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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8481757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26-01-01
책 소개
슬픔의 내부에 새겨진 흔적을 감각할 때, 돌아와 우리 앞에 선 ‘사랑’에 대해
아름다운 시 언어로 ‘생의 리듬’을 직조해온 이제니 시인이 7년만에 선보이는 신작 시집. 시인은 떠나보낸 존재, 비록 부재하지만 영원히 곁에 있는 무수한 당신들을 호명함으로써, 우리 안으로 끊임없이 돌아오는 ‘사랑’과 ‘기억’을 써 내려간다. 말하자면 시인이 나누려는 애도란 “우리를 떠난 이와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는 일이자 또 그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일일 것”(강보원)이다. 이제니의 이번 시집은 그 덤덤하고도 가슴 저린 애도의 과정을 통과해온 사랑을 지속하는 언어적 수행의 기록이다. 이 흔적들이 슬픔의 내부에 새겨져 있기에, 슬픔은 온전히 슬픔으로만 남을 수 없다. 아마 그것이 우리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르지만 같은 ‘언어’로 살아가게 되는 또 하나의 방식일 것이다.
이제니 시인은 “모든 생명의 기본적인 생장 형식이 복제와 변이이듯이, 환원된 언어들 또한 되풀이와 변이를 통해 존재의 지속성을, 다시 말해 생의 리듬을 획득해온” 시인이자 “방황하는 존재가 스스로를 분해하여 목격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로 나누었고, 목격자와 행위자를 순환시켜 서로 상대방을 향해 진화해가도록 만들어서, 봄을 늘 새로운 발견이게 하고 행위를 늘 최초의 도전이게끔 하는”(정과리) 역설과 역동의 시 세계를 보여준 시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슬픔과 죽음, 사라짐과 울음, 덧없음과 고독의 출렁거리는 한 자락을 자신의 언어로 붙잡으려고 끝없이 시도하는 시인”이자, “그의 시를 소리 내어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움직이는 말이 모든 것을 삼킨, 아직 경험하지 못한 저 고독하고 외로운 바다 한가운데를 떠다니게 될 것”(조재룡)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시인이 스스로 오래전에 물었던 물음 “우리는 어떻게 우리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가”는 이번 시집을 준비하며 시인이 직접 밝힌 대로 “돌아가신 엄마를 애도하는 시집이기도 하지만, 이런 나날을 보내면서 오래 품어왔던 니체의 영원회귀에서 비롯된 생에 대한 무한 긍정과 보르헤스의 비선형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공간의 중첩에 대해 사유해 봄으로써, 시간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것, 그렇게 과거를 품은 미래로써 다시 또 반복해서 경험하고 감각하게 된다는 것, 이로써 세계와 존재 사이에 흐르는 영속적인 관계에 대해서 써 내려간 시편들”로 언어의 몸을 입어 우리 앞에 도래한다.
시집 후반에 배치된 “되기―” 연작들은 들뢰즈의 ‘되기(becoming)’ 개념을 경유하여 써내려간 시편들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로 다가가려는, 그렇게 ‘되어보려는 시도’ 자체에 방점이 찍힌 시편들이다. 이 연작시를 통해 관념과 실재의 허상에 대해서, 실재라고 믿어온 대상에 대한 인식적 오류에 대해서, 그리고 인식적 오류와 함께 언어와 관념이 왜곡하는 세계의 본질에 대해 드러내보려는 시도가 오롯이 담긴다. “세계에 대한 허상을 걷어낼 때 무한한 자유로움으로, 자신이라 믿었던 자신을 벗어난 무한한 존재로, 살아갈 가능성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고 밝히는데, “오직 시적 언어로써만 감각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제 시를 읽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는 시인의 말대로, 우리는 그 감각의 세계에서 무한한 자유와 사랑, 그리고 순간의 영원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이 쌓여가는 마음들…
모든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입니다. 언어란 어떤 맥락 안에서만 의미가 발생할 뿐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단어, 혹은, 단어 없음,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으로 인한 휘발이 반복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점점이 쌓여가는 보이지 않는 감정과 감각의 흔적들이 있을 테고. 그렇게 중첩되며 나아가는 모종의 움직임 혹은 흔들림 그 자체를 언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낱말과 낱말 사이에 어떠한 위계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마음 깊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몇몇 품고 있긴 합니다. 시공에 대한 입구와도 같은 단어들, ‘빛’이나 ‘영원’, ‘무한’과도 같은 단어들 앞에서는 마음이 오래 머무는 편입니다. _이제니, 문학 웹진 인터뷰 중에서
슬픔의 내부에 새겨진 함께 있음의 흔적…
‘함께 있음’은 꼭 실제로 가까운 곳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형태만을 가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친숙하거나 낯선 사물들로부터, 문득 눈을 뜬 아침이나 잠들기 전의 늦은 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부터,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게 된 단어로부터, 들어본 적 없는 나무의 이름 같은 것들로부터 그 누군가와의 기억을—그것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떠올리게 되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다시는 만나게 될 수 없게 된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애도란 우리를 떠난 이와 이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는 일이자 또 그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이제니의 이번 시집은 그 함께 있음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 흔적들이 슬픔의 내부에 새겨져 있기에, 슬픔은 온전히 슬픔으로 남아 있을 수만은 없다. 아마 그것이 우리가 미래를 기억하는 한 가지 방식일 것이다.
