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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라이트 노벨 > NT(엔티) 노벨
· ISBN : 9788952870407
· 쪽수 : 350쪽
· 출판일 : 2003-12-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어릴 때 할아버지가 침대 맡에서 이야기해 주셨다.
이제는 어느 고원에 간들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 옛날 여기 클라우디아 대륙에는 베로니카라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고 한다.
눈송이가 어지러이 흩날리는 겨울의 가장 혹독한 순간에만 꽃을 피웠다가, 눈발이 띄엄띄엄해지면 단단한 꽃봉오리를 두르고 다시금 기나긴 잠에 빠진다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꽃. 눈이 그대로 꽃 모양으로 자리 잡았기에 속이 환히 비쳐나듯 하얀 것이라고들 했다.
여신 파우젤을 섬기는 무녀를 베로니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그 여성이 무녀가 된 날부터 남은 생 전부를 잠 속에서 보내야한다는 애처로움이 그 덧없는 꽃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엔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던 베로니카 꽃은 불과 수십 년 만에 대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우리 인간이 여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런 것이라고 두려움을 품고서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베로니카 교체식이 있었는데, 그때 기사 한 사람이 베로니카를 적국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마치 당신이 지은 죄인 양 중얼거리셨다.
"놀랍게도 '수치스러운 기사'는 함께 호위하던 동료를 죽이고 적에게 베로니카를 넘겼단다. 왕국의 기사 된 몸으로 어찌 감히... 베로니카는 여신 파우젤의 영이 깃든 여성, 다시 말해 여신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을."
베로니카를 팔아넘긴 기사는 바로 체포되어 극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여신은 이 사건에 몹시 진노하여 대지를 장식하던 아름다운 꽃을 인간에게서 빼앗아버렸다고 한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옛날이야기며, 성직자들 역시 베로니카가 멸종한 이유는 기후변화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치스러운 기사가 여신께 저지른 죄의 자계(自戒)로서 생겨난 꽃의 멸종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민간설화로 모습을 바꾸어 아이들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