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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88932912370
· 쪽수 : 736쪽
· 출판일 : 2018-08-30
책 소개
목차
제6부
제7부
제8부
역자 해설: 소설,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예술
『안나 까레니나』 줄거리
레프 똘스또이 연보
리뷰
책속에서
「아직 때를 놓치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고 왔습니다. 이 모든 걸 다 없던 일로 하고 바로잡을 수 있단 말입니다.」
「뭐라고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내가 수천 번 말해 온 것, 도무지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은…… 내가 당신을 얻을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당신이 나와 결혼할 생각을 하다니요.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실수한 겁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나를 사랑할 리가 없어요……. 만일……. 차라리 말해 줘요.」 그가 그녀를 외면한 채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겁니다. 다들 제멋대로 떠들라고 하죠. 뭐든 불행해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지금이 더 낫습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취소하고 싶다…… 결혼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요?」
「그래요, 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정신이 나갔군요!」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너무나 안쓰러웠기에, 그녀는 화를 참고서 의자에 걸쳐 놓았던 드레스를 치워 버리고는 레빈 가까이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뭔지 말해 봐요.」
「당신이 나를 사랑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이 뭣 때문에 나를 사랑합니까?」
「맙소사, 어쩜 좋아?」 이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람!」 그가 소리치고는 키티 앞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두 손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형의 모습과 임박한 죽음은 레빈의 마음속에 죽음의 불가해성, 그리고 죽음의 임박과 그 필연성 앞에서 느꼈던 공포를 되살려 놓았다. 그것은 형이 찾아왔던 그 가을날 저녁에 느꼈던 감정이었다. 지금 그 감정은 전보다 강렬했다. 그는 전보다도 더욱 자신이 죽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며, 죽음의 불가피성에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가 곁에 있는 덕에, 그 감정이 그를 절망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고 사랑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사랑이 자신을 절망에서 구해 주었음을, 절망의 위협 속에서 그 사랑이 더욱더 강해지고 순결해졌음을 그는 느꼈다.
여전히 불가해한 것으로 남아 있는 죽음이라는 하나의 신비가 그의 눈앞에서 채 다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만큼 불가해한, 그를 사랑과 삶으로 불러내는 또 다른 신비가 일어났다.
그는 서재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쪽으로 다가간 그녀는 위에서 그의 얼굴을 비추며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잠들어 있는 지금,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애정으로 북받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만일 그가 깨어난다면 자신의 정당성을 의식하는 냉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볼 테고, 그녀 또한 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 그의 잘못을 입증해야 할 터였다. 그녀는 그를 깨우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아편을 한 번 더 들이켠 뒤 가위눌리듯 아침녘까지 선잠에 시달렸고, 잠든 내내 자신을 의식하였다.
아침에는 그녀가 브론스끼와 관계를 맺기 전부터 수차례 반복되었던 악몽을 다시 꾸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턱수염이 헝클어진 몸집 작은 늙은 농부가 쇠붙이 위로 몸을 숙인 채 얼토당토않은 프랑스어를 중얼거리면서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는 꿈이었다. 이 악몽을 꿀 때면 늘 그랬듯이(그 꿈이 무서운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는데), 농부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쇠붙이들 속에서 자신에게 뭔가 무시무시한 작용을 가하는 일을 벌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