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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툼

카르툼

(대영제국 최후의 모험)

마이클 애셔 (지은이), 최필영 (옮긴이)
일조각
30,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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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툼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카르툼 (대영제국 최후의 모험)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영국사
· ISBN : 9788933706725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13-12-17

책 소개

영국 여왕에서 베자족 전사까지, 흥미진진한 인물들이 펼치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 제국주의의 자기장이 가장 강력했던 19세기 말, 대영제국의 마지막 모험이라 할 만한 영국-수단전쟁을 다룬 흥미로운 역사서이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책을 옮기며
카르툼을 읽기 전에
주요 등장인물
프롤로그: 샤이칸의 대학살
검은 사람들의 땅
마흐디국의 탄생
마지막 열차
세상의 끝
무너진 방진
수단 기계
옴두르만의 원한
에필로그: 남겨진 사람들

저자소개

마이클 애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작가이자 탐험가이며, 영국왕립문학협회 회원이다. 리즈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 중 하나로 꼽히는 SAS에서 근무했고, 3년간 수단에서 살며 아랍의 언어와 문화를 익혔다. 영국왕립지리학회의 네스 상, 영국 왕립스코틀랜드지리학회의 뭉고파크 메달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Impossible Journey: Two Against the Sahara(1988), Lawrence: The Uncrowned King of Arabia(1998), The Real ‘Bravo Two Zero: The Truth Behind Bravo Two Zero’(2002), Get Rommel: The British Plot to Kill Hitler’s Greatest General(2004) 등 역사서 14권, 특수부대를 소재로 한 Death or Glory(2009) 시리즈 등 소설 7권과 TV 다큐멘터리 6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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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육군 소령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에서 지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휘관과 참모장교 보직을 여럿 거쳤으며, 한국군 건설공병지원단(서희부대) 통역장교로서 이라크와 쿠웨이트에서(2003~2004) 그리고 UN Mission in Sudan(UNMIS)의 Military Observer와 교관으로 수단에서(2006~2008) 각각 근무했다. 육군사관학교 외국어학과 강사(2010~2012)와 한미연합군사령부 정보참모부(2014~2016)를 거쳐 현재는 해외파병 관련 직위에 근무 중이다. 역서로는 수단 내전의 원인과 실상을 다룬 『수단 내전』(2011),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가 충돌한 제1·2차 영국-수단 전쟁을 다룬 『카르툼』(2013),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디데이』(2014)가 있다. 논문으로는 남수단 분리와 독립의 최대 쟁점인 아비에이(Abyei) 문제를 다룬 “아비에이 문제의 원인과 전망”(《아프리카 연구》 제30호, 201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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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883년 11월 5일, 샤이칸 전투에서 승리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수단에 마흐디국을 세웠다. 당시까지 아프리카대륙에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한 곳은 마흐디의 수단뿐이었다. 샤이칸 숲의 패배는 서구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왔다. 때마침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앞두고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영광이 정점에 다다르던 시절, 일개 반군에게 원정군이 몰살되었다는 소식은 빅토리아 시대의 앞길에 큰 숙제를 안겨주었다.
1820년, 무함마드 알리의 군대가 이집트 남쪽 경계를 건너기 전, 수단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저 황량한 구릉과 산, 계곡과 늪, 호수와 푸른 초원, 불모의 사막과 해안선으로 이뤄진 259만 제곱킬로미터의 거대한 땅덩어리일 뿐이었다. 그곳엔 얼마 되지 않는 초지에서 농사를 짓거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부족을 이뤄 이리저리 흩어져 살고 있었다. 부족들이 쓰는 언어만도 400개에 달했다. 어찌 보면 수단은 아랍과 아프리카 문화의 혼합체였다. 수단에 아랍인이 정착한 것은 12세기경부터였고 아랍인들은 이 땅을 ‘검은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을 지닌 ‘빌라드 아-수단bilad as-Sudan’이라 불렀다.
지난 400년간 수단에선 부족 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수단 땅에 영지를 건설하자 내란의 양상은 더 복잡해졌다. 18세기까지 수단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청나일강 유역의 센나Sennar를 수도로 삼은 푼즈Funj였다. 푼즈는 16세기, 원주민 농민과 아랍 유목민이 연합해 만든 술탄의 영지였으나 잦은 내란을 치른 덕에 1820년대에 들어서서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한 채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었다. 1821년 무함마드 알리의 이집트 침공군이 센나에 도착했을 때 이들은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알바니아 출신인 무함마드 알리 파샤는 오스만제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이집트 총독까지 오른, 운 좋은 인물이었다. 무함마드 알리는 명목상으로는 오스만제국의 최고 지도자인 술탄의 부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이집트를 직접 통치하는 군주나 다름없었다.
술탄은 세속 군주이자 동시에 최고 종교 지도자이며 세상에 알라의 뜻을 처음으로 전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이다. 따라서 무함마드 알리가 수단을 정복하자 수단은 원칙적으로 오스만제국의 영지이면서 동시에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인 이집트의 식민지가 된, 이상한 형국이 만들어졌다.
- 검은 사람들의 땅