_강보원 시인
목차
시인의 말
_영원은 엷어지는 분홍
_깨어 있는 물가에서
_돌이 준 마음
_너는 나의 진눈깨비 앵무의
_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_나의 언덕 위로 해변의 부드러움이
_멀리서 들려오듯 가까이에서
_색채 속을 걷는 사람
_눈먼 마음의 무한함으로
_영원처럼 두 사람이
_이파리와 지푸라기
_물을 바라봄
_음각의 빛으로 어른거리는
_열매도 아닌 슬픔도 아닌
_어린 구름에 얼굴을 묻고
_너는 멈춘다
_조그만 미소 속에서 조그만 길을 가는
_너와 같은 그런 장소
_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 사 과라고 쓰면 사과가 나타난다
_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 이 제 너는 검은색으로 보인다
_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 4 ′ 33″
_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 숨 기에도 숨기기에도 좋았다
_우리가 잃어가게 될 그 모든 순간들 하 나의 손이 하나의 손을 잡을 때
_빛나는 얼굴로 사라지기
_나무 새의 마음으로
_잔디 공원의 공허 속을 걸어가는
_한낮의 그늘 찾기
_어둠이 불러다 먹인 입을 바라본다
_하나의 잎이 너를 찾아낼 때까지
_모래와 유리
_거의 그것인 것으로 말하기
_빈칸과 가득함
_마미의 사각 거울 마음
_붉은 공을 사이에 둔 소년과 개
_걷는 발걸음과 함께 걷는 발걸음
_밤의 방향과 구슬 놀이
_Mmm과 바람과 나
_사잇길에서 만나기
_걷기 아름다움 걷기
_발견되는 춤으로부터
_맑은 물은 맑은 물을 만진다
_물과 산책
_옛날의 숲에게
_겨울 언덕으로부터
_다시 다가오는 향기를
_되기-일몰을 바라보는 눈
_되기-눈과 손과 문과 사랑의 언어
_되기-물방울 속의 물방울
_되기-들판의 삼각형
_되기-잿빛 위의 작은 파랑
_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
_되기-말라가는 물감의 표면
_되기-종이의 접힌 가장자리
_되기-은빛 실선의 그림자
_되기-마지막에서부터 시작되는 첫 장면
_되기-나 없는 나
_되기-노래하는 그릇 소리
_되기-그 밖의 모든 것
_나무 무덤 찾기
感•슬픔의 내부에 새겨진 문장들_강보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것은 과거였던 미래를 품은 기록이다. 영원은 어두운 곡선을 그렸다. 어두운 수첩에 영원의 숫자와 영원의 도형과 영원의 낱말을 봉인해두려고. 닮은 영혼에게 언제고 전해지리라는 믿음으로. 영원은 분홍으로 엶어진다. 소멸이 아니라 무한을 향해. 위로 위로 올라가려고. 위로 위로 올라가서 본래의 자신이 되려고.
_「영원은 엷어지는 분홍」 중에서
먼 나라에서 온 꽃의 이름은 잊은 지 오래였다.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길 끝에서 걸어오는 하나의 사람. 두 팔을 벌려도 안을 수 없는 나무둥치 아래로 마음을 잃은 마음이 모여든다. 눈과 귀와 맑은 얼굴들이 모여 만든 목소리의 빛 그늘. 영원이 미래의 얼굴을 돌아볼 때 바람과 들판은 손을 잡을 수 있다. 사위어가는 빛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다.
_「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중에서
맞잡은 두 손이 더는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분별할 수 없는 숨결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쏟아지듯이 쏟아내듯이. 마지막으로 남는 명사 하나를 밝혀내기 위해 써 내려가고 있다. 도식화되지 않는 사랑의 몸짓을 읽어내려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림자는 말이 없고 흑백의 사람은 빛 덤불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 사진 속에서. 옛날의 사진 속에서. 빛나는 얼굴로 사라지면서. 보이지 않는 언덕을 향해. 두 사람이 영원처럼 걸어가고 있다.
_「영원처럼 두 사람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