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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32045214
· 쪽수 : 188쪽
· 출판일 : 2026-04-14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88932045214
· 쪽수 : 188쪽
· 출판일 : 2026-04-14
책 소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인류학자인 브뤼노 라투르가 과학기술학자 미셸 칼롱과 공저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1981), 라투르가 영장류학자 셜리 스트럼과 함께 쓴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1987), 라투르 단독으로 쓴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1988)까지 세 편의 글을 수록한 책이다.
“개코원숭이의 리바이어던처럼,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여전히 야생 사바나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때 묻지 않은 사회의 꿈이었다.
우리가 존재하고 거주하며 가꾸는 괴물은
그와는 사뭇 다른 노래를 부른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인류학자인 브뤼노 라투르가 과학기술학자 미셸 칼롱과 공저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1981), 라투르가 영장류학자 셜리 스트럼과 함께 쓴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1987), 라투르 단독으로 쓴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1988)까지 세 편의 글을 수록한 책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이희우 옮김)가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근대성과 인간중심주의에 비판을 가하며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라투르를 구심점으로 삼는 이 책은 라투르 사상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는 핵심 아이디어와 개념을 품고 있다.
라투르는 파리 국립광업대학에서 같은 대학 소속의 미셸 칼롱과 함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정초했는데, 1981년 발표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는 이 이론의 원형을 담고 있는 글이다. 한편 글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개코원숭이 사회에 대한 분석은 라투르가 셜리 스트럼의 초청으로 영장류학계의 민족지학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케냐의 개코원숭이 현장 연구지를 방문하는 동안에 얻은 통찰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책의 두번째 글인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의 발표로도 이어졌다. 동료 학자들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쓰인 이 글들은 한 중요한 이론이 정립되는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글들은 라투르의 옹호자와 비판자 모두 주요하게 언급할 만큼 사회와 정치에 대한 초기 라투르와 동료 학자들의 관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후 생태주의 정치철학으로 향하는 라투르 사상의 출발점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일상화된 기후 재난, 고도로 복합적인 사회-기술 얽힘이 낳는 위험, 거대 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고려하면, 이 책에 담긴 사회-기술 관계에 대한 대담한 통찰, 권력에 대한 이해, 기술 민주주의에 대한 발상은 더욱 시의적이고도 논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실제 사례들을 나열해 논의의 구체성을 더하면서 마치 SF소설을 읽는 듯한 짜릿함을 준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만물에 대한 만물의 번역으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에서 칼롱과 라투르는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언급하며 서두를 연다. 리바이어던은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던 인간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한 개인 혹은 집단에게 권리를 부여한 결과로 탄생한 주권자에 대한 홉스의 은유다.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통해 어떻게 미시 행위자가 거시 행위자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행위자들 사이에 본성에 내재하는 차이는 없”으며, 행위자들 “사이에 있는 층위나 규모의 차이는 모두 거래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래가 홉스에게는 인간 사이의 ‘사회계약’이었다면,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의 사회계약보다 포괄적인, 인간은 물론 더 많은 이질적 행위자들 사이의 ‘번역’으로 이해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들에 따르면, 행위자는 번역을 통해 이질적 행위자들을 등록(포섭)함으로써 성장한다. 이처럼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면서도 그것과 대결하고, 개량하고 조합하면서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켜나간다. 전기차 도입을 둘러싸고 프랑스전력공사와 르노자동차가 기술, 소비자, 시장 등의 요소를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게 포섭하기 위해 분투한 사례는 리바이어던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행위자는 내가 원하는 것,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 자다. 그가 나의 형식화되지 않은 소망을 정확히 번역한다면, 그때 내가 원하는 바가 바로 그것인데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p.30)
같은 글에서 칼롱과 라투르는 사회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들며 개코원숭이 사회를 끌어온다. 이 유인원 사회는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에서 스트럼과 라투르가 분석한 대상이기도 하다. 유인원 연구가 시작되던 20세기 초, 연구자들은 유인원 무리에서 인간 사회와 대비되는 자연 상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발견한 것은 매우 다양하며 유동적인, ‘복잡성’을 띤 사회의 모습이었다. 개체 수준에서 개코원숭이는 인간보다 사회적이다. 사물이나 제도 같은 육체 외적 자원이 거의 없는 만큼, 개코원숭이는 다른 개체를 만날 때마다 자기 몸과 자신이 체득한 사회적 기술로 사회적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반면 인간 사회에서는 의복, 명함 등의 사물이나 제도, 개개인이 속한 상징적·물질적 네트워크 등이 사회적 과업을 대신한다. 이를 스트럼과 라투르는 ‘복잡성’이 큰 사회와 구별해 ‘복합성’이 큰 사회라고 보았다.
