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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1007473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13-10-15
책 소개
목차
한국의 독자에게 드리는 말
아서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은총
일주일
또 한 사람의 아서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위로가 필요해서 나를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 코코넛과 마카다미아와 화이트초콜릿으로 만든 쿠키, 땅콩 엠앤엠 한 그릇, 씨와 곡물과 짭짤한 소금을 듬뿍 입힌 베이글 몇 개, 버터와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고 빨간 즙이 흐르는 토마토 한 조각을 얹은 베이글 한 개, 전지유 한 주전자와 그 옆에 놓인 키 큰 유리잔 하나, 오레오 쿠키가 덮인 초콜릿 케이크, 햄버거 세 개와 감자 샐러드와 7번가에 있는 식당에서 주문한 크림 시금치. 그 시금치를 스토브 위에서 데우고 한가운데 크림치즈를 약간 얹었다. 깨끗한 녹색 바다 위에 흰색.
이 음식을 모두 먹어도 좋다고 자신에게 허락했고, 그런 허락이 주는 황홀한 해방감을 만끽했다. 아삭아삭 소리가 가만히 입에서 새어나오는 순간 긴장했다. 내 소리를 듣는 게 싫다. 나는 혼잣말을 하지 않는다. 집에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는다. 바보 같아 보인다. 내 목소리를 들으면 구역질이 난다.
엄마는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내가 열 살 때부터 증상이 시작되었고, 엄마가 집에 있을 때 내가 친구를 데려오지 않는 데는 그 이유도 있었다. 엄마와 차를 타고 가던 날 태양이 엄마 두피에 내리쬐는 걸 보고, 맙소사, 맙소사, 엄마가 진짜 대머리가 되었구나, 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정수리 부분에 솜털 같은 머리카락 한 뭉치가 있다. 남은 머리카락은 길었고 엄마가 언제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았는지에 따라 지저분하거나 곱슬곱슬하다. 엄마는 깜빡 잊을 때를 빼면 늘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그러고 나면 머리는 희끗희끗한 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다. 엄마는 피부가 나쁘고 얼굴에 발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의 늘 그렇다. 양쪽 눈꺼풀에 검은 선을 하나씩 그리는데, 속눈썹에 그리려 해도 언제나 그 경계 위에 긋고 만다. 바들바들 떨면서.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80년대 이후로 아무도 입지 않는 끔찍한 옷을 입었고, 그 문제에 대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 몸에는 문신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팔에 있는 꿀벌이고 또 하나는 어깨를 넘어 등을 타고 내려가는, 뱀처럼 기다란 줄이 달린 전자 기타, 빌어먹을 전자 기타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겁에 질려 문 열 용기가 다 사라지기 전에, 문을 발로 걷어차서 열고 침대에 있는 엄마의 형체를 본다. 방은 얼어붙을 듯 춥고 어둡다. 천장의 등을 켜니,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옷을 갖춰 입은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는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있다. 몸을 둥글게 말고 옆으로 누워 있다. 엄마의 등이 나를 향해 있다. 무릎은 가슴 높이에 있다. 엄마는 잠든 것 같다.
그동안 밤에 집에 와서 이런 모습의 엄마를 본 것이 단지 오늘을 위한 연습이었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그런 느낌이 든다. 지금, 그렇다.
잠깐 생각 좀 해보자, 나는 큰 소리로 말한다. 이유도 없이. 재빨리 엄마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엄마는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로 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 의식을 잃었을 때와는 다르다. 죽은 사람 같다.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번 엄마를 흔들어본다.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