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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고요하지 않다 2

숲은 고요하지 않다 2

(이종찬 회고록)

이종찬 (지은이)
한울(한울아카데미)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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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고요하지 않다 2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숲은 고요하지 않다 2 (이종찬 회고록)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인
· ISBN : 9788946060517
· 쪽수 : 568쪽
· 출판일 : 2015-09-14

책 소개

이종찬이 걸어온 80년의 삶과 그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기록. 일평생 습관처럼 기록하고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기록에서 생략된 채, 또는 잘못 그려진 채 비어 있던 많은 장면이 그의 손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된다.

목차

9_ ‘정치 복원’ 시대
2·12 총선에서 ‘민심의 홍수’를 만나다 / 전례 없는 개원 협상: ‘대화’로 ‘돌파구’를 마련하다 / 학원안정법의 희생양들 / 노태우, ‘박종철 사건’으로 경쟁자들 정리 / ‘6월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 / ‘지는 해’의 착각, ‘뜨는 해’의 술수 / “소선거구제는 망국적 제도!” / 정말 힘들게 오른 ‘3선 고지’ / ‘여소야대’의 뜨거운 맛 / ‘중간평가’로 정국 돌파하라 했건만 / 징검다리 ‘동해 재선거’

10_ 망국적 3당 합당
‘허공의 메아리’ 혹은 역린 / 무력하게 지켜본 3당 합당

11_ 민주자유당 대선 후보 경선
제14대 총선 참패와 김영삼의 ‘국면 뒤집기’ / 청와대의 ‘박태준 비토’ / 김종필의 밀약 / 민정계 후보 단일화 / 경선 전초전 / “김영삼과 김종필의 시대는 갔다” / 아내가 김옥숙 여사를 만나다 / 최후의 선택을 향해 /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

12_ 새로운 모색
‘새정치모임’ 결성과 YS의 ‘백기 투항’ 요구 / ‘독립운동 세력이 왜 퇴조했는지 알겠다!’ / 신당 창당 작업과 김우중의 아리송한 행보 / 새한국당 창당: ‘수평적 정권 교체’를 위해 / 눈물의 합당 / 처절한 파탄 / ‘야당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 민주당 합류: ‘정치 초심’으로 돌아가기 / 1995년 지방선거의 명암

13_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15대 총선 패배를 딛고 대선기획팀을 꾸리다 / DJ 비서실장직을 고사하다 / 야권 단일화 작업에 끼어든 JP의 ‘정치적 음모’ / ‘DJP’를 넘어 ‘DJT’로! / ‘준비된 대통령’론으로 ‘비자금’ 파고를 넘다 / 외래형 책사 vs. 토착형 책사 / 마지막 고빗길 ‘외환 사태’

14_ 헌정 사상 최초의 인수위 활동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의 나날들 / 사상 첫 정권인수위원회의 명과 암 / ‘국민의 정부’의 새 지평을 열다

15_ 국정원에서 바라본 세상
17년 5개월 만의 귀향 / 북풍과 총풍의 전모 / IMF 사태에 자극받아 국제경제조사연구소 신설: 경제 시스템 붕괴되면 국가 안보도 동반 약화 / 북한 읽기의 어려움 / 국내정보에서 손 떼기는 쉽지 않았다: 방향 전환을 위한 시도와 시행착오 / 국가 정보기관장의 평양행: 그곳에는 무슨 좋은 것이 있을까 / 대우 해체의 막전 막후 /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야기 / ‘통신감청 논란’의 뿌리 /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저자소개

