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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32476193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26-05-25
책 소개
아픈 결말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다”
씨네21 김혜리, 소설가 이기호 추천
비인간 생명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의 시간
대전 오월드에서 탈출한 늑대의 포획 과정에 많은 국민이 ‘늑구 앓이’를 하고 ‘늑구 밈’이 유행하는 시대상이 보여 주듯, 비인간 생명과 올바르게 관계 맺는 일에 대한 질문이 늘고 있다. 『반려인의 하루』는 고양이·식물·개와 함께 살아가는 세 작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에세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돌봄과 공존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은 시시때때로 고개를 든다. “고양이들이 좁은 집 안에서만 살면 갇혀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함께 살던 식물이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죽음은 정말 이별일까?”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보고 맞닥뜨리는 일들 앞에서 이 책의 세 저자는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스스로의 답을 찾아 간다.
나 자신이 변화하고, ‘우리’의 범위가 확장되고,
아픈 결말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이야기
1부에서 김영글 작가는 길고양이 출신의 세 고양이 요다·모래·녹두와 함께 살아가며 타종과의 관계를 끈질기게 응시한다. 겁이 많지만 야생성이 남아 있는 요다, 집사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래, 식탐 많고 순한 녹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스며든다. 작가는 “나와 고양이는 완벽한 타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한다”라고 말한다. 계획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고양이들의 식단을 관리하며 계획이란 걸 세우고, 불완전하게나마 육식을 줄이는 삶으로 변화해 온 시간은, 관계가 타자를 길들이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다른 존재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일임을 보여 준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끝내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 상태로 놓아두는 태도, 그 속에서 발견되는 고요한 평화와 언어 너머의 감각이 그의 글을 관통한다.
2부에서 안희제 작가는 식물을 집에 들이면서 삶을 대하는 감각이 점차 바뀌어 나가고, 관계의 범위를 집 안에서 거리와 동네로 확장해 나간다. 작가는 식물뿐 아니라 그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거미와 애벌레, 이끼를 통해 작은 생태계를 경험한다. 이 경험은 집 밖으로까지 이어져 신호등 옆 잘려 나간 나무와 문 닫은 고철상에서 자라나는 생명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그는 가로수를 ‘동네 나무’라 부르며 식물 역시 우리가 함께 책임져야 할 반려의 존재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식물과 함께 사는 일은 단순한 취미나 인테리어 요소가 아니라, 다른 종과의 공존을 위해 일상의 조건을 재구성하며 끊임없는 응답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의 글은 인간 중심의 시선을 벗어나, 관계가 어떻게 환경과 공동의 삶으로 번져 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 준다.
3부에서 만화가 정우열은 스무 해를 함께한 반려견 풋코와의 시간을 통해 이별을 감당하고 책임지는 관계를 그린다. 제주에 살며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고, 동네 빵집을 향해 질주하던 풋코는 열여덟 살에 접어들며 점차 거동이 불편해진다. 작가는 풋코를 데리고 병원을 오가고 수액 주사를 놓으며 서서히 다가오는 끝을 준비해 간다. 그 과정은 생명을 붙잡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가능한 한 고통 없이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는 기도에 가깝다. 그는 묻는다. “어째서 우리는 반려동물을 잃은 절망에서 빠져나와야 하는가?” 절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 사랑이 희미해져 감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그 질문의 끝에서 사랑은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다른 방식으로 스미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려’의 의미를 곱씹는 세 저자의
용기와 헌신의 기록
