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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46083400
· 쪽수 : 484쪽
· 출판일 : 2024-10-25
책 소개
목차
1. 해방, 그리고 귀국
상하이에서 맞은 광복 / 상하이 교민 사회의 혼돈 / 임시정부의 씁쓸한 환국 / 처음 본 조국 / 오줌싸개의 첫사랑
2. 청소년 시절
백범 암살 1: “우리 선생을 쏜 게 저놈들이다!” / 백범 암살 2: “형님은 복도 많으시오” / 성재의 길, 백범의 길 / 한국전쟁 이야기 / 피난 중학교 시절: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배우다 / 고교 악동 시절: 낭만, 정의, 사랑 / 육군사관학교 면접에서 겪은 모욕: “소위 독립운동한 집안인가?”
3. 군문에 첫발을 딛다
육사 생도 시절: 좌절과 회의를 넘어 / ‘정치적 희생양’ 조봉암 / 얼마나 오래 기다리던 결혼이었나: 1960년 육군 소위로 결혼 / 4·19 혁명: 민심 폭발의 현장을 목격하다 / ‘장군 사모님’ 이야기 / 내가 본 5·16 군사정변 1: ‘쿠데타를 주동한 세력은 도대체 누구인가’ / 내가 본 5·16 군사정변 2: 배반당한 혁명
4. 역사의 현장들
유원식 장군과의 인연: ‘다혈질 행동가’와의 만남 / 통화개혁을 주도한 유원식: “우리의 제삿날은 같다”고 하더니 / 유원식 장군의 몰락: 권력 무상의 세월 / 육사 교육장교 시절 / 초짜 정보맨의 좌충우돌 모색기 / 동백림 간첩단 사건: 중앙정보부의 존재 이유를 거스르다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야, 이 새끼야! 왜 수가 이렇게 많아?”
5. 정치의 격랑 속에서
정치공작에 발을 담그다 / 휴머니스트 김지하 /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이후락: “우리는 모두 박정희교의 신도” / 이후락의 선거 공작: 김대중을 막기 위한 필사의 노력 / 이후락 실종: 홍콩에서 그와 함께 보낸 사흘 / 극비리에 진행된 7·4 공동성명: 이후락이 어느 날 영웅으로 출현하다 / 10월유신 선포: 호랑이 등에 올라탄 남과 북 / 박정희를 진노케 한 윤필용 사건: ‘유신 기수’들의 몰락
6. 운명의 날
김재규와 박 대통령의 인연: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기까지 / 고조되는 반발, 들끓는 민심: ‘박정희 제거’의 예견 / 박정희 최후의 날: 그것은 우발적 사고였다
7. 민주정의당 창당 막전 막후
이대용이 맺어준 전두환과의 인연 / 중앙정보부 숙정 / 국보위 설치, 그리고 ‘신당 창당’ 착수 / 뜻하지 않던 입법의원 진출: 청춘 바친 중앙정보부를 퇴직하다 / 조영래가 변호사가 되어 기뻤다
8. ‘민의의 전당’과 ‘51% 주의’
대표선수로 ‘정치 1번지’ 종로에 출마: “비겁하게 구시대 인물 내세우지 말고” /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와 대선, 총선의 숨 가쁜 일정 / ‘초짜 원내총무’의 ‘51% 주의’ / 이철희·장영자 사건: “정의사회 좋아하네” 민심 폭발 / 아웅산 테러: 그 나라에는 도대체 왜 갔을까 / 종묘 앞 정비: ‘성매매 문제는 법으로 다스릴 수 없더라’ / 김영삼 단식과 민정당사 점거: 전환기의 풍경들 / 2인자 노태우, ‘호의’와 ‘악의’ 사이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__
아버지 이규학은 1910년 12월에 나의 할아버지 우당(友堂) 이회영을 따라 식솔 40여 명과 함께 지금의 지린 성 류허 현(吉林省 柳河縣)으로 망명하셨다. 엄동설한에 부녀자와 어린아이는 마차에 태우고 압록강을 건널 때 열다섯 살이던 아버지는 그 나이에 이미 직접 가족을 보살피셔야 했다. 할아버지는 누대로 내려온 재산을 정리한 돈으로 그 이듬해 논밭을 사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셨다. 독립운동에 무력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신 것이다. 당연히 아버지도 그 학교를 2기생으로 졸업하셨다. 그 이후 만주와 상하이를 비롯해 중국 대륙 곳곳을 전전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간 우리 집안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인네들을 비롯해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필설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백범 암살의 내막 __
나는 1949년 여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세 가지 사건, 즉 ‘국회 프락치 사건’과 ‘반민특위 강제 해체’, 그리고 ‘백범 암살’ 음모가 모두 새로 등장한 공안 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에 이승만의 사전 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이승만 권력의 비호 아래 특수 조직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를 세칭 ‘88구락부’라고 했다. 이는 신성모와 같이 이승만의 직계에 해당하는 새로운 아첨 세력과 송진우·장덕수의 암살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한민당 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중간층으로는 일제하의 경찰과 군 출신들이 있었다. 즉, 반민특위 강제 해산 이후 반격을 받지 않기 위해 독립운동 세력을 뿌리째 제거하려 기회를 노리던 김태선, 김운하, 노덕술, 전봉덕 등의 경찰 세력과 일제에 충성을 바치다가 이제는 신생 대한민국의 군부를 장악하려 했던 채병덕, 원용덕, 김창룡, 장은산 등의 군 세력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상층의 정치 세력과 중간층의 군경 세력이 모두 이승만을 정점으로 신권력층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그 하부선으로 김지웅, 홍종만 등이 외곽에 있고, 다시 그들의 하수인으로 안두희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음모의 개략적인 그림이었다.
육사 면접에서 겪은 모욕 __
나는 1차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그러고 나서 직접 육사에 가서 구술시험을 봐야 했다. 이때 필요한 서류가 추천서였다. 정부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이나 군 장성의 추천이 필요했다. 나는 아버지의 동지이자 광복군 출신인 민영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의 추천서를 받았다.
구술시험 당일 내 차례가 왔다. 면접관은 생도대장 이용 장군과 참모장이었다. 그들은 일본 지원군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민영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을 어떻게 아는가?”
“그 어른들은 저희 집안과는 중국에 살던 시절부터 세교가 있던 분들입니다.”
나의 대답에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귀관의 집안도 소위 독립운동한 집안인가?”
상당히 경멸조의 반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대답했다. 내심 뜨거운 분노가 치밀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에게 적의를 갖고 있는 듯했다. 면접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만약 불합격한다면 그것은 성적이 아니라 우리 집안이 독립운동 가문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몹시 실망했다. 동시에 나는 이 말을 부모님께 해야 할지, 나 혼자 되삼켜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모욕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들어가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던 자들이 득세해 장군이 되고, 낯선 땅에서 목숨 바쳐 싸우던 독립운동가는 오히려 멸시를 당하는 이런 모순을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