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문학
· ISBN : 9788933111970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5-01-15
책 소개
목차
서문
제1부 병상 일기
묵주알/ 우애/ 빵/ 인형을 기다리는 어린이들/ 인형 문답/ 가야노의 양녀 문제/
성년聖年의 첫날에
제2부 여기당에서 한 생각
인형/ 여기당에서 한 생각/ 루르드의 기적/ 만리무영萬里無影/ 의향意向/
죽은 아내에게 사과한다/ 마음의 상처/ 호랑나비의 날개/ 부모의 추억/
아버지의 낙제기/ 육신肉身/ 과학자의 신앙
제3부 편지
제4부 26위位 성인을 기리며
역자 후기
책속에서
불씨
2월 말경부터는 가는 비가 내렸다. 밥솥은 문밖에 돌을 모아서 임시로 걸어놓은 것이므로 비가 오면 장작도 재도 모두 젖어버려 불을 땔 수가 없다. 더군다나 성냥을 얻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불씨를 꺼뜨리면 큰일이다. 뺨으로 물이 흐른다. 차가운 것은 빗물이고 따스한 것은 눈물이다. 이렇게 맥없이 비에 젖어 울고 있노라니 저 건너 방공호 속에 살고 있는 아가씨가 불이 붙은 장작개비를 횃불처럼 흔들면서 달려와 주었다. 이윽고 아궁이에서 불꽃이 일고, 판잣집 안에서는 딸 가야노가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방공호의 아가씨는 빗속으로 목을 움츠리고 되돌아갔다.
십자가
우리 집터 안방이었던 곳의 한쪽을 정성 들여 파 보니 역시 우리 집 제단에 모셨던 십자가가 있었다. 물론 나무는 타버렸지만 청동으로 된 그리스도상만은 손상된 곳 없이 그대로였다. 이 십자가는 도쿠가와[德川]의 박해시대 때부터 남몰래 전해 내려온 유서 깊은 것이다. 나는 모든 재산을 잃었으나 이 십자가를 잃지 않은 것이 무척 기뻤다.
5전錢
폭격을 피하기 위해 입었던 방공의防空衣 호주머니에 5전짜리 동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것이 내 전 재산이었다. 나는 그림엽서를 한 장 얻어, 나의 전화戰禍의 상황을 써서 아마구사로 돌아가는 간호사에게 그 5전과 함께 주며 고향으로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그 엽서를 받아본 사촌누이 오도미[富]가 위로 편지와 함께 100원을 보내왔다. 그 무렵 내 월급이 100원이었으므로 그 금액은 상당한 것이었다. 그때 성모의 기사 수도원의 폴란드인 수사가 연금軟禁에서 풀려 시베리아에서 돌아왔다. 나는 그 100원을 그대로 수도원에 바쳤다. 그 후 1개월이 지나 수도원도 겨우 자리를 잡게 되자 나에게 성경 한 권과 성모상 하나를 보내왔다. 십자가는 기둥에 걸려 있고 성모상과 성경도 있으니, 이밖에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노라니 온 우주의 재부財富를 혼자 독차지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도미 누이한테는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