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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 ISBN : 9788996653011
· 쪽수 : 248쪽
책 소개
목차
1장 1945년 8월 9일
폭풍전야의 나가사키
번쩍, 쾅!
태양이 빛을 잃다
친구의 아이
2장 세상의 종말
전멸, 사람을 먼저 구한다
생존자들의 밤
죽창과 원자폭탄
거대한 무덤
아내의 묵주
3장 여기애인(如己愛人)
순례자들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하여
살아남은 자의 슬픔
4장 전쟁은 끝났지만
인류최초의 원자병
원자병의 치료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아버지의 유산
5장 평화의 기도
슬퍼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나가사키의 종
죽음 앞에서
유언, 사랑하는 아이들아
리뷰
책속에서
그는 깜짝 놀라 소의 목을 끌어 당겼다. 우라카미 하늘에는 희고 뭉클뭉클한 솜 같은 구름이 생기더니 점점 커지고 있다. 초롱을 흰 솜으로 두껍게 싼 것 같이 겉은 하얗지만 가운데에는 빨간 불덩어리가 빛나고 있었다. 흰 구름 중심에서는 적색, 황색, 보라색으로 빛나는 섬광이 쉴새없이 번쩍이면서 방전을 일으켰다.
구름은 만두 형태가 되어 계속 위로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버섯 같은 모양이 되었다. 이번에는 그 흰 구름 바로 아래의 우라카미 지상에서 시커먼 연기가 딸려 올라가듯 솟구치기 시작했다. 위의 버섯 모양의 구름은 창공 높이 오르더니 이내 시커멓게 변하면서 형체가 찌그러져 동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아래의 검은 구름도 산보다 높이 솟았다가 일부분은 다시 땅위로 떨어지고 일부분은 동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날씨는 쾌청하여 햇빛은 산과 바다에 비치고 있었으나 우라카미만은 거대한 구름의 그림자에 가려 캄캄하게 보였다. 잠시 후 ‘쾅!’하는 소리가 나더니 옷자락이 펄럭거리고 나뭇잎들이 바람에 불려 날아갔지만, 폭풍도 여기까지 와서는 퍽 약해진 셈인지 소도 놀라서 날뛸 정도는 아니었다. 가토는 바로 근처에서 또 다른 폭탄이 터진 줄로만 알았다.
- ‘번쩍, 쾅!’ 에서 -
여기저기 사람의 절단된 사지가 굴러다니고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리는 자도 있었다. 두개골절인 듯하다. 엄청난 힘이 땅바닥에 둘러메친 듯하다. 입으로 피거품을 내뿜는 자도 있다. 토미타 군이 그 사이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을 먹이고 말을 걸며 돌아다니고 있다. 제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중에 조금이라도 몸을 뒤척이는 자가 있어 ‘혹시 살릴 수 있을까’ 하고 가보면 곧 눈을 하얗게 치켜뜨고 죽어 버린다. 이렇게 20여 명이 앞을 다투어 죽었다. 둘이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오키 교수는 “거기...누구 없어요!” 하고 사방으로 외쳤다. 꼼짝 않고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바람은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돌풍이 일으키고 있었다. ‘휘익 휘익’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섞여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 도와달라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사람 살려요!” “괴로워요!”, “도와주세요!” “뜨거워요, 타들어 가요.” “물 좀 주세요!”
“어머니...”
교수는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하늘이 온통 고체와 같이 짙은 악마의 형상을 한 구름(魔雲)에 덮여있다. 태양은 빛을 잃고 불그스름한 원판으로 보인다. 주변은 석양이 질 때처럼 어둑어둑하고, 오싹하리만치 추웠다. 귀를 기울이고 들으니, 도움을 바라는 목소리는 점점 줄어갔다. 엄마를 부르던 아이는 이미 타 죽은 것 같았다.
- ‘태양이 빛을 잃다’ 에서 -
단 한 방으로 이렇게 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 엄청난 파괴력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그때 간호부장이 달려와서 한 조각의 종이를 줍는다. 어젯밤에 적기가 뿌리고 간 삐라다. 종이 위의 글을 보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뭐! 원자폭탄!”
나는 다시 한 번, 어제와 똑같은 충격을 받았다.
‘원자폭탄의 달성’
‘일본은 패했다!’
그렇구나! 갑자기 어제부터의 일들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이 위력은 원자폭탄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제부터 관찰했던 결과는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원자폭탄의 폭발가설과 모든 점에서 꼭 들어맞는다. 어떻게 이 어려운 연구를 완성했단 말인가!
과학의 승리! 조국의 패배!
물리학자의 환희! 일본인의 비탄!
나는 복잡한 감정으로 설레는 가슴을 가다듬어 가며,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원자 벌판을 배회한다. 죽창이 떨어져 있다. 발로 차니까 ‘덜컥 덜컥’ 하며 공허한 소리를 낸다. 집어 들어서 하늘을 항하여 찌르는데 눈물이 났다.
‘죽창과 원자폭탄...아아! 죽창과 원자폭탄이라니! 이 얼마나 비참한 희비인가? 이게 무슨 전쟁인가? 이것은 더 이상 전쟁일 수 없다. 우리는 그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죽기 위하여 땅위에 나란히 줄 세워졌을 뿐이다.’
- ‘죽창과 원자폭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