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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2777416
· 쪽수 : 212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내 청춘의 요란한 폭풍우가 걷힌 자리
1장 당신을 위한 음악이 나를 위로하네
스물두 살의 유작 앨범 : 라니 울프,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한 적이 있는가? :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푸른색 옷을 입은 청중 :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
그 시절, 지혜의 봄 : 홍난파, 〈고향의 봄〉
비닐하우스 속의 바이올리니스트
2장 바이올린 없는 바이올리니스트
꿈의 명기를 만나기 위한 관문, 콩쿠르
검은 숲, 나만의 비밀 연습실 : 비에니아프스키, 〈모스크바의 추억〉
무대 위의 블랙아웃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바이올린 없는 바이올리니스트
과르니에리가 알려준 두 가지 : 존 뉴턴, 〈어메이징 그레이스〉
3장 관객이 떠나도 연주는 계속된다
바로크 음악과 록의 만남 :《바로크 인 록》의 〈사라방드〉
감히, 아리랑 : 〈지혜 아리랑〉
불가능에 대한 도전 : 카미유 생상스, 〈죽음의 무도〉
‘아이바이올리너’, 그 미완의 꿈
CD 수록곡
1 | Robert Schumann, Tr?merei, Kinderszenen Op.15-7
2 | Frederic Chopin, Nocturne in C-Sharp minor, Op.posth
3 | 홍난파, 고향의 봄(편곡 박지혜)
4 | Camille Saint-Saens, Danse Macabre
5 | Pablo de Sarasate, Zigeunerweisen(Gypsy Airs), Op.20
6 | Lanny Wolfe, Someone Is Praying for You(편곡 박지혜)
7 | John Newton, Amazing Grace(편곡 박지혜)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래, 지혜야, 앨범을 만들자. 응?”
무엇보다 엄마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던 것은 바이올리니스트로 성공하기 위해 내가 쏟아부은 노력이었다. 눈물겹도록 처절했고 추해 보일 만큼 지독했던 그 노력은, 내가 죽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 것이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나는 언제 급사할지 몰랐고 내게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나를 위로했던 찬송가로 이루어진 그 음반은 《홀리 로드Holy Lord》라고 이름 붙였다. 사실상 내 유작 앨범이었다. ■ 스물두 살의 유작 앨범
결코 완성될 것 같지 않았던 〈치고이너바이젠〉은 소외 계층인 관객들 앞에서 내 삶에 관한 이야기와 연주를 함께했던 바로 그날 완성되었다. 그런 경험은 〈치고이너바이젠〉만이 아니었다. 너무 어려워서 손도 대지 못했던 곡들, 아무리 연습해도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았던 곡들이 이야기와 연주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10대 시절 내내 하루에 많게는 열대여섯 시간씩 연습하면서도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들이 한 번에 풀려나가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는 듯이 연주하고 연주하듯 사는 것임을. 그렇게 삶과 예술이 연결될 때 진짜 음악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삶을 예술에 희생시켰던 그 시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 엄마와 교수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지만 듣지 않았던 것, 연습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큰 아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 푸른색 옷을 입은 청중 :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
아빠는 없었지만 내게 그 빈자리는 크지 않았다. 엄마와 나 둘뿐이라는 게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엄마만 있으면 되었다. 엄마는 내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 아니, 내가 엄마의 지지자였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평생 그래왔고, 그것이 익숙했고, 그래서 문제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더 자주 아빠의 부재를 실감했다. 엄마와 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아빠가 없어서’라는 생각이 문득 들곤 했다. 아빠가 있으면 엄마와 나 사이를 중재해줬을 테니까. 중.고등학교 시절, 혼자 독일에 남아 힘들게 학교를 다니며 생활해야 할 때도 문득 이 모든 시련이 ‘아빠가 없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아빠가 있으면 이만큼 고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우울증에 걸렸을 때도 그랬다. 아빠가 있었으면 내 삶이 달라졌을지 모르니까. […] 물론 아빠가 고의로 나에게 결핍을 안겨준 게 아니라는 것은 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도 명백하다. 그저 엄마는 자신의 의지와 의도대로, 아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예술가에게 필요한 두 가지를 선물한 것이다. 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지만 또한 결핍으로 텅 비어 있다. 한때는 그 사실이 못 견디게 힘들었지만 이제 나는 두 가지 모두가 나라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이루는 큰 축이라는 것을 안다. 울프 횔셔 교수님이나 심사위원들이 내게 ‘귀하고 드문 음악’을 품고 있다고 극찬했던 이유는 어쩌면, 다섯 살 때 이후 내 삶에 뿌리내린 열정과 결핍이라는 극단적인 양면이 내 음악에 스며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비닐하우스 속의 바이올리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