스트럼과 라투르에 따르면, 개체뿐만 아니라 물질과 상징으로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룰 때 사회는 복잡성에서 복합성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번역의 규모와 범위에 따라, 행위자가 얼마나 많은 물질과 상징을 동원할 수 있는가에 따라, 얼마나 많은 타자를 회유하고 자기편으로 ‘등록’할 수 있는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별되는 사회들이 있다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기술은 오래 견디게 만들어진 사회다”
새로운 군주들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 길을 엮어내기 위해 인간 자원과 비인간 자원을 자유롭게 선택한다.(p.115)
인간뿐만 아니라 물질, 상징, 기술 등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로 뒤얽힌 라투르의 리바이어던은 홉스의 리바이어던과도, 개코원숭이의 리바이어던과도 다른 괴물이다.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에서 라투르는 홉스와 같은 한계를 마키아벨리에 대해서도 발견한다. “마키아벨리는 그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또 그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통제하게 하는 방식으로 계책을 수립한다. […] 이런 관점은 오늘날에는 적용될 수 없다.” 권력을 둘러싼 인간 행위자의 권모술수를 논하면서 비인간 행위자를 고려하지 않는 한, “마키아벨리의 세계가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문제투성이더라도 우리에게는 설익고 단순한 세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라투르는 기계와 권모술수, 기술과 사회를 동시에 묘사할 수 있게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확장해 읽어내려 한다. “인간의 오래된 정념, 배반, 어리석음에 우리는 전자·미생물·원자·컴퓨터·미사일의 완고함, 교활함, 힘을 덧붙여야 한다.”
행위자들은 자신의 이해에 맞게 현 상태를 안정화하거나 판도를 바꾸기 위해 사회-기술 혼합물의 이질성을 증가시킨다. 이 혼합물을 관리하는 지식과 장치, 요령을 ‘기술’이라 부른다면, 기술은 이미 언제나 사회적이다. 기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술이 그 자체로 압축된 사회이며 사회를 견고하게 압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가사 노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로봇청소기를 집에 들인다. 제품을 판매하고자 한 기업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 결과인데, 만약 로봇청소기의 카메라가 해킹당한다면 우리는 로봇청소기의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에 담긴, 그 전까지 생각할 일이 없었던 물질과 제도, 법, 담론의 네트워크를 점검하게 될 것이다. 이때 단순히 ‘기술적’ 대상으로 여겨지던 것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기술과 사회는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연합이나 네트워크가 얼마나 견고하게 압축되었는가에 따라 때로는 기술로, 때로는 사회로 여겨질 뿐이다.
행위자 불평등 발생론
라투르가 그리는 세계에서는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모든 행위자가 같은 평면에 나란히 있다. 이들 중 어떤 것도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지만, 매 순간 모든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를 환원하려 한다. 때로 한 행위자가 정말로 다른 행위자들을 남김없이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거대해지지만, 이 다른 행위자들 역시 환원에 저항하며 언제든 동맹에서 이탈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투르의 존재론은 민주주의적이다.
홉스 역시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정했다. 만약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불평등했다면 ‘사회적’ 불평등 역시 자연스러울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평등하다면 모든 불평등은 인위적인 것이 된다. 라투르가 홉스에게서 가져온 생각은, 모든 비대칭성이 인위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즉 존재론적 동등성을 가정하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불평등과 비대칭성은 해명해야만 하는 문제로 부각된다.
후기에 이르러 라투르는 녹색 계급의 조직화된 투쟁이 필요함을 갈파했다. 그런데 녹색 계급은 누구에 맞서 투쟁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후기 라투르와 초기 라투르는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다. 녹색 계급은 탄소·화석 경제라는 거대한 블랙박스 위에 걸터앉아 있는 “거대한 리바이어던”들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라는 과제를 마주한 우리에게, 이 책은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여전히 야생 사바나의
아름다움 속에 있는 때 묻지 않은 사회의 꿈이었다.
우리가 존재하고 거주하며 가꾸는 괴물은
그와는 사뭇 다른 노래를 부른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인류학자인 브뤼노 라투르가 과학기술학자 미셸 칼롱과 공저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1981), 라투르가 영장류학자 셜리 스트럼과 함께 쓴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1987), 라투르 단독으로 쓴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1988)까지 세 편의 글을 수록한 책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이희우 옮김)가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근대성과 인간중심주의에 비판을 가하며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라투르를 구심점으로 삼는 이 책은 라투르 사상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는 핵심 아이디어와 개념을 품고 있다.
