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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신채호 이익상 양건식 나혜석 소설 선집

[큰글자도서] 신채호 이익상 양건식 나혜석 소설 선집

신채호, 이익상, 양건식, 나혜석 (지은이)
창비
1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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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신채호 이익상 양건식 나혜석 소설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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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큰글자도서] 신채호 이익상 양건식 나혜석 소설 선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75710
· 쪽수 : 116쪽
· 출판일 : 2018-09-01

책 소개

20세기 한국 근대문학을 총결산하는 '한국 대표소설 선집'(큰글자도서). 신채호, 이광수, 김동인, 이효석, 이상 등 대표적인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월북작가들의 소설 등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작품들도 다수 포함해 총 42명의 작가, 109편의 소설을 스물다섯 권에 담아냈다.

목차

신채호 용과 용의 대격전
양건식 슬픈 모순
이익상 어촌
나혜석 경희

저자소개

나혜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지식인 중 한 명으로, 화가이자 작가, 여성운동가, 독립운동가로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며 한국 여성으로서 최초로 여러 영역에서 선구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도전과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자아를 찾으려 했던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다. 문필가로서 나혜석은 ‘신여성’ 담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조선일보》《동아일보》《여자계》《신여자》 등 각종 신문과 잡지에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혼고백서」「부인문제와 결혼관」「여자도 사람이다」와 같은 저술을 통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임을 역설했다. 당시 그녀의 글은 보수적인 조선 사회에서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의 그림과 글은 일제강점기 조선 여성의 억압된 현실과 그 속에서의 저항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나혜석은 끝까지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개인의 비극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여성 해방과 민족 해방의 가치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나혜석의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은 비극과 투쟁, 창조와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후에도 오랫동안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그녀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의 부흥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나혜석은 한국 근대 여성사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미술, 문학, 사회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보여준 그녀의 활동은 당시 조선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으며, 이후 한국 여성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이제 ‘신여성’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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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역사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1880년 충청남도에서 출생했다. 호는 단재丹齋,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18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가 되던 1905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그해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었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1907년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했고 시론, 논설 등을 쓰며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언론운동을 펼쳤다. 또한 〈독사신론〉을 포함한 역사관계 논문과 다수의 영웅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에도 힘썼다.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한 후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전념하는 한편 답사와 저술 등을 통해 상고사 연구에 힘썼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한 그는 5월, 타이완에서 체포되어 다롄으로 이송되었다. 193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으로 이감되었으며,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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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귀거래', '석사자상', '미의 몽', '슬픈 모순'등 불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소설과 비평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여 신문학 개척에 공헌하였다. 지은 책으로 <가족사진>, <남자의 노래>, <슬픈 모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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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5년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태평동에서 전주 이씨 건한과 김해 김씨 성녀 부부의 두 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이윤상(李允相), 호는 성해(星海). 이익상의 문학적 행보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1920년 김억·남궁벽·우상순·황석우·변영로·나혜석·염상섭 등이 창간한 동인지 《폐허》에 참여했으며, 1921년 ‘도쿄 조선인유학생학우회’의 기관지인 《학지광》 편집부원을 지냈다. 1924년 김기진·박영희·안석영·김복진·연학년·이익상·이상화 등과 그들의 성과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파스큘라(PASKYULA)’를 결성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투쟁하는 예술’ 운동을 표방했다. 1925년 파스큘라와 1922년 조직된 최승일·송영·김영팔 등의 좌익 문학 단체 ‘염군사’를 통합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을 결성했다. 그러나 1926년 12월에 개최된 카프 임시 총회에서 자진 탈퇴하는데, 투철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투사를 필요로 하는 조직과 부합되지 않는 그의 성격이 그 원인으로 보여진다. 이익상은 1924년 9월 《조선일보》 기자로 출발해 1927년 11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와 학예부장을 역임한 뒤에 1930년 2월부터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하는 등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이익상은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 분야인 영화와 연극에까지 폭넓은 관심과 활동을 전개해 나갔는데, 1926년에는 김기진·윤심덕 등과 함께 진보적 연극 단체 ‘백조회’를 결성했으며, 1929년에는 김홍진·박승희·김팔봉 등과 동양영화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같은 해에 이익상(《매일신보》)은 이서구(《매일신보》), 김기진(《중외일보》), 안석영(《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사 영화 담당 기자들과 영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찬영회’를 조직했다. 찬영회에서는 출범 기념으로 최승희의 무용과 극단 토월회의 연극 공연, 영화 상영회 등을 개최했으나, 1931년 1월 나운규가 주도한 ‘찬영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했다. 작가와 언론인으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 당대 지식인들이 선망했던 이상적인 경력의 소유자인 이익상도 식민지 지식인의 생활고는 비켜 가지 못했다. 이익상은 불안정한 생활과 고혈압, 대동맥경화증 등 신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했는데, 특히 투병 중이던 최서해에게 대량 수혈한 후유증으로 1935년 4월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남긴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낙오자〉(1919), 〈번뇌의 밤〉(1921), 〈연의 서곡〉(1924), 〈흙의 세례〉(1925), 〈쫓기어 가는 이들〉(1926), 〈그믐날〉(1927) 등과 장편소설 《키 잃은 범선》(《조선일보》, 1927. 1. 1.∼7. 19), 《짓밟힌 진주》(《동아일보보》, 1928. 5. 5.∼11. 27), 《그들은 어디로》(《매일신보》, 1931. 10. 3.∼1932. 9. 2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1926년에 발표된 《흙의 세례》(문예운동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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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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