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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박지원 (지은이), 허경진 (글), 이현식 (사진)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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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열하일기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고전
· ISBN : 9788932315232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09-05-15

책 소개

원저작의 계보를 직접 잇는 정통한 판본을 대본으로 엮은 완역본. 한문학을 전공한 학자의 번역으로 펴낸 책이다. 여기에 연암의 발자취를 독자가 직접 여행하듯 따라가도록 고지도에 모든 여정을 고증했다. 각 장에는 부분 여정도를 실어 이동 경로와 지역의 위치, 지형 등을 눈으로 확인하며 더욱 실감나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여정 중에 등장하는 유적과 지역은 40여 컷의 생생한 현장 사진으로 실었다.

목차

글 읽는 순서

우리 고전 읽기의 즐거움
연암 박지원의 중국 여정도
일러두기

저자 서문

도강록
들어가기
도강록
명나라 장수 강세작이 조선에 귀화한 이야기
청나라 첫 고을 책문의 모습
벽돌과 기와
안시성과 요동 땅의 평양성
중국의 구들과 조선의 온돌
꿈속에 고향집을 찾아
말꼬리를 붙들고 강물을 건너
한바탕 울어 볼 만한 요동 벌판
구요동
관제묘
요동백탑

성경잡지

일신수필
들어가기
중국의 큰 볼거리
수레 제도

관내정사
7월 28일 일기
호질
호질 뒤에 쓴다

혹정필담
들어가기
달에서 이 지구를 바라보면
지전설
야소교
제왕과 신하
문묘의 십일철
지전설을 받아들인 혹정

환희기
들어가기
스무 가지 요술 이야기

산장잡기
밤에 고북구를 나서면서
「밤에 고북구를 나서면서」에 붙여 쓰다
하룻밤에 한 강물을 아홉 번이나 건너면서
코끼리

구외이문
조선 진주
조조의 물속 무덤
양귀비의 사당
입정한 스님
고린내와 뚱이
젊다고 늙은이를 업신여기다니
신라호

옥갑야화
옥갑 여관방에서 돌아가며 이야기하다
허생
「허생」 뒤에 붙여 쓰다 1
「허생」 뒤에 붙여 쓰다 2

황도기략
서관
천주당
서양화
유리창

알성퇴술
순천부학
학사
문승상의 사당
문승상의 사당을 참배하고서
관상대
시원
조선관

앙엽기
들어가기
홍인사
백운관
법장사
융복사
관제묘
숭복사
이마두의 무덤

작품 해설
박지원 생애

저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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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진 (글)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와 열상고전연구회 회장을 거쳐,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의 한시》 총서 외 주요저서로는 《조선위항문학사》, 《허균 평전》, 《허균 시 연구》, 《대전지역 누정문학연구》, 《성호학파의 좌장 소남 윤동규》, 《한국 고전문학에 나타난 기독교의 편린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연암 박지원 소설집》, 《매천야록》, 《서유견문》, 《삼국유사》, 《택리지》, 《허난설헌 시집》, 《주해 천자문》, 《정일당 강지덕 시집》, 《허난설헌전집》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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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사진)    정보 더보기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서남대학교 교수와 중국 중앙민족대학 조문계 초빙교수로 있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 한학 연수과정과 일본 동경외대 조선어학과 연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중국을 자주 오가며 옛 사신들의 연행로와 관련 유적을 답사하고 사진과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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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 무렵 천자는 안으로 복주, 초주, 양주, 당주 등 각지의 난리를 누를 길이 없었고, 밖으로 조선의 근심이 더욱 절박해져 구출해 줄 뜻이 형제 나라 못지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마지막 황제가 자살하고 명나라가 망하자, 백성이 머리를 깎아서 모두 되놈이 되었다. 비록 우리나라만은 이런 치욕을 면했지만, 중국을 위해 원수룰 갚고 치욕을 씻으려는 마음이야 어찌 하룬들 잊을 수 있었으랴. 우리나라 사대부 가운데 천자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춘추>의 이론을 주장하는 이가 여기저기 우뚝 서서 백 년을 하루같이 줄기차게 이어졌으니, 정말 장한 일이라 하겠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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