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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32026411
· 쪽수 : 247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장 망망대해의 구야
제2장 데지마의 돼지치기
제3장 황금 히아신스호, 빌지의 쥐
제4장 여왕의 복수자호, 해골 화가
제5장 암스테르담의 죄수, 교수대에 서다
제6장 구야, 구야를 그리다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리, 곧 여기서 달아날 거야.”
탈출 계획을 일러준 이는 한나였다. 홍 판서댁 딸이 시집가는 날을 거사 일로 삼았다고 했다.
“구야, 너도 같이 갈래?”
구야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 가면 그림도 그리고, 배불리 먹을 수도 있어.”
나고 자란 땅을 떠날 결심을 하긴 어려웠다. 주막집 헛간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만약 네덜란드 선원들이 모두 떠나버리면, 구야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더 이상 홀로 남겨지는 건 싫었다. 한나가 떠난다. 단 하나뿐인 단짝 동무였다. 염라댁의 머슴으로 평생을 살 생각은 없었다. 붓 한 번 못 잡아보고 빗자루질만 하다가 야산 중턱에 묻히긴 더욱 싫었다. 구야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내쳐졌다. 입조심하고,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핌은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못마땅해하는 네덜란드 선원들을 위해 배도 수소문했다.
그렇게 조선을 떠났는데, 낯선 일본 땅에서 붙잡히다니. 애초에 조선 땅을 떠나온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길도 없었다. 구야는 막막한 마음으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칠면조 노인은 궁둥이를 붙이고 한 풍경만 보는 건 질색이라고 했다. 화가는 구름처럼 흘러다니며 땅은 종이로 발은 붓 삼아야 한다는 거다. 그는 정해진 거처도 없이 민들레 홀씨처럼 떠돌아다니는데 기회만 된다면 세계 유람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독토르가 보여준 세계지도가 떠올랐다. 지도를 보면 세상에는 정말 많은 나라가 있다. 조선은 지도에서 새끼손톱만 했다. 데지마는 벼룩이었다. 구야가 태어나고 자란 곳, 지금 있는 곳은 모두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지도는 구야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종이 한 장이 구야 앞에 넓은 세계를 펼쳐주었다.
희망봉.
위도도의 ‘고래’와 티셰의 ‘진수성찬,’ 구야의 ‘그림’도 희망의 다른 말이었다. 티셰는 네덜란드에 도착해 갖가지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앉은 모습을 상상하며 허기를 달랬다. 위도도는 작살이 꽂힌 고래를 항구까지 끌고 가는 꿈을 꾸며 펌프질을 했다. 구야는 카피탄 집무실의 벽에 걸린 화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네덜란드로 가서 그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희망은 빌지의 쥐들이 살아갈 밑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