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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50964948
· 쪽수 : 536쪽
· 출판일 : 2016-05-20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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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두 달 전에 아빠와 통화하기는 했지만, 18개월 전에 고향을 떠난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 아빠는 거대하고 낯익은 모습이었지만, 너무나, 너무나 지친 얼굴이었다.
“미안.” 내가 속삭였다. 달리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보 같은 소리.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네 꼴이 마이크 타이슨이랑 6회전쯤 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기 온 후로 거울은 봤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나라면 좀 더 미루는 게 낫겠구나. 미니마트 옆에서 자전거 핸들 위로 넘어진 테리 니콜스 알지? 그 친구한테서 콧수염만 떼어놓으면 딱 지금 네 모습이겠다.”
아빠는 내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여보.”
“내일 핀셋을 가져오마. 어쨌든 다음에는 나는 연습을 하려면 비행장에 내려라, 응? 뛰어서 팔만 파닥거린다고 안 되는 모양이니까.”
나는 웃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엄마와 아빠가 가까이 다가왔다. 부모님의 얼굴은 긴장되고 불안해 보였다.
“얘, 말랐어. 여보, 마른 것 같지 않아?”
아빠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약간 젖어 있는 눈가에 평소보다 어색한 웃음을 짓는 아빠가 보였다.
“예쁘기만 하구먼, 여보. 내 말 믿어. 아주 예뻐.”
아빠는 내 손을 꼭 쥐더니 입으로 가져가 키스했다. 아빠는 내 평생 그런 행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내가 죽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슴에서 불쑥 흐느낌이 튀어나왔다. 나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눈을 꼭 감고서 아빠의 커다랗고 딱딱한 손의 감촉을 느꼈다.
“우리가 왔다, 얘야. 이제 괜찮아.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우리가 날마다 따르던 일과가 사라지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몇 주가 지나서야 겨우 그의 몸을 날마다 만질 수 없어도 손이 쓸모없이 느껴지지 않게 됐다. 단추를 채워주던 부드러운 셔츠, 가만히 씻어주던 따뜻한 손, 아직도 손끝에 감촉이 느껴질 것 같은 매끄러운 머리카락, 그의 목소리, 갑자기 터뜨리던 그의 드문 웃음, 내 손가락에 닿는 그의 입술, 잠들기 직전 그의 눈꺼풀이 내려앉던 모습이 그리웠다. 내가 한 일에 아직도 경악하고 있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만, 그런 일을 저지른 루이자를 자기가 키운 딸이라고 여길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사랑한 남자와 가족을 동시에 잃어버리고 내 존재와 연결된 모든 것을 상실했다. 연결된 것 하나 없이 미지의 우주를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다른 여행자들과 가벼운, 적당히 거리를 두는 친구가 됐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여행하는 영국 학생들, 위대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찾아왔다가 미드웨스트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미국인들, 돈 많은 젊은 은행가들, 당일치기 여행객들, 끊임없이 흘러들었다가 떠나는 사람들, 다른 삶에서 탈출한 사람들.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게 바로 윌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