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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9207103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3-12-24
책 소개
목차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머니의 눈물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니다. 그것이다. 실패의 기억. 그것에 답이 있을 것이다. 실패는 많았다. 성공보다 많았다. 실패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좌절이나 절망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것.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실패다. 사랑했으나 헤어졌고 응시했으나 떨어졌고 돈을 가졌으나 파산했고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실패고, 그리고, 태어났으나 죽을 것이다. 아니, 태어났으니 죽을 것이다. 죽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은 기억에 없다. 죽는 순간 역시 기억에 없을 것이다. 시작과 끝이 텅 빈 구멍이다. 그 구멍으로 온 생이 콸콸 쏟아져 사라질 것이다. 그것을 묶을 수 없을까. 밀봉할 수 없을까. 어머니다. 어머니가 시작했다. 어머니가 끝내야 한다. 그 구멍에, 어머니를 넣어야 한다. 어머니를 반으로 뚝 잘라 절반은 시작에 절반은 끝에 집어넣어, 내 인생이 새지 않도록 구멍을 막아야 한다. 어머니의 몸. 비쩍 마른 그것을 구겨 넣어야 한다. 원도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이건 나의 생각이 아니다. 원도가 중얼거린다. 아니다. 너의 생각이다.
그 무엇도 명확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존재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내 인생이 뒤틀려버린 단 한 순간이. 알아야 한다. 그때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좋은 기억도 있다. 물론이다. 따뜻하고 달콤해 절로 눈이 감기는 기억. 너무 아름다워 도리어 아린 기억. 아기 살결 같은, 노란 꽃 같은 기억들. 하지만 행복하고 평온했던 순간에 불행의 씨앗이 존재할 리 없다.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 아름다움이 눈을 가리고 감각을 마비시켜서, 자만과 오만과 착각의 함정에 빠트려서, 그래서 몰랐을 수도 있다. 더 없이 평온하고 따스한 봄날에 싹튼 불행을. 사소한 파열음조차 없던 미세한 균열을. 음험한 기운을 품고 움트기 시작한 악취를. 한순간 한꺼번에 닥치는 불행이란 없다. 징조가 있다. 시작이 있다. 보고도 본 줄 몰랐던, 겪고도 겪은 줄 몰랐던, 듣고도 들은 줄 몰랐던 유령 같은 시작. 단 한 방울의 독으로 모든 그림이 바뀐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 이 지옥에서 탈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