영국군은 많은 인종의 ‘야만인’들과 싸워봤지만 야만인이 영국군보다 더 용감한 적은 없었다. 제60소총연대 소속의 퍼시 말링Percy Marling 중위는 당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그러나 이번 전투는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했다. 누구보다 베자족이 가장 대담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말링 중위가 종교적인 열정이라고 표현한 것은 쉽게 말해 투혼이었다. 베자족은 결코 종교적인 광신도가 아니었다. 베자족의 시체를 살펴본 벌리 특파원은 그들이 자기와 아주 흡사한 모습을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다. “베자족은 사나운 야만인이나 피에 굶주린 사람이라기보다는 열성적인 사람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중략) 베자족이 보여준 과감하다 못해 무모해 보이는 돌격은 영국군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불러처럼 남아프리카에서 줄루족과 싸운 경험이 있는 사람도 이런 형태의 돌격은 본 적이 없었다. 줄루족은 커다란 무리를 이뤄 공격했기 때문에 잘 훈련된 소총수들이 일제사격을 가하고 신속하게 재장전할 수 있으면 제압할 수 있는 표적에 불과했다. 그러나 가혹한 사막에서 성장해 깡마르고 팔다리가 긴 베자족은 느슨한 대형으로 무리를 지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들며 공격했기 때문에 사격으로 제압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이러한 베자족의 용맹함은 훗날 영국 민담에서 되살아났다. 나중에 러디어드 키플링이 쓴 시 「퍼지-워지Fuzzy-Wuzzy」에 ‘1급 전사first-class fighting man’와 같은 구절로까지 등장한다. 에-테브 전투 이후, 베자족이 300미터 안으로 접근해 이들을 막을 확신이 들기 전에는 사격하지 말라는 지시가 영국군에 떨어졌다. 베자족은 보병이 아니라 ‘명예 기병’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베자족을 상대할 때는 마치 말 탄 사람을 상대하는 것처럼 넓게 열린 곳에서 확실한 방진을 구성해야 했다.
베자족이 영국군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처럼 베자족 또한 영국군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예기치 못하게 패했다는 것이 베자족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들은 과거 6천 년 동안 싸워온 전통이 있었고 ‘야만인’에게 진다는 것은 익숙한 경험이 아니었다. 이들은 으레 그렇듯 이번에 온 ‘튀르크인’ 또한 쉽게 쫓아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불을 쓰는 악마들은 예전처럼 총을 내던지고 도망가거나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압도하고 패배시켰다. 이 새로운 ‘튀르크인’은 잔인하기로 유명한 베자식 공격에 맞서 고도의 극기력을 보이며 방진을 유지했다.
- 마지막 열차


이렇게 만들어진 철도에는 수단군사철도Sudan Military Railway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략) 1896년에 하루 0.8킬로미터씩 건설할 때부터 견습공으로 일했던 철도 기술자들은 하루에 3.2킬로미터를 설치하는 숙련공이 되어 있었다. 이 노선에 새로운 인부 1천500명이 합류하면서 수단군사철도를 건설하는 인력은 모두 3천 명까지 늘어났다. 3천 명이나 되는 인부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제공하고 만족스럽게 대우해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야말로 키치너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데 알맞은 일이기도 했다. 건설 인력 대부분은 철도 부설이 이뤄지는 맨 앞에서 나흘 혹은 닷새에 한 번씩 숙영지를 전진시키며 생활했다. 이 숙영지는 식당으로 쓰는 천막을 포함해 천막 수백 동과 전신, 우편 사무소, 상점, 급수장과 저수조로 구성되었다. (중략)
키치너가 ‘수단 기계’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바로 수단군사철도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업적 때문이다. 철도 건설은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철도 건설의 선봉은 선로 부설 현장에서 약 10킬로미터 앞에 머물며 작업하는 측량반이었다. 측량반은 키치너가 신뢰하는 젊은 공병 장교 두 명이 지휘했고 그 밑에는 영국 공병 부사관 한 명 그리고 경위의經緯儀와 수준기水準器를 사용할 줄 아는 이집트군 측량병 18명이 있었다.
측량반은 마치 거대한 강철 뱀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철로 건설에서 두뇌 역할을 수행했다. 측량반은 번호가 적힌 나무 말뚝을 100미터마다 박아 나갔다. 얼마만큼 흙을 돋워 토대를 만들지 또는 얼마만큼 땅을 깎아내야 할지를 적은 지시문이 매일 철로 건설 끝자락에 있는 공사 감독에게 전달되었다. (중략) 측량반의 외각 방어를 담당한 아바브다족 낙타꾼들은 무라트에 있는 거점을 중심으로 일정하게 사막을 순찰했다. 아바브다족 낙타꾼들은 측량반보다 65킬로미터나 앞에 나와 있었기에 설령 기습할 생각으로 마흐디군이 접근하더라도 사전에 기습 의도를 파악하거나 마흐디군의 흔적을 발견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중략) 구름 한 점 찾을 수 없이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사막 위로 철길이 조금씩 길어졌다. 철도대대는 용광로 같은 더위, 아무리 물을 마셔도 풀 수 없는 갈증, 격렬한 노동에 수반되는 허기, 사막의 질병, 그리고 가혹한 모래 폭풍과 끊임없이 싸웠다. 수단군사철도 건설 과정에 몇 명이 죽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대략적인 짐작은 가능하다. (중략)
2년 뒤, 윈스턴 처칠은 이러한 소문을 암시하는 내용을 저서에 남겼다. “누비아 사막에는 무명 흙 무덤이 많이 있다. 이것들은 철도 건설 현장을 따라 숙영지의 이동 흔적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달성되는 것은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 옴두르만의 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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