이종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6년 독립운동가들의 망명지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상지인 중국 상해의 프랑스 조계에서 이규학·조계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독립운동가였을 뿐 아니라 친가와 외가가 모두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 광복 이후 귀국해서는 서울창신초등학교(제32회), 경기중·고교(제52회), 육군사관학교(제16기)를 졸업했다. 군문에서 육군 소령으로 예편했고, 주영대사관 참사관,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제11~14대 국회의원(서울 종로)을 역임했다. 그 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 나라 헌정사상 첫 여야 간 정권 교체를 이루는 데에 일익을 맡았다. 김대중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국가정보원장 등의 직책을 수행했다. 20년에 걸친 정치 활동을 마감한 뒤에는 회고록 등 각종 저술 활동을 통해 우리 역사의 광정과 현실 정치의 개혁을 역설해 왔으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직을 맡아 이 기념관이 의미 있는 장소로 지어지도록 진력했다. 2023년 민족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는 마음가짐으로 광복회장에 취임했다. 회고록 『숲은 고요하지 않다』(2015년)을 비롯해 『세계로 가는 길목을 잡아라』(2002년), 『개혁과 온건주의』(1987년)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필생의 작업으로 ‘아들이 쓰는 어머니의 자서전(子敍傳)’을 기획해 수년간 집필해 왔으며, 그 결실로 이 책 『나, 조계진』을 세상에 내놓는다. 구한말부터 대한민국에 이르는 이 대하 실록에서 한 여인과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근현대사와 앞으로 다시 함께 일구어가야 할 우리 공동체 미래의 모습을 찾아보자는 것이 미수(米壽)를 넘긴 지은이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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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학원안정법’ 입법 과정
7월 19일, 전두환 대통령이 새삼스럽게 “미국문화원 사건 공판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정부나 당에 마치 강온 양론이 있는 것처럼 비쳐선 안 된다. 방침이 결정되면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앞으로 있을 모종의 조치에 대한 ‘예고편’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학원안정법’이라는 이름의 입법 시안이 내 손에 들어왔다. 학생 약 5000명을 수용해 순화한다는 내용이었다. …… 나는 그 법안 자체가 못마땅했다. 이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이 있고 어마어마한 ‘국가보안법’이 있는데 계속 법을 만든다고 학원 소요가 잠잠해질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 이처럼 여당도 납득시키지 못한 법률안을 놓고 안기부가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정부는 8월에 임시국회를 열어 학원안정법안을 상정해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원내총무인 나에게는 아무 사전 협의도 없었다.
7월 30일 아침 일찍 집으로 찾아온 기자들이 8월 임시국회를 소집하느냐고 집중적인 질문을 했다. 나는 “시급한 민생 법안을 처리하는 국회라면 소집해야겠지만 학원안정법을 위해서는 아직 소집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것이 또한 괘씸죄에 해당했다.
그날 마침 미 국무부에 있는 나의 친구 앨런 롬버그가 방한했다고 해서 미국 대사관의 클리블랜드 부대사와 함께 오찬을 했다. 그 자리에서 클리블랜드 부대사가 불쑥 비꼬는 투로 “수용소(gulag) 계획은 잘 되어가느냐?” 하고 물었다. 나는 수치스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전두환은 왜 내각제를 염두에 뒀는가
전두환은 누구보다 노태우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12·12의 동지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과연 그가 국가를 맡아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던 것 같다. 나아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가 끝까지 의지를 지켜 자신(전두환)을 보호할 마음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때 시중에는 “‘노’는 ‘노’인데 ‘노태우’는 아니다”라는 루머가 떠돌며 노신영 국무총리가 후계자가 된다는 풍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전두환의 두터운 신임을 업고 권력을 이어받으려는 장세동 같은 야심가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두환은 한때 내각제 개헌으로 방향을 선회할 의사도 있었다. 내각제로 권력 구조가 바뀌면 노태우의 집권은 사실상 물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야당이 일관되게 ‘직선제 대통령’ 개헌안을 들고 나오면서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전두환의 내각제 개헌론이 야당의 공세를 둔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꼼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은 진정으로 내각제 개헌을 할 마음이 있었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 임기가 끝날 무렵이면 간혹 내각제 개헌 문제가 거론되곤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각제가 되면 권력자가 임기가 끝난 뒤 사후 보장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원내각제는 국회가 권력의 중추이기 때문에 대통령제처럼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다. 그런 구조에서는 정치 보복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자기 계파의 국회의원을 다수 확보하면 사후에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제를 주장하던 사람도 임기 후반에 이르면 내각제를 선호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는 것 같다.


이미 쓰여 있던 차기 대권 시나리오
다음 날 정식으로 중앙집행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시나리오대로 후보 추천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노태우 대표는 자기가 관련된 사항이므로 불참했고, 임방현 중앙위의장이 사회를 맡았다. 모두 박수로 노태우 대표를 민정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결정했다. 회의는 20분 만에 끝났다. 이어 추천위원 명단에 서명하는 회람이 돌았다.
이때 옆에 앉았던 유학성이 감회 어린 듯 “오늘이 있기까지 6년 11개월이 걸렸습니다”라고 독백처럼 말했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유학성에게 캐물었고, 그는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1980년 6월 27일 오전 11시 10분, 내가 중앙정보부장으로 가기로 하는 합의가 이뤄지던 그날 그 시간에 다음번 주자는 ‘노태우’라고 이미 모두 약속이 되었어요. 그런 것이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야 실현되었으니 나로서 감회가 깊지 않겠어요?”
유학성은 얼떨결에 비화를 털어놓았다. ‘아, 12·12 주체들이 모여서 이미 대통령의 순번을 결정해놓았군!’ 나는 그 사실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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