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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8708
· 쪽수 : 244쪽
책 소개
목차
그 밤의 경숙
국수
옥천 가는 날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막차
구덩이
발문|이병창
새로 쓴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추천사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반죽에 찰기가 붙으며 한덩이의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차지게 맺힌 응어리와 한바탕 씨름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괜한 오기까지 뻗치는 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내 손가락들이 악착같이 달려들고 매달릴수록 양푼 속 응어리는 더 차져집니다. 그런데요…… 응어리와 달리 내 안의 뭔가가 풀리는 것만 같은 게…… 뭉치고 맺힌 뭔가가…… 응어리라고밖에는 별달리 표현을 못하겠는 그 뭔가가 부드럽게…… 반죽의 시간이 당신에게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_「국수」
“언니, 엄마는 옥천이 뭐가 그리 좋아서 그렇게나 가고 싶어했을까?” 애숙은 스스로에게 묻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옥천 말고 갈 데도, 떠오르는 데도 없었나보지, 옥천 말고는……”
“엄마…… 옥천 가니까 좋으세요?” 애숙이 보채듯 물었지만 어머니는 역시나 아무 말이 없었다. “옥천 가니까 좋으시냐구요?”
“엄마, 애숙이가 묻잖아요. 옥천 가니까 좋으시냐고……”
정숙과 애숙의 입이 다물리며 그녀들의 고개가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차들이 밀물처럼 몰리는 톨게이트를 통과해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까지 그녀들은 그렇게 고속버스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낯모르는 승객들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_「옥천 가는 날」
아무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서인지, 그녀는 다른 이들은 여느 날 밤처럼 아무렇지 않게 집에 돌아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녀는 거실 창문 너머 앞 빌라를 살폈다. 창틀 너머로 손을 뻗으면 벽에 손끝이 닿을 듯 가까운 신축 4층 빌라에는 열여섯개의 창문이 있었는데, 불을 밝힌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다들 돌아와 벌써 잠자리에 든 것인지, 아니면 다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138~39면)
땅이 흔들렸어…… 전날 돼지 천오백여마리를 구덩이에 파묻고 마무리 작업을 얼추 끝냈을 때였다. 굴착기에서 내려와 두 발을 내딛던 그는 매몰지 일대 땅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착각이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혼자만 느낀 게 아니었다. 가까이 있던 유령 둘이 자기들끼리 나직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던 것이다.
“돼지들이 몸부림을 치는군……”
유령 하나가 매몰지 한가운데 경고 푯말을 세우고 있었다. 그 유령 너머 서쪽 산 너머 낮게 내려앉아 있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핏빛은 점점 짙어지고 탁해지며 땅으로 깔려왔다.
나는 구덩이만 팔 뿐이야…… 그 구덩이에 뭘 묻든 내가 알 바 아니야…… _「구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