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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88925573090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25-10-0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제1장 초대장
제2장 피안장으로
제3장 첫째 날
제4장 둘째 날
제5장 참극
제6장 마지막 날
에필로그
리뷰
책속에서
“피안화는 주로 신사 경내에 피어서 그런지,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피안화를 꺾으면 불이 난다는 말을 어릴 적에 들었지.” 유토가 옛날 생각이 난다는 듯 덧붙였다.
“피안화는 일반적인 꽃과는 생태가 좀 달라.”
렌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근에서 올라온 꽃이 시든 후에야 잎이 나오지. 그래서 잎 없이 꽃만 피어있는 거야. 꽃과 잎이 동시에 피지 않으니까 어쩐지 위화감이 들어서 신비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그리고 세 사람을 향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가을피안 무렵에 핀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도 불길한 이미지에 한몫하는지 모르지. 피안…, 즉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니까. 독이 있는 이 식물을 먹으면 저세상에 가는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
“만주사화라고도 하죠.”
히나타의 말에 “응” 하고 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안화는 이름이 많아. 천 개도 넘는다는군. 송장꽃, 지옥화, 유령화, 여우꽃, 독꽃, 면도날꽃….”
“와, 어쩐지 무서운 이름뿐이네요.” 유토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하지만 이름이 많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을 매료해 왔다는 뜻이기도 할 거야.”
수다스러운 데 반해 렌이 건성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갑자기 말이 끊겼다.
렌이 저 먼 곳을 보는 것처럼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작게 중얼거렸다.
“…이모부는 저쯤에서 불타 죽었어.”
피안화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바라보며 꺼낸 말에 흠칫 놀랐다.
그의 이모와 이모부가 여기서 불의의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땅을 가득 채운 붉은색이 한순간, 사람의 몸을 무자비하게 삼키는 불길처럼 보였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중 무직인 하야카와 아키라 씨는 실내에서 목을 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키라는 깜짝 놀라 숨을 삼켰다. 너무 무서워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뉴스를 보도하는 목소리가 일부러 느리게 재생한 것처럼 일그러졌다.
“목을 맸다고 합니다.”
“목을 맸다고.”
“목을.”
무릎에서 힘이 빠져서 아키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요해서 거친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자 바닥에서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커다란 덩어리 같은 검은 그림자가 앞뒤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뭐지?
아키라는 머뭇머뭇 위를 보자마자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천장에 묶은 밧줄로 목매단 채 느릿느릿 흔들리는 사람 형체가 벽에 선명하게 비쳤다.
아무것도 없지만 분명 있다. 자기 바로 옆에 목을 맨 시체가 매달려 있다.
아키라는 먹이를 찾는 잉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무서워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머릿속에서 끼잉, 하고 귀울림 같은 소리가 났다. 라디오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인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 방에서 나가야 한다 싶어 아키라가 필사적으로 손을 뻗은 순간,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