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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 한국 전통음악
· ISBN : 9788946064805
· 쪽수 : 336쪽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1장 그림을 감상하기 전에
2장 파격 풍류방
천재 화가 단원, 그 풍류방의 비범한 기물들 | 사대부(유교)와 신선(도교) 사이에서 | 고매하고 영험한 생황 | 비파라는 악기 | 사대부들이여, 나 김홍도는… | 마무리하며
3장 평양에 초청되어 이름을 남긴 스타
병풍에 찍힌 19세기 평양성 안팎 | 평안 감사! | 명품 성악 판소리, 그 초기 연행 현장 속으로 | 빅스타 모흥갑이 다녀갔다! | 또 한 명의 명창 고수! | 마무리하며
4장 선비와 거문고
왜 줄이 없는 현악기인가? | 거문고는 여섯 줄, 가야금은 열두 줄? | 왕산악과 거문고,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점 | 세상에 둘도 없는 거문고 연주법 | 거문고는 남성적, 가야금은 여성적? | 금과 슬, 그리고 거문고의 서로 다른 운명 | 중국 선비는 금을 탔는데 조선 선비는 왜 거문고인가? | 조선 선비들, 정말로 거문고를 탔을까? | 주인공의 정체 | 마무리하며
5장 도시 남녀의 한강 뱃놀이 데이트
의문의 화원, 혜원 신윤복 | 조선 화원의 혁명적 일탈 | 적나라하게 그린 상류층 세태 | 조선 남녀의 도심 뱃놀이 현장 | 뜬금없는 화제(?題) | 아주 특별한 대나무로 만든 대금 | 청소리는 맑은 소리? | 기생들도 즐겨 불던 악기, 생황 | 마무리하며
6장 1747년 초복, 선비들이 모였다
명문가 출신, 은일과 출사의 표암 강세황 | 시서화(삼절)의 달인, 서양화법을 도입하다 | 나이와 신분을 초월한 스승과 제자 | 주관자는 설명을 남기고 참가자는 시를 남기다 | 그윽한 정자에 모여 우아하게 쉬다 | 초복을 맞아 개장국을 먹다 | 거문고는 누가 연주했을까? | 엉뚱한 강세황, 파격의 자화상 | 마무리하며
7장 웃기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인
민화 속 오랜 단짝, 까치와 호랑이 | 천진난만한 민화, 아직 끝나지 않은 민화 | 익살, 익살, 불가사의한 우리의 익살 | 싸이의 「강남스타일」, 민화의 해학 정신을 이어받아? | 너무나 해학적인 우리 민요 | 해학의 챔피언, 판소리 | 마무리하며
8장 불보살의 그 큰 세계
고려 불화와 불교 음악 | 물 위에 비친 달과 관음, 고려의 유일한 그림 고려 불화 | 한국인과 불교, 그 남아 있는 많은 흔적들 | 불교의 천사, 부처님 비서. 아, 자비의 화신 보살들이여! |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 | <수월관음도> 속으로 | 영산회상, 우선 그 사건의 전모부터 | 아홉 곡의 모음곡, 정악의 백미 「영산회상」의 탄생 | 가장 유명한 불교 음악, 「회심곡」의 정체 | 마무리하며
9장 아흔아홉 칸 집 후원의 밀회
대저택 후원의 연못가에서 | 당상관 ‘나으리’와 의녀 기생 | 은밀한 유흥과 적나라한 현장 스케치 | 1700여 년을 이어온 신라의 가야금 | 뜯고 퉁기고 꼬집고 뒤집고 | 마무리하며
책속에서
송혜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추정만 해볼 수 있는데요, 앞에서 본 생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비파의 연주법이나 음색 등이 한국인들의 성정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인들은 음을 격하게 떠는 농현 주법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런데 이 비파는 동급의 위상을 지닌 현악기인 가야금이나 거문고와는 달리 농현하는 주법이 없습니다. 줄과 몸통이 거의 붙어 있어서 구조적으로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방법으로 농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기타를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기타 역시 줄과 울림통이 거의 붙어 있어서 농현을 세차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이유로 비파는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국악기 반열에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_ “파격 풍류방”
최준식: 조선조 때 중앙에서 감사가 올 적마다 그 도시에서 잔치가 벌어졌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 감사 환영 연희가 쇠퇴했던 반면 평양에서는 대규모 행사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평양이 교통의 관문이어서 물자가 풍부한 탓도 있겠지만 이 평안 감사의 임기는 다른 지역과 달리 2년이었던 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다른 지역의 관찰사는 임기가 1년인 것에 비해 평안도와 함경도는 중앙으로부터 멀기 때문에 임기가 2년이다). 이런 환경 덕에 2년에 한 번씩 새 감사가 부임할 때마다 대규모 환영 행사를 벌였고 행사 뒤에 그걸 그림으로 남기는 게 유행이나 관례로 정착됩니다. 그런 이유로 전국의 8도를 책임지는 각각의 감사들 중에서도 유독 평안 감사 부임 관련 그림만이 이렇게 남아서 전해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_ “평양에 초청되어 이름을 남긴 스타”
송혜나: 우선 조선 선비들에게는 투철한 ‘완물상지(玩物喪志)’ 정신이 있었습니다. <포의풍류도> 편에서도 나온 이야기입니다만 완물상지란 ‘희롱할 완(玩), 물건 물(物), 잃을 상(喪), 뜻 지(志)’로 구성되어 있으니 이 사자성어의 뜻은 ‘물건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팔리면 자신의 의지나 뜻, 그러니까 본심을 잃어버린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선비들은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희롱하는 일을 극히 꺼렸습니다. 양반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거문고 연주도 직접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겁니다. _ “선비와 거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