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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7473012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13-07-19
책 소개
목차
숲의 시작 7
숲의 바깥 17
숲의 끝 153
작가의 말 165
작품 해설
미스터 노바디(nobody)가 그대를 사랑할 때_ 양윤의(문학평론가) 16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호수 속으로 손을 넣어 이리저리 휘젓자 완성될 듯 완성되지 않던 그 거인 여자의 얼굴은 물방울과 함께 사라졌다. 이번에도, 아니 이번만큼은 그녀의 모습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숲 속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호숫가까지 이어지던 외길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두워진 숲 속엔 황홀한 빛깔의 꽃가루가 정령처럼 날아다녔고 아직 태양의 온기가 남은 황금빛 열매들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앉은 채로 스니커즈를 벗고 청바지 밑단을 올린 후 호수 수면에 맨발을 대 보았다. 이내 발가락 끝에서부터 시작된 선뜩함이 전율처럼 온몸으로 퍼져 갔다. 미수는 눈을 꾹 감고 호수 속으로 두 다리를 깊이 담갔다. 셋까지세고 난 뒤 이 안으로 들어가리라, 미수는 다짐했다. 하나, 둘. 다시.
하나.
둘.
그리고…….
형광등을 껐다. 방과 현관 사이의 문턱은 미수가 이 방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점이었다. 미수는 곧 문턱에 앉아 두 손을 현관 쪽으로 내밀어 새 모양을 만들어 보았다. 할머니 방에서 현수에게 보여 주곤 하던 그 새였다. 장난감 하나 없는 그 방에 하루 종일 갇혀 있다 보면 현수는 자주 뻗대거나 울었고 미수는 뭘 해서라도 현수를 웃게 해 줘야 했다. 보안등이 켜졌다. 노래할 줄 모르는 새는 현관 바닥에 나타나 부드러운 날갯짓을 하다가도 금세 미수의 방 저편 숲 속으로 잠적했다. 새가 잠시 갔다 오는 그 숲은 세계의 끝일 것만 같았다. 아마도 은백색 가지로 사랑을 속삭이는 나무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숲, 그런 곳. 보안등이 다시 꺼졌다, 켜졌다. 미수는 졸음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숲에서 새를 불러왔고 다행히 새도 지치지 않고 미수의 방을 방문해 주었다.
그때였다.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조심스럽게 옆을 보니 윤이 난간 너머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가스총을 입안에 밀어 넣고 있는 게 보였다. 미수는 꿈쩍도 하지 못한 채 그의 행동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알루미늄 합금의 이물감 때문인지 윤은 이내 입에서 가스총을 빼고는 등을 구부려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했다. 헛구역질이 잦아들자 이번엔 가스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짓눌렀는데, 그의 손등에 돋은 파란 심줄과 무섭도록 붉게 충혈된 눈동자의 실핏줄이 줌인된 카메라로 들여다본 것처럼 지나치게 선명했다. 뒤늦게 난간에서 내려와 그에게서 총을 빼앗으려 했지만 그곳은 촉감이 제거된 세계였으므로 어떤 짓도 소용없었다. 총알이 발사되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 총알이 장전되지 않은, 심지어 가스조차 충전되지 않은 무력하고 무해한 가스총일 뿐이었다. 영원히 발사되지 못할 총. 어쩐지 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개가 없는 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