좋은 무책임성’ 같은 것이 있는데, 이는 소설이 무질서하거나 아무렇게나 씌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상황의 모든 요소를 인과관계로 환원하려는 강박이나 집착에서 해방되어 있다는 뜻이다”(문학평론가 이희우). 갑작스레 닥친 상실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왜’라는 마음을 헐겁게 풀어주는 한편 그 마음이 동력으로서 인물을 끌고 가는 장면들을 포착하면서, 김채원의 소설은 누군가를 잃고 흐트러진 채로도 건강히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풍경을 희미한 빛으로 밝힌다.
소설 속 인물들이 무언가를 보거나, 보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 단 한 번, 그러니까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땅에 묻은 남자를 완전히 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작가인 제가 그 순간을 원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소설에서는 우연으로 여겨진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어요. 죽은 남자의 몸과 그의 몸속 어딘가에 아직 남았을지 모를 숨을 깨끗하게 지워주고 싶었어요. 터무니없는 일이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요.
「인터뷰 김채원×강도희」에서
위수정, 「귀신이 없는 집」
“이것은 매혹인가 혐오인가. 둘 다인가. 둘은 하나인가”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위수정을 2021년 봄, 2022년 봄과 가을에 이어 네번째로 ‘이 계절의 소설’에서 만난다. 소설집 『은의 세계』 『우리에게 없는 밤』, 중편소설 『fin』 등을 펴내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온 작가는 “고도로 정교하게 감추어진 삶의 모호함”(심사위원 김중혁)을 담아냈다는 평과 함께 제49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해 그 저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선정작 「귀신이 없는 집」에서는 세계를 구성하는 규범 그리고 내면을 구성하는 환상에 융화되지 못한 인간 욕망이 무너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후쿠스케 17데니어 검정 스타킹을 신어보는 ‘재원’. 그를 수식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다양하다. 평범한 ‘회사원’이자 아내와 딸을 시드니에 보낸 ‘기러기 아빠’,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 그리고 이성의 복장을 착용하는 ‘크로스드레서’. 회사 동료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웃이 자신의 ‘취향’을 눈치챌까 두려워하며 남몰래 크로스드레싱을 해온 재원의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은 아내 ‘상미’가 유일하다. 어느 날 상미로부터 “슬슬 그만두는 게 어때?” “이제 품위를 좀 지키자”라는 말을 듣고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낀 재원은 눈여겨보던 매력적인 크로스드레서 ‘코요’의 블로그에 댓글을 남긴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모두가 허용해주는 날”인 핼러윈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재원은 사진과 달리 볼품없는 코요의 실제 모습에 실망하지만, 함께 여장하고 거리를 걸으면서 불안과 흥분을 오가는 마음의 격랑으로 동요한다. 그러다 코요와 행인 간 벌어진 싸움에 쏠린 이목을 참지 못하고 코요를 향해 욕설을 뱉은 뒤 떠나고 만다. 다시 적막만이 존재하는 집. 재원은 자신이 다녀온 “이상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헤아릴 수 없을 것만 같은 자신의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홀로 눕는다.
위수정의 소설은 사회적 시선이 인물 안팎에서 그를 조여오면서 만드는 균열을 그린다. 나아가 욕망의 양면성과 정체성의 모호함을 예리하게 소묘함으로써 이상향이 붕괴된 자리에서 인간이 어떻게 환상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해왔는지 되짚어보게 만든다. “환상과 욕망의 이율배반적 관계를 예리하게 탐색하는 위수정의 「귀신이 없는 집」은, 욕망의 주체를 가로지르는 근원적 아이러니를 정교하게 해부한 탁월한 소설적 정신분석의 사례라 할 만하다”(문학평론가 강동호).
재원은 전통적 의미의 가장인 동시에 남성의 몸으로 여성적 취향을 향유하는 인물인데, 그것이 여성에 대한 매혹인지, 내면의 여성성의 발현인지도 모호하죠. 저는 그런 모호함이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어떤 ‘소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한 탐구를 권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단순화된 건 아닌가, 하고 평소에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자신을 정의 내릴뿐더러 타인에 대해서도 쉽게 일반화하고 편견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요.