라투르는 파리 국립광업대학에서 같은 대학 소속의 미셸 칼롱과 함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정초했는데, 1981년 발표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는 이 이론의 원형을 담고 있는 글이다. 한편 글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개코원숭이 사회에 대한 분석은 라투르가 셜리 스트럼의 초청으로 영장류학계의 민족지학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케냐의 개코원숭이 현장 연구지를 방문하는 동안에 얻은 통찰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책의 두번째 글인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의 발표로도 이어졌다. 동료 학자들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쓰인 이 글들은 한 중요한 이론이 정립되는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글들은 라투르의 옹호자와 비판자 모두 주요하게 언급할 만큼 사회와 정치에 대한 초기 라투르와 동료 학자들의 관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후 생태주의 정치철학으로 향하는 라투르 사상의 출발점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일상화된 기후 재난, 고도로 복합적인 사회-기술 얽힘이 낳는 위험, 거대 기업과 국가가 주도하는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고려하면, 이 책에 담긴 사회-기술 관계에 대한 대담한 통찰, 권력에 대한 이해, 기술 민주주의에 대한 발상은 더욱 시의적이고도 논쟁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실제 사례들을 나열해 논의의 구체성을 더하면서 마치 SF소설을 읽는 듯한 짜릿함을 준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만물에 대한 만물의 번역으로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에서 칼롱과 라투르는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언급하며 서두를 연다. 리바이어던은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던 인간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한 개인 혹은 집단에게 권리를 부여한 결과로 탄생한 주권자에 대한 홉스의 은유다.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통해 어떻게 미시 행위자가 거시 행위자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행위자들 사이에 본성에 내재하는 차이는 없”으며, 행위자들 “사이에 있는 층위나 규모의 차이는 모두 거래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래가 홉스에게는 인간 사이의 ‘사회계약’이었다면,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의 사회계약보다 포괄적인, 인간은 물론 더 많은 이질적 행위자들 사이의 ‘번역’으로 이해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들에 따르면, 행위자는 번역을 통해 이질적 행위자들을 등록(포섭)함으로써 성장한다. 이처럼 칼롱과 라투르는 홉스의 아이디어를 가져오면서도 그것과 대결하고, 개량하고 조합하면서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켜나간다. 전기차 도입을 둘러싸고 프랑스전력공사와 르노자동차가 기술, 소비자, 시장 등의 요소를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게 포섭하기 위해 분투한 사례는 리바이어던이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행위자는 내가 원하는 것,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 자다. 그가 나의 형식화되지 않은 소망을 정확히 번역한다면, 그때 내가 원하는 바가 바로 그것인데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p.30)
같은 글에서 칼롱과 라투르는 사회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들며 개코원숭이 사회를 끌어온다. 이 유인원 사회는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에서 스트럼과 라투르가 분석한 대상이기도 하다. 유인원 연구가 시작되던 20세기 초, 연구자들은 유인원 무리에서 인간 사회와 대비되는 자연 상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발견한 것은 매우 다양하며 유동적인, ‘복잡성’을 띤 사회의 모습이었다. 개체 수준에서 개코원숭이는 인간보다 사회적이다. 사물이나 제도 같은 육체 외적 자원이 거의 없는 만큼, 개코원숭이는 다른 개체를 만날 때마다 자기 몸과 자신이 체득한 사회적 기술로 사회적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 반면 인간 사회에서는 의복, 명함 등의 사물이나 제도, 개개인이 속한 상징적·물질적 네트워크 등이 사회적 과업을 대신한다. 이를 스트럼과 라투르는 ‘복잡성’이 큰 사회와 구별해 ‘복합성’이 큰 사회라고 보았다.
스트럼과 라투르에 따르면, 개체뿐만 아니라 물질과 상징으로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룰 때 사회는 복잡성에서 복합성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번역의 규모와 범위에 따라, 행위자가 얼마나 많은 물질과 상징을 동원할 수 있는가에 따라, 얼마나 많은 타자를 회유하고 자기편으로 ‘등록’할 수 있는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별되는 사회들이 있다고 저자들은 역설한다.
