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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기초과학/교양과학
· ISBN : 9788946071551
· 쪽수 : 454쪽
책 소개
목차
제1부_ 우생학의 구상과 과학 저널리즘
제1장_ 20세기 초 진화론 계몽과 우생학 수용의 사상적 기반 자연과학주의와 과학 저널리즘
제2장_ 우생학과 사회사업 제1차 세계대전 후 운노 유키노리의 변신을 중심으로
제2부_ 잡지 미디어에서 우생학 운동의 전개
제3장_ ≪문화생활≫의 우생학 다이쇼 시대의 과학계몽과 잡지 미디어
제4장_ 쇼와 전쟁 전기(1930년대) 우생학 미디어의 성격 잡지 ≪우생학≫을 대상으로
제5장_ 1930~1940년대 ≪민족위생≫지의 성립과 변모 과학계몽과 학술특화의 사이
제3부_ 우생학의 정책화와 과학계몽 전쟁 중에서 전쟁 후로
제6장_ 전간기 일본의 우생학론자와 산아조절 논쟁의 발생부터 「국민우생법」까지
제7장_ 「국민우생법」 성립의 재검토 법안 논의와 과학계몽 사이
제8장_ 인적 자원 조사에서 「우생보호법」으로 다니구치 야사부로의 전쟁 중과 전쟁 후
제4부_ 신우생학의 전개와 매스컴 일본모성보호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제9장_ 신우생학의 미디어 캠페인 오갸 헌금의 등장과 전개
제10장_ 1970~1980년대 「우생보호법」 개정 논의의 재검토 일본모성보호의사협회의 동향으로부터
제11장_ 종장 결론
책속에서
역도태론은 동시대 진화론과 유전설에 근거하고 있었으며, 중산계급은 하층사회보다 물질 면이나 정신 면에서 ‘진보’하고 있다는 통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운노의 하층사회에 대한 적대감은 중산계급의 생활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운노는 중산계급의 궁핍을 언급하며 ‘우리나라에서 연수입 300엔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잔혹한 소행’이라고 했고, ‘중류인사에 대한 진흥방안’으로 ‘부담 경감’을 거론했다. 한편 운노는 ‘악질가족(?質家族)’을 구제하기 위해 ‘거액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상류, 중류 특히 중류사회’가 떠맡고 있으며 이 부담이 중산계급의 ‘감소’, ‘멸종’을 초래한다고 비난했다. 당시 근대 도시가 형성되면서 슬럼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 결핵, 영아사망, 출생률 감소, 성병 등의 위생학적 문제에 대한 대처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운노는 그러한 문제의 근원적이고 ‘과학’적인 해결방법을 우생학 안에서 찾아내려고 하여 “종족의 생명을 길게 하고 이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인류 중 열악자의 희생을 요구”했다. _ 제2장_ 우생학과 사회사업
1935년 12월 7일 협회의 부속 단체인 우생결혼보급회가 발족했다. 나가이 하나에를 회장으로 하는 여성들만의 단체였다. 이 단체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예를 들어 12월 8일자 ≪요미우리신문≫에는 “인텔리 여성 1000여 명이 모였다”라고 나와 있다(참고로 학회 발회식에는 800명). 나가이는 1952년 강연에서 발회식에 대해 “구단시타 군인회관의 대강당에서 거행했을 때처럼 발 디딜 틈도 없이 청중으로 가득 차 보조 의자를 꺼내도 자리가 부족했기에, 경관의 주의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늦은 사람들의 입장을 막아야 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협회의 계몽 이벤트는 비상한 관중동원 능력을 자랑했다. _ 제5장_ 1930~1940년대 ≪민족위생≫지의 성립과 변모
「민족우생보호법」안의 찬성자에 이름을 올렸던 의원의 반수 가까이가 이 취의서의 찬성자에 이름을 올린 점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 취지는 만주사변 이래 대외 관계가 악화되었음에도 ‘일본 민족의 본바탕을 나날이 피폐시키는 사태’를 우려하고 그 요인으로서 ‘먼저, 입학준비를 위해 어린아이들의 미숙한 심신에 압박을 주는 것’, ‘둘째, 과중한 공부로 인한 일반 학생의 정력 탈진’, ‘셋째, 영양 부족으로 인한 국민 전체의 신체 기능을 쇠퇴’를 들었다. 특히 셋째에 관한 사항으로 각기병의 원인으로 백미식을 들어 현미식을 장려하고, 그것이 어려울 때에는 망고를 하루 걸러 대용하라고 말했다. 아라카와는 참고문헌에 민족위생학회 이사장 나가이 히소무의 ‘민족위생’도 열거했다.12 또한 이 학회의 회지인 ≪민족위생≫에서도 현미식을 강조하고 있다.13 다시 말해서 아라카와는 우생학에 머물지 않고 교육, 위생 전반을 의식한 ‘민족의 소질(素質)’ 개선을 구상하고 있었다. _ 제7장_ 「국민우생법」 성립의 재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