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다키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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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교우회지를 편집하거나 중앙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거나 하면서 일찍부터 발휘된다. 1921년,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변동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했다.《씨 뿌리는 사람》이 창간되고,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의 조직적인 전개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1924년 오타루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한 다키지는 홋카이도 다쿠쇼쿠(拓植)은행 오타루 지점에 취직한다.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의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로 사회적 근원을 추구하면서 비판적 현실주의로 나아가, 하야마 요시키와 고리키 등의 작품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27년경부터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사회의 모순을 알게 되고, 그 후 오타루의 노동운동에 직접 참가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도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1928년 3월 15일, 일본에서 비합법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단체가 큰 탄압을 받게 된다. 소위 3·15사건이다. 오타루에서도 2개월에 걸쳐 500명 이상이 검거되어, 다키지 주변의 친구와 동지들이 다수 체포되었다. 그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구라하라 고레히토(藏原惟人)의 영향을 받아 완성한 데뷔작 《1928년 3월 15일》은 이 사건을 취재한 것으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과 경찰의 참혹한 고문을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의 불굴의 정신력과 이것에 대비되는 천황 지배 권력의 잔학성을 폭로해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다. 그는 이 작품을 《전기(戰旗)》(1928)에 게재하며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 활동에 들어간다.
1929년에는 북양 어부의 실상을 취재해 《게잡이 공선》을 완성한다. 《게잡이 공선》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뿐만 아니라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이후 《부재지주(不在地主)》(1929), 《동굿찬행(東俱知安行)》(1930), 《공장 세포(工場細胞)》(1930), 《독방(獨房)》(1931), 《전형기의 사람들(轉形期の人?)》(1931), 《늪 귀퉁이 마을(沼尻村)》(1932), 《지구의 사람들(地區の人?)》(1933) 등을 발표했다. 사후에 일본 문학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적 인간의 조형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당 생활자(黨生活者)》가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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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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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도리츠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한 후, 전주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임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 몸은 고양이야』 『한눈팔기』,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개인적인 체험』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 『회복하는 인간』 그리고 『게 가공선』(고바야시 다키지), 『라쇼몬』(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세키가하라 전투』(시바 료타로), 『시의 힘』(서경식), 『성소녀』(쿠라하시 유미꼬),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가토 슈이치), 『바다 밑에서』(김석범)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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