“기술은 오래 견디게 만들어진 사회다”
새로운 군주들은 수많은 갈등 속에서 길을 엮어내기 위해 인간 자원과 비인간 자원을 자유롭게 선택한다.(p.115)
인간뿐만 아니라 물질, 상징, 기술 등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로 뒤얽힌 라투르의 리바이어던은 홉스의 리바이어던과도, 개코원숭이의 리바이어던과도 다른 괴물이다.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에서 라투르는 홉스와 같은 한계를 마키아벨리에 대해서도 발견한다. “마키아벨리는 그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또 그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통제하게 하는 방식으로 계책을 수립한다. […] 이런 관점은 오늘날에는 적용될 수 없다.” 권력을 둘러싼 인간 행위자의 권모술수를 논하면서 비인간 행위자를 고려하지 않는 한, “마키아벨리의 세계가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문제투성이더라도 우리에게는 설익고 단순한 세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라투르는 기계와 권모술수, 기술과 사회를 동시에 묘사할 수 있게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확장해 읽어내려 한다. “인간의 오래된 정념, 배반, 어리석음에 우리는 전자·미생물·원자·컴퓨터·미사일의 완고함, 교활함, 힘을 덧붙여야 한다.”
행위자들은 자신의 이해에 맞게 현 상태를 안정화하거나 판도를 바꾸기 위해 사회-기술 혼합물의 이질성을 증가시킨다. 이 혼합물을 관리하는 지식과 장치, 요령을 ‘기술’이라 부른다면, 기술은 이미 언제나 사회적이다. 기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술이 그 자체로 압축된 사회이며 사회를 견고하게 압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가사 노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로봇청소기를 집에 들인다. 제품을 판매하고자 한 기업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 결과인데, 만약 로봇청소기의 카메라가 해킹당한다면 우리는 로봇청소기의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에 담긴, 그 전까지 생각할 일이 없었던 물질과 제도, 법, 담론의 네트워크를 점검하게 될 것이다. 이때 단순히 ‘기술적’ 대상으로 여겨지던 것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기술과 사회는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연합이나 네트워크가 얼마나 견고하게 압축되었는가에 따라 때로는 기술로, 때로는 사회로 여겨질 뿐이다.
행위자 불평등 발생론
라투르가 그리는 세계에서는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모든 행위자가 같은 평면에 나란히 있다. 이들 중 어떤 것도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지만, 매 순간 모든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를 환원하려 한다. 때로 한 행위자가 정말로 다른 행위자들을 남김없이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거대해지지만, 이 다른 행위자들 역시 환원에 저항하며 언제든 동맹에서 이탈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투르의 존재론은 민주주의적이다.
홉스 역시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가정했다. 만약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불평등했다면 ‘사회적’ 불평등 역시 자연스러울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평등하다면 모든 불평등은 인위적인 것이 된다. 라투르가 홉스에게서 가져온 생각은, 모든 비대칭성이 인위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즉 존재론적 동등성을 가정하면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불평등과 비대칭성은 해명해야만 하는 문제로 부각된다.
후기에 이르러 라투르는 녹색 계급의 조직화된 투쟁이 필요함을 갈파했다. 그런데 녹색 계급은 누구에 맞서 투쟁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후기 라투르와 초기 라투르는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다. 녹색 계급은 탄소·화석 경제라는 거대한 블랙박스 위에 걸터앉아 있는 “거대한 리바이어던”들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라는 과제를 마주한 우리에게, 이 책은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목차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
: 행위자들은 어떻게 현실을 거시적으로 조직하는가,
그리고 사회학자들은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돕는가
미셸 칼롱, 브뤼노 라투르
사회적 연결을 재정의하기
: 개코원숭이에서 인간까지
셜리 스트럼, 브뤼노 라투르
권모술수뿐만 아니라 기계를 위한 『군주론』을 쓰는 법
브뤼노 라투르
미주
옮긴이 해제
행위자 불평등 발생론: 초기 라투르의 정치관, 그리고 이후의 변화
책속에서
이 글의 목표는, 홉스의 중심 가설을 유지하면서 계약을 번역이라는 일반 법칙으로 대체했을 때 사회학은 무엇이 될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미시 행위자와 거시 행위자 사이의 크기 차이를 해명하고 분석하는 것이 목표라면, 우리는 사회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거대한 리바이어던을 분해하기」)
우리는 분화가 결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특정화되지는 않는 신체, 그러나 각 세포가 다른 세포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특정화하려 하는 장소인 신체, 많은 기관organs이 프로그램의 핵심부가 되기 위해 영구적으로 쟁투하는 곳인 신체를 상상해본다. 그러한 괴물을 상상한다면, 우리는 성장하는 것을 눈앞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리바이어던의 신체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관념을 갖게 되는 셈이다.
사회학자는 다른 행위자보다 더 외부적이지도 내부적이지도 않고, 더 과학적이지도 덜 과학적이지도 않다. 일반적인, 너무나 일반적인 상태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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