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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88934975557
· 쪽수 : 272쪽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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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마유미가 개인칸에서 나왔다. 미치코는 손짓으로 불러서 손을 씻으라고 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자상한 엄마와 딸이라는 이미지가 흔들린 것은 마유미가 세쓰코 옆 세면대에서 까치발을 한 채 물색 블라우스 소매를 걷었을 때였다. 수도꼭지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물 아래 양손을 비비는 팔목에 멍이 반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오래된 것, 새로 생긴 것, 내출혈은 보라색에서 황록색, 노란색 등 모아심기를 해놓은 제비꽃 같았다.
그 내출혈이 손으로 꼬집은 흔적이란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세쓰코는 어린 시절 자신의 팔다리에 핀 색색의 내출혈 혈흔을 떠올렸다. 사람들 앞에서 꼬집혀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울지 않는 게 원칙이었지만, 마유미는 어떨까. 엄마가 남의 노래를 낭독하며 회의 테이블에 가려진 딸의 팔을 꼬집는 장면을 상상했다.
웃는 게 고작으로 울 여유는 있을 리 없다는 건 쉽게 상상이 갔다. 거울 속에서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맑은 눈동자가 음산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선생님 취미는 뭐예요?” 스무 살의 세쓰코가 물었을 때, “여자”라고 대답해서 빈축을 샀던 기억도 그리웠다.
“너무 멋 부리는 대답 아니에요?”
“없다고 하는 것보다 낫잖아.”
“제 취미가 남자라고 하면 어떻겠어요?”
“무서워하면서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겠지.”
자신들은 살을 포개기 전까지 쌓아올린 기억을 먹으면서 십 년에 걸쳐 조금씩 썩어왔다고 생각했다.
고다 기이치로와 결혼한다는 통보를 받은 밤, 눅눅한 카펫 위에서 세쓰코를 안았다.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을 한없이 몰아붙였다. 이것으로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이렇게 가는 실을 조절해가면서 몸을 연결하고 있다.
세쓰코가 테이블에 앉았다. 카펫에 펼쳐진 원피스 자락이 형광등 불빛을 빨아들였다. 사와키는 멍하니 자신의 하루하루를 돌이켜보았다. 좌식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술을 마시고 흥미도 없는 스포츠 뉴스를 보면서 기다 사토코가 갖다준 반찬을 집어먹는다. 아무것도 없을 때는 밖으로 나온다. 나온 길에 뒤탈이 없는 여자를 조달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자의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도 마흔 넘은 남자의 생활 따위 묻지도 않고 먼저 말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