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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해방전후사/한국전쟁
· ISBN : 9788950968564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17-01-25
책 소개
목차
추천사 9
프롤로그 12
제1부 창공을 향한 도전과 조인(鳥人)의 꿈
01 노병의 마지막 비행 21
02 사람인가, 도깨비인가? 28
03 소모품 31
04 남방 전선에서 받은 특공대 훈련 36
05 포로생활과 17년 만의 귀향 41
06 터닝포인트 45
07 원자폭탄 투하와 남북 분단의 책임 50
08 갈등 57
09 기적 65
10 항공병 1기생 72
11 반역 76
12 월북 사건 83
13 숙군 89
14 양치기 소년 97
15 T-6 항공기의 도입 비사 103
제2부 거침없이 적진 상공을 날며
16 6.15남침전쟁 첫날의 치욕 113
17 통한의 맨손 폭격 120
18 F-51D 전투기와 10인의 공군조종사 127
19 공군 최초의 태극무공훈장 133
20 목숨을 건 정찰비행 143
21 신념의 조인과 틴 E. 헤스 대령 154
22 네코부대의 특급 비밀작전 163
23 재평가가 필요한 UN 공군의 헌신과 전과 170
24 요기 조종사 179
25 장진호전투와 한국판 신들러 188
26 한국 공군의 홀로서기 199
27 최초 100회 출격의 영광 208
28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220
29 제10전투비행단의 창단과 영정출격 229
30 351고지 탈환을 위한 근접항공지원작전 238
제3부 종전 후 치열했던 삶의 순간들
31 빨간마후라의 원조 논란 247
32 팔만대장경의 수호자에 대한 진실 254
33 노블레스 오블리주 262
34 김영환 장군과의 마지막 비행 269
35 F-86F 전투기의 기종전환훈련 280
36 제10전투비행단장 시절의 추억 289
37 F-5A/B 전투기의 도입 비사 297
38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JP와의 인연 306
39 전우애와 인사 갈등의 이중주 314
40 실미도 사건의 전말 321
41 어느 사병의 군기문란 사건 331
42 한라그룹 정인영 회장과의 인연 337
43 친일, 반일, 극일에 대한 생각 345
44 46년 만의 웰던(well-done)상 353
45 노병의 마지막 바람 365
에필로그 372
참고 문헌 378
사진 자료 381
저자소개
책속에서
1948년 9월 4일 항공기지부대는 미 제7사단으로부터 L-4 항공기 10대를 인수했다. 이를 계기로 1948년 9월 13일, 항공기지부대는 항공기지사령부로 명칭을 변경함과 동시에 사령부 예하에 비행부대와 항공기지부대를 두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또 비행부대는 여의도기지에, 항공기지부대는 김포기지에 주둔하면서 공군 창설의 초석을 다져나갔다. 비행부대장에는 김정렬 대위, 항공기지부대장에는 장덕창 대위(제4대 공군참모총장)가 임명되었다. 1948년 9월 15일,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단 10대의 L-4 항공기가 서울 상공에서 비행부대장 김정렬 대위의 지휘 아래 편대비행을 실시했다. 정부 수립을 자축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된 이날의 편대비행은 미 행정부와 미 군사고문단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자못 컸다. 즉 대내외에 비행부대 조종사들과 항공기지부대 정비사들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이제 공군을 독립시켜도 크게 우려할 것이 없다.’라는 점을 입증했다.
하늘의 제왕인 검독수리도 새끼 때부터 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미의 보호 속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드높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공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군 창설은 수많은 1세대 항공인의 눈물겨운 정성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미 행정부는 공군 창설에 회의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 통일‘이란 정치적 수사(修辭)를 즐겨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남북 간에 불필요한 긴장으로 소련과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하는 상황을 극도로 꺼려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 긴장을 초래할 수 있는 공격 무기인 전투기의 지원과 그것을 운용하는 공군 창설을 반대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특히 국민들에게 항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 행정부는 물론 미 군사고문단까지 설득해가며 공군 창설의 초석을 다졌던 최용덕, 김정렬, 김영환 장군을 비롯한 1세대 항공인들의 헌신과 노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 노병의 바람입니다.
노병은 6.25남침전쟁 이전에 겪은 남북 간 무력 충돌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그는 L-4, L-5 항공기를 타고 태백산지구 지상군지원작전, 옹진지구전투,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등에서 정찰, 지휘관 수송, 심리전전단(삐라) 살포 업무를 수행했다. 그 가운데 옹진지구전투가 가장 치열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기존 비행임무 외에 부상자의 후방 이송과 의약품 수송까지 했다. 항공기의 이착륙 장소는 학교 운동장이었고, 그곳에는 군병원으로 후송을 기다리는 부상병들도 꽤 많았다. 피아간에 교전이 치열했지만 북한의 항공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은 항공기 220여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 병기를 철저하게 숨긴 것이다. 노병은 북한 정권의 그러한 이중적 속성을 지적하면서 지피지기 백전불태75의 교훈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