책 속에 함께 실린 황미옥 작가의 일러스트는 반려인과 반려동식물 사이의 한순간을 절제된 흑백의 선들로 포착한다. 김영글 작가의 세 고양이, 안희제 작가가 집 안팎에서 마주한 식물과 곤충, 정우열 작가의 개 일러스트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단지 어떤 ‘대상’에 불과한 게 아니라 우리와 눈을 맞추고 숨을 나누고 일상을 공유하는 삶의 동반자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 책의 세 저자는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글에서 ‘반려’의 의미를 곱씹고 되새긴다. ‘짝이 되는 동무’. 혐오와 배제가 일상이 된 이 시대에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 어디까지 연결될 수 있고, 그 존재를 어디까지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가가 ‘반려’라는 단어를 통과하여 우리 앞에 당도한다. 이 책은 각자 인생의 짝이 되는 동무를 만나 기꺼이 그 질문 앞에 머물기를 선택한 저자들의 용기와 헌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목차
들어가는 글 ─ 김영글
1부 오전의 고양이(김영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랑하기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 이름 짓기 / 다투고 난 뒤 / 털복숭이의 엄마 / 야생과 야만 사이 / 언어가 소용없는 곳에서 / 내 고양이의 집은 어디인가 / 누가 누구를 기르는 걸까 /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고기를 그만 먹기로 했는데 / 모르는 것 속에서 / 요물은 아니지만 / 함께 걷기 / 추앙하는 시간 / 고양이 합사 적응기 / 색깔이 말해 주지 않는 것 / 사랑법 / 유희하는 존재 / 내 고양이의 MBTI / 서식지의 밤 / 방주는 없다 / 시간이 필요한 일 / 고양이 세 ‘명’과 삽니다 / 어떤 섭리 /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 눕고 싶은 곳에 누웠으면 / 우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 우리가 본 것
2부 오후의 식물(안희제): 함께 숨을 나누는 마음
나의 동네 나무 / 거미의 안부 / 누구의 것도 아닌 나비와 사마귀 / 이끼, 화분 위의 작고 깊은 생태계 / 우린, 흔들리며, 마주하지 못했네 / 책임을 다할 때만 볼 수 있는 것들 / 죽은 나무는 살아 있다 / 시신이 묻힌 곳은 풀이 더 윤기가 돈다 / 사실 그건 벌레의 일 / 예상치 못한 틈새의 삶 / 할머니의 꽃병 / 돌봄과 응답의 시간 / 마지막 남은 레몬 나무와의 시간 / 이름 모를 나무는 철망 울타리를 휘어 놓고 / 공터에서 / 식물, 나름의 인간 / 좋은 도시를 고민하는 시간 / 그곳에 소나무가 있었네 / 빈 화분들 / 반려의 질문 / 할머니의 소중하고 울퉁불퉁한 화원 / 나보다 일찍 죽는 것을 사랑하는 일 /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하지 않는 / 오랫동안 자세히 들여다보기
3부 저녁의 강아지(정우열): 사랑한 뒤에 남는 것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 개똥 이야기 / 반려견 입장 가능하십니다 / 제주에서 떠돌이 개와 마주친다면 / 호두야, 하고 부르면 / 왜 하필 채식이냐 묻는다면 / 개를 그리며 살아온 대가 / 떠난 자리 / 개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야 / 우리에겐 파티를 열 구실이 필요하다 / 우정의 표시 / 개의 몸에 바늘을 꽂는 일 / 초당 옥수수와 풋코 / 탈출 전문견 고메리 / 아가, 우리 집에 갈래? / 노화로부터 배우는 것 / 죽음은 정말 이별일까? / 개의 물건을 마켓에 내놓다 / 해피 홀리데이 / 안녕, 내 사랑 / 개를 떠나보낸 게 맞을까? / 개똥 치우셔야죠 / 펫로스 클럽 / 지구인들이여, 마음 모아 기원해 보자 / 제발 누가 이 개 좀…… / 에어컨을 장만할 때까지 /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 사이에서 / 개를 떠나보내고 한 일 / 가슴이 갑갑해지는 경험 / 네버 엔딩 스토리 / 달리를 임보 보내며
나오는 글 ─ 정우열
책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들만 고유한 세계를 가진 존재일 리 없다는 생각이 뒤이어 들었다. 살기 위해 태어난 유일무이한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거리의 개도 도축장의 소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자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기준도 흔들렸다. 머리로는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여기면서도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도축된 돼지나 닭은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스스로 납득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려면 뭐라도 해야만 했다. _ (「고양이를 쓰다듬다가 고기를 그만 먹기로 했는데」)
반려동물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동물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을 가졌고 어떤 점이 못났는지 판단하지 않는다. 충분한 신뢰가 쌓인 이후에는 무한한 믿음과 애정을 품은 채, 그저 함께 있고 싶어 할 뿐이다.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서로의 방식을 따르기를 종용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이해되지 않는 채로 놓아 둔다. _ (「추앙하는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