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책머리에

명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품는 소리
귀 있는 자만 들으라
내 마음을 알아주오
눈먼 뒤에야 들리는 소리
세상을 움직이는 감동
한끝 차이
외곬사랑, 사랑하면 알게 되니
삶과 죽음, 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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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형언도필처서>에 석개와 비슷한 사람이 하나 나온다. 학산수이다. 그는 산에 들어가 연습하면서, 노래 한 곡을 할 때마다 모래를 주워 신발에 던졌다고 한다. 그러고는 신발에 모래가 가득 차야만 돌아왔다. 모래의 굵기와 신발의 크기를 생각해보라. 노래 한 곡조에 모래 한 알씩이라니, 도대체 몇 곡을 불러야 신발이 모래로 가득 찰까? 나는 차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신발에 모래를 넣으며 연습한 그의 노래 실력이 어땠는지 박지원은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학산수가 도적을 만난 이야기로 보여줄 뿐이다. 어느날 도적떼가 그를 죽이려 ㅎ자, 학산수가 바람결에 얹어 노래를 했더니 도적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산 속에서 부른 한 곡 한 곡이 힘든 삶에 메말라버린 도적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보듬어 감화시킨 것이다.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보통 사람처럼 노래 연습을 하며 하루하루 보냈다면 오늘날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았을 리 없다.--본문 14~1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