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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32044330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5-09-05
책 소개
“늘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강제로 와 있는 기분이야.
세상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은, 유령처럼, 거기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어긋나 있는
소년 소녀의 특별한 이야기
“내 얼굴은 흐릿하다. 얼굴에만 모자이크 처리를 한 사진처럼.”
포커스아웃 보이 ‘정진’
언제나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배경과 같은 존재. 그러니까 한마디로 있으나 마나 한 존재.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정은 장편소설 『포커스아웃 보이』의 주인공 ‘정진’ 이야기다. 진이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만 모자이크 처리를 한 사진처럼” 흐릿한 얼굴을 지녔다. 마치 배경에 초점을 맞추면 얼굴이 흐릿하게 나오는 포커스아웃처럼. “손으로 만져보면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하고 입술도 두꺼운 편”이지만, “얼굴을 보려고 하면 이목구비의 선이 뭉개지고 흐릿하게 보인다.” 엄마 아빠는 뱃살 때문에 무선장애가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하지만, 그 대화를 나눈 지 어언 16년이 지나 고2가 될 때까지 진이의 얼굴은 “여전히 로딩 중”이다.
사람들은 흐릿한 진이의 얼굴 위로 보고 싶은 얼굴을 떠올린다. 아니면 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그러니까 진이는 무리 속에 섞여 있으면 사람들의 인식에서 지워지고, 보고 싶은 얼굴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얼굴이 진이 얼굴에 덧씌워지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상황을 왔다 갔다 하며 온갖 귀찮은 상황을 겪어왔다. 물론 크나큰 장점도 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의 눈에 띄어 지목당하는 일이 없다. 동시에 단점도 있는데, 얼굴이 흐릿해 인상이랄 게 없는 진이의 인생은 누락의 연속이다. 그러나 진이는 “세상에 대해 득도”했기에 화도 안 난다. 어차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평범한 고등학생의 얼굴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너무 나서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며 그런 애들 중 한 명이 되면 되는 것이다.
“내 얼굴의 특수함이 오히려 나를 더욱 평범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범하다는 건, 기억된다는 것이다. 좋아함을 당하고, 싫어함을 당하고, 미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좋아하기는커녕 미움받지도 못하는 나는 자주 잊힌다.” (27쪽)
싱크아웃 걸 ‘유리’를 만나다
“내 인생이 그래. 세상이랑 박자가 안 맞아. 매 순간이 싱크아웃이야.”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 대해 자포자기, 아니 득도한 진이에게 특별한 사건이 벌어진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와 두 눈이 마주친 것이다! 시간이 멈춘 듯 얼굴이 또렷해진 것 같고 존재감이 또렷하게 드러난 것만 같은 순간. 유리 누나와의 만남이 그랬다.
“나는 늘 존재해왔지만 누가 나를 똑바로 봐주는 느낌은 달랐다…… 밝은 빛이 내게로 떨어져 내 존재가 환히 드러나는 느낌이 설레면서도 불편했다. 벌거벗은 것 같아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32쪽)
유리는 싱크아웃 걸이다. 진이와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세상과 싱크가 맞지 않는 영화 자막과도” 같은 삶을 살아왔다.
“나는 늘 늦어. 어쩔 수 없이 늦어. 마치 세상이 그러기로 작정한 것처럼 늦어…… 내가 태어난 순간에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대. 그래서 의사는 내가 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다른 신생아처럼 입 모양으로는 울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거든. 울 듯이 얼굴로만 악을 쓰는 나를 엄마의 왼쪽 가슴에 올려놓고 심장박동 소리를 듣게 하니까 악을 쓰는 표정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대. 그때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린 거야…… 소리가 지각이라도 한 것처럼.” (67쪽)
진이와 유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어긋나 있는 존재들이다. 진이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리를 만나게 되고, 유리 역시 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세상과 싱크가 맞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늘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강제로 와 있는 기분이야. 세상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은, 유령처럼. 거기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리 누나의 이야기는 날카로운 칼에 가슴이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했다. 그동안 말로 표현하지 못한 내 외로움과 고통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들은 기분이었다. (71쪽)
이렇듯 세상과 다소 어긋나 있는 두 사람이기에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위안을 주고받지만, 진이가 이런 자신이 운이 없고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면 유리는 세상과 싱크가 맞지 않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캐릭터다. 세상에 대해 득도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진이는 자신의 얼굴을 온전히 바라봐주는 유리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깨닫는다. 흐릿한 얼굴로 인한 희미한 존재감. 이제 진이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유리 누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세상과 어긋나 있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만 맞는다는 사실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이 책 『포커스아웃 보이』는 얼굴이 흐릿한 ‘포커스아웃 보이’와 세상과 싱크가 맞지 않는 ‘싱크아웃 걸’을 주인공으로 하여 판타지적 설정과 현실적 고민을 교차시키며, 오늘날 청소년이 겪는 ‘보이지 않는 존재감’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포커스아웃 보이의 ‘흐릿한 얼굴’은 현실에 없는 설정이지만, 청소년들의 불분명한 정체성에 관한 비유적 표현으로 읽혀 자아를 찾아가는 시기에 있는 청소년 독자에게 성장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치로 작동한다. 그와 더불어 인간 사회에서 ‘얼굴’이 상징하는 다양한 측면을 작품 속에서 유머러스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진이’의 흐릿한 얼굴 때문에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는 한편, 현대사회에서 대다수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배경처럼 살아간다는 점에서 진이의 흐릿한 얼굴이 주는 상징성이 시의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인 진이 외에도 세상과 싱크가 맞지 않아 늘 지각을 하고 목소리가 늦게 전달되는 ‘유리’의 캐릭터 또한 흥미롭다. 디지털 시대와 맞물리면서 자연스레 그 캐릭터가 연상되기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다루고 있음에도 뜬금없이 느껴지지 않고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로 읽히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재치와 센스가 돋보인다. 진이와 유리 외에도 웹툰 작가를 꿈꾸는 ‘영민이’와 낙천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진이의 부모님 캐릭터는 작품에 따스한 공감과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개성 있으면서도 독특한 캐릭터와 거침없으면서도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 요즘 아이들다운 톡톡 튀면서 재치 있는 대사들이 경쾌하게 펼쳐져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작품의 주제와 무리 없이 어우러진다. 주제와 설정이 신선하고 다면적이면서 현대사회와 맞닿는 시의적 함의도 충분하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큰 기대를 품게 만든다.