「인터뷰 위수정×하혁진」에서
최예솔, 「서해에서」
“다들 후지게 사는데 나라고 안 후질 이유가 없지”
2023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최예솔을 「서해에서」로 처음 ‘이 계절의 소설’에서 만난다. 「삼라만상」으로 데뷔할 당시 “이 시대의 감각과 정신과 양태와 질감을 더없이 또렷하게 발산”(심사위원 백지은)한다는 평을 받으며 자리매김한 작가는 여러 지면에 소설을 발표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 선정작 「서해에서」는 이른바 ‘후진’ 사람인 ‘나’와 또 다른 후진 사람인 ‘서해’가 만나 쌓아가는 결코 후지지 않은 관계의 켜를 담담히 펼쳐본다.
간호대를 휴학하고 대형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예전에 사귀었던 ‘영민’이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순간을 목격한다. 그녀의 이름은 ‘용서해’. ‘나’와 서해는 “허접한 놈”인 영민과 만난 적 있다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지고, 종종 만나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서너 시간 나누다 내일의 출근을 위해 헤어지는 관계를 이어간다. ‘나’는 짝사랑하던 약사 선생에게 차여서 망신을 당할까 봐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후진’ 남자들과만 연애해왔으며, 복학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 채 약국 아르바이트생으로 머무르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의 ‘후짐’에 질색하지만 서해는 그런 ‘나’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너는 충분히 멋지다, 그런 멋없는 빈말이 아니라 원래 세상에는 후진 사람이 더 많다, 그런” 말들로. 바다 대신 바다와 맞닿은 호수공원에 데려가고 “사슴도 없는 사슴 농장”을 보여주는 서해의 위로 방식은 ‘나’에게 충만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흘러 서해는 중국 청도의 회사로 발령을 받아 떠나고, ‘나’는 노인이 주된 환자층인 작고 낡은 동네 병원에 취직해 “가끔 작았고 가끔 후”져서 귀한 ‘우진’과의 연애를 시작한다. 별 볼 일 없는 삶의 면면을 두고도 “잘했다”는 말을 건네는 둘의 관계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등대처럼 반짝인다.
최예솔의 소설은 변화무쌍한 삶의 곡절을 담아 저마다의 특이점을 뽐내는 여느 작품들과 다르다. 어디 하나 특별한 구석 없는 인물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해진다. 이토록 평범해서, 이토록 평범한데도 흥미롭기 그지없어서. “심상한 목소리로 툭툭 뱉어지는 말들은 끊이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된다. 특유의 서술 톤은 최예솔이 그리는 인물들의 성격과 그들이 처한 상황과도 곧잘 맞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장면들 역시 이 목소리를 만나면 어딘가 흥미로워 보이고,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효과를 입는다”(문학평론가 소유정). 담백하고도 유머러스한 최예솔의 시선 아래 모인 장면들은 차분히 쌓여 인간 존재의 사랑스러움을 빚어낸다. 그 사랑스러움에 결부되는 필연적인 애틋함은 독자에게 긴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두고 두 우주가 충돌한다고 표현하기도 하잖아요. 그만큼 각자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슬프더라도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는 누구나 비슷하게 느끼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교집합은 늘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교집합에 머무는 것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에게 서해는 서해와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와의 교집합을 만들어준 인물일 것 같아요. 그것이 비록 후진 세계일지라도…… 모두가 이런 세계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면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으리라는 나름의 용기가 생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최예솔×홍성희」에서
목차
별 세 개가 떨어지다 김채원
인터뷰 김채원×강도희
귀신이 없는 집 위수정
인터뷰 위수정×하혁진
서해에서 최예솔
인터뷰 최예솔×홍성희
책속에서
총천연색 태양, 한 모금의 물, 과장되지 않게 나타나는 자연의 기척들. 말하고, 웃고, 움직이며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
―김채원,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안녕하세요, 보위 님. 당연히 가능합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우리 편하게 연락해요. ‘우리’라는 말에 재원의 시선이 머물렀다. 두려움과 매혹은 왜 항상 함께일까.
―위수정, 「귀신이 없는 집」
작은후진해변은 작지 않았고 후지지도 않았다. 내 남자친구인 우진은 가끔 작았고 가끔 후졌지만 나는 그런 점이 좋았다. 가끔만 후지다니 얼마나 귀한가.
―최예솔, 「서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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