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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멸종 직전의 우리](/img_thumb2/9791160262698.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0262698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22-04-29
목차
작가의 말
멸종 직전의 우리
작품 해설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이를 잃은 여자는 도끼를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앞을 가로막는 겹겹의 나무에 도끼질을 했다. 몸은 몸부림쳤다. 진저리치는 나무 꼭대기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튕겨 오른 가지는 달을 겨눴다. 도끼날을 받아먹은 나무는 흉터가 나되 쓰러지진 않았다. 숲이 사라질 때는 까마득했다. 여자는 치마를 벗어 말았다. 치맛자락에 횃불에 댔다. 바람은 불을 싣고 숲을 살라갔다. 타들어가는 숲에서 순록과 늑대, 말코손바닥사슴, 불곰과 흑곰, 스라소니가 튀어나왔다. 덫들이 틉틉, 아가리를 다물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발버둥친들 발목은 끊어지지 않았다.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들은 웅성거렸다. 불꽃은 나무를 감싸 하늘로 끌어당겼다. 잎사귀들은 수런수런 몸을 뒤집었다. 줄기 속 수액이 뜨거워지고, 껍질이 툭툭 터졌다. 이글거리는 나무 사이로 아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은 숲 바깥쪽으로 밀려나가고, 숲과 하늘의 경계가 울렁거렸다. 나무와 나무 사이, 붉은 그림자가 서 있다.
울부짖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던 김선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높은 담장 앞에서 우는 여자였다. 담장이라면 부수고 싶었다. 미쳐 날뛰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돌멩이 같은 눈알을 손가락으로 후벼 파고 싶었다. 영영 아물지 않을 상처를 주고 싶었다.
아픈 건 나였다. 상처의 실밥이 단숨에 잡아 뜯겼다. 가슴 언저리가 땀땀이 아렸다.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발길질에 쟁반의 그릇들이 내동댕이쳐졌다. 밥공기가 엎어지고 김치보시기에서 국물이 흘렀다. 노란 장판에 붉은 김치 국물이 흘러갔다. 물에 분 밥알들이 흩어졌다. 나는 한 손에 수저를 꼭 쥐고 꺽꺽 울었다. 김선주는 살아 있다. 사진 속의 김선주는 웃고 있었다.
김선주는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소심한 김선주는 내 표정을 끊임없이 살폈다. 내 표정이 어두우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내가 웃으면 기분 좋은 일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되는 대로 대답해주었다. 그림자놀이. 내 마음을 따라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아이가 있다는 게 재미있다. 건반은 누르는 대로 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