이 책은 2018년 『산책을 듣는 시간』으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정은 작가가 긴 침묵을 깨고 7년 만에 내놓은 두번째 청소년소설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관념까지도 완전히 깨버린 탁월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한 『산책을 듣는 시간』의 주인공 ‘수지’는 청각장애를 바라보는 타인의 어설픈 동정을 “장애도 남이 갖고 있지 못한 또 하나의 능력”이라는 말로 멋지게 거절한다. 정은 작가는 이 책의 「작가의 말」에서 “첫 책이 나오고 한참 뒤에 저는 주인공인 수지와 한민이 단편영화 「포커스아웃 보이, 싱크아웃 소녀를 만나다」 속 두 주인공의 변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다소 어긋나 있는 두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겁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진이와 유리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세상과 다소 어긋나 있어도 나를 온전히 바라봐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우리가 너무나 평범해서, 존재감이 제로인 것만 같아서 한껏 서글퍼질 때, 잠시 잠깐이라도 누군가와 시공간이 맞물리는 특별한 경험이 우리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얼굴에만 모자이크 처리를 한 사진처럼” 흐릿한 얼굴을 가진 특별한 소년인 정진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목차
1장 로딩중
2장 싱크아웃 걸
3장 포커스아웃 보이
4장 미리 도착한 대답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 얼굴은 흐릿하다. 얼굴에만 모자이크 처리를 한 사진처럼.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만져진다. 눈도 크고 코도 오뚝하고 입술도 두꺼운 편이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려고 하면 이목구비의 선이 뭉개지고 흐릿하게 보인다. 멀리서 봐도 흐릿하고, 가까이서 봐도 흐릿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도 그렇고 내가 거울을 볼 때도 그렇다. 마치 내 얼굴 앞에만 반투명 마스크가 쓰인 것처럼 보인다. (1장 「로딩 중」)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 엄마는 늘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한다. “진이 잘 갔다 왔니?” 하고 내 이름을 먼저 불러서 확인하고, 두 손을 내 얼굴에 대고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3D 스캔을 하듯이. 보는 것으로는 내 얼굴에 닿을 수 없으니 촉감으로 가닿겠다는 듯이. 내 얼굴이 지도인 것처럼. 내 눈과 코, 입의 굴곡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으로 포옹을 대신한다.
그럴 때 엄마의 손가락 끝은 눈 같다. 그 손가락들은 내 흐릿한 얼굴 뒤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다. 눈이 담지 못하는 것을 두 손에 다 담아간다. 대화 없이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감정이 손가락을 따라 다 전해지는 것 같다.
그런 인사법 덕분인지 엄마와 아빠는 늘 내 감정 상태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 힘들어서 표정이 굳은 날,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날, 화가 나 있는 날…… 말로는 알리고 싶지 않은 내 기분을 엄마 아빠는 다 알고 있다. 그렇게 손끝으로 숨김없이 연결된 것 같아서, 어떨 때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22퍼센트의 내 얼굴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영원히 로딩 중이기를 바라기도 한다. (1장 「로딩 중」)
내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내 얼굴에 다른 사람의 얼굴을 대입해 보는 사람들을 수없이 겪으면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느꼈다. 매일 학교와 집을 눈을 뜬 채로 오가지만, 내가 무엇을 봤는지 떠올려보면 정작 기억에 남는 거라곤 거의 없었다.
영민이랑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영민이는 보곤 했다. 관심이 많으면 그만큼 세상에 많은 것이 존재했다. 관심이 없으면 있는 것도 없는 것이 된다. 그러니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맞고, 지금 내 눈앞에는 내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만 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보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한다. (2장 「싱크아웃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