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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일반
· ISBN : 9788953113701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10-08-09
책 소개
목차
1부 막 쪄낸 찐빵
추천의 말
1장 “마음의 가운데”
2장 “예수님 사랑해요”
3장 “흰 깃발로 하나님께 항복”
2부 세상 속의 찐빵
저자의 말
1장 “주님, 감사합니다”
2장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
3장 “매일 마음의 거울을 닦으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마침내 어렵사리 결심을 한 어느 날의 기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은근히 속으로만 오래 망설이던 일, 뭔가 앞뒤 이빨이 맞지 않아 꼬이는 일이 생길 듯만 싶어 망설이고 또 망설이던 일을 마침내 결행했던 것이다. 어인 일로 때맞춰 내게 다가와 준 고마운 이들의 인도에 따라 마음을 어렵사리 비우고, 그리고는 아직 친근하지 않아 낯설기만 한 하나님 앞에 조그만 항복의 흰 깃발을 만들어 들고 쭈볏거리며 나아갔다. 1990년 4월 29일의 빛나는 주일 아침이 바로 그 첫날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내가 받은 그 느낌은 일차적으로 평온, 마음의 평온이었다. 그리고 굳게 닫힌 빗장을 풀어 온몸을 열어젖히고 바라본 그곳에 누구도 꼼짝 못할 ‘사랑’이 있었음을 감히 증거하고 싶다. 이미 오래 전부터 탕아의 귀가를 기다려 오신 주님의 잔잔한 미소가 마치 전율의 혈액인 양 내 온몸을 감싸고 한없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게다가 목사님의 목화송이처럼 순하디 순한 표정과 가식 없는 말씨에 내 불안정한 정서 감응의 스트링은 어느덧 조율당하고 있었다. 조율사의 등 뒤에 또 누군가 한 분이 분명히 계시는 듯한 느낌을 나는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이 먹은 인간이 어쩌면 저렇듯 목화송이 같을 수가 있나. 그분은 누굴까? 그야 아무튼, 느끼기에 따라… 어찌 보면 그것은 한 고귀하신 분이 흉허물 하나 없는, 허허로운 표정으로 내게 보내 주시는 윙크이기도 하였고, 느끼기에 따라 그것은 더없이 친숙한 어떤 손길의 따스함이기도 하였다. 목사님의 설교, 그 말씀의 구체적인 어휘는 오히려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말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의 무엇 때문에 내 몸은 버터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하였다.
-p.114-115
100일.
100일째라는 것을 일에 쫓겨 나도 잊고 있었는데, 내 신앙 매니저인 윤형주 씨가 기억하고 있다가 전화로 일러준다. 지난 4월, 우리가 처음 신앙의 문제를 얘기 나눴던 영동의 <오죽헌>에서 ‘100일 기념 저녁’ 사겠다고. 실로 놀라운 신심(信心), 놀라운 두뇌(頭腦), 놀라운 우정(友情)이다.
그러니까 나는 기껏 ‘예수님 사랑해요’ 한마디밖에 할 줄 모르는 100일짜리 ‘찐빵 Sample’.
그러나 지난 100일 동안, 내 의식의 변화에 대해 생각하면 스스로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기독교방송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을 영접한 이후…’의 차원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나는 두 번 세상을 살기 시작한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닐 수 없음을 증거해야 하는 한 작은 Sample로서의 의무에 대해 혼자서 생각함.
모든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어렵사리 눈곱만큼 마련되기 시작한 이 믿음을 기점(起點)으로!
-p.130
꼽기로 하자면, 세상살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에 열두 번씩도 더 하나님을 잊어먹곤 하는 가엾은 ‘세상 속의 찐빵’!
그런 중에도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스스로 순간순간 얼른 그 사실을 깨우치고는 고무줄에 매달린 요요의 공처럼 금세 제자리로 다시 돌아와 어릿어릿 혼자서 쑥스러운 표정을 짓곤 한다. 돌아와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하면, 항용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과 내밀한 친교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전등불을 끄고 홀로 조용히 잠자리에 피곤한 몸을 뉘였을 때이다.
너무 피곤하여 온몸이 침대 속으로 어지러이 빠져들 것만 같았다. 수면이 아니라 ‘하루분의 사망’이라고나 해야 옳을 바로 그런 때, 눈을 감고 가만히 하나님 생각을 하면, 이 세상에 그보다 더 따스한 위안이 없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 세상에 그보다 더 완전한 평화는 없다.
평화의 손길 아래 숙면을 취하고 나면, 이튿날 새벽의 여명 속에서 어김없는 또 ‘하루분의 부활’이 내 몫으로 주어진 것을 안다. 내 생명이며 일상이 결국 그 단 한분의 소관 아래 있는 것을….
p.264-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