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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3378144
· 쪽수 : 276쪽
· 출판일 : 2024-04-20
책 소개
목차
겨울
일기? 그거야 시간문제지 / 백 미터만 앞으로 나아갑시다
매닉스 LP를 샀다, 그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 크리스마스이브? 그런데 내 전 재산은
트위터에 “올해 책 다섯 권 내야지”라고 적었다 / 월요일 나. 화요일 나. 수요일 나.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필요했다 /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간이 모두 주어져 있다
봄
금정연_ㅅ.hwp / 글쓰기 외의 직업을 갖고 싶다는 소망
이 책은 이렇게 나올 운명인 모양 / 내 책은 출판에 임박해 떨고 있으며
한마디로, 너무 피곤하다 / ‘은신처’라는 책을 펴낼 생각이야
여름
내 책이 한 권도 없는 서점에서 / 한밤에 책이 쓰러지는 소리에
언제까지 이런 메일을 써야 할까? / 돈 편지(money letter)의 저주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나는 무엇을? / 네가 말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다
가을
마흔둘의 생일이 이렇게 지나간다 /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옛날의 박력
상금이라도 받지 않으면 못 견딜 자리 / 내가 ‘노벨상 가능자’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어린이가 어디 있냐 / 진짜 걱정은 어른들의 얼굴 높이에 있다
겨울
그야말로 중년의 연말이다 / 조심조심 쓰는 건 죽음과 같은 글쓰기
그런데 어디로 가지? / 시계는 ‘떠남’을 가리키고 있다
근데 다 그냥 될 거 같은데? 이센스가 노래했다 / 이제 아빠는 우주로 돌아가는 거야?
다시, 봄
발등은 타고 있는데 어째서 마음이 편한 거지? / 안 가라앉는 날이 있나!
오늘도 자라느라 고생이 많은 나윤이는 / 너도 아이처럼 그냥 계속 뚝딱거려 봐
나는 미쳤다, 나는 글들을 지배한다 / 어떤…… 막막함이…… 중첩되었다
여름
나는 쓰레기인가? 직업윤리가 없나? / 쓰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남들 다 하루치 늙는 동안 나 혼자 / 마이크에 이야기한다, 나 혼자서
내 생각엔, 그게 바로 작가인 것 같다 / 그 문장을 아예 지우기로 했다
가을
그렇지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고 / 세상을 말로 옮겨 놓는 단순한 습관
그렇다면 일기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핑계 / 나는 살고 싶기 때문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처음 일기를 쓴 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흔적 없이 사라진 하루들이 쌓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됐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었다. 인쇄가 잘못된 책처럼 인생의 페이지가 듬성듬성 비어 버린 기분이었다. 그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일기를 쓰자,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자, 기록이 다시 기억이 될 수 있도록.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비싸진 않지만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며 얼마 있지 않은 돈을 낭비하듯,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트위터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살 수도 없는 물건들을 검색하면서 얼마 있지 않은 시간을 낭비한다.
오늘 내가 트위터 피드를 끊임없이 새로고침하고, 유튜브에서 진공관 앰프 리뷰를 찾아보고, 온라인 서점과 레코드점을 뒤지면서 당장 살 돈도 없는 책과 레코드 들을 장바구니에 꾸역꾸역 담으며 하루를 보낸 것처럼.
중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지금 내 나이쯤이면 내가 밴드를 만들고 싶다고 《벼룩시장》에 낸 광고를 보고 모인 친구들과 함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센세이셔널한 데뷔 앨범을 내고, 나쁘지 않지만 첫 번째 앨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두 번째 앨범을 내며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리다가, 음반사와의 계약 때문에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망작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세 번째 앨범을 내고, 술과 사랑과 다른 악마들이 낀 추문 끝에 해체를 선언한 후,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동안 가끔 쓰고 부른 노래들을 묶은 거의 기타 한 대의 연주가 전부인 느리고 사색적인 솔로 앨범을 한두 장 내고, 어쩌다 다른 밴드들의 녹음이나 공연에 깜짝 등장하기도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 뾰족하던 구석들이 어느덧 둥글어진 조금쯤 늙고 지친 멤버들과 다시 뭉쳐 어떻게 봐도 명반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오래된 팬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한두 곡쯤은 제법 감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네 번째 앨범을 내고, 소소한 전국 투어를 돌고, 한동안 휴식기를 가진 다음, 어떤 야심도 조급함도 시기심도 없는 마음의 상태로 강원도 어디쯤에 있는 작은 펜션을 스튜디오 삼아 멤버들과 함께 숙식하면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르고 세상 어떤 음악과도 다른 다섯 번째 앨범을 만들고, 비평가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지만 상업적으로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어쩐지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이제 정말 끝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 후, 포르투갈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 커다란 개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마흔두 살쯤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