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효 운동하는 목사 최성규의 고집

효 운동하는 목사 최성규의 고집

최성규 (지은이)
  |  
두란노
2011-03-25
  |  
11,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로딩중

책 이미지

효 운동하는 목사 최성규의 고집

책 정보

· 제목 : 효 운동하는 목사 최성규의 고집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15224
· 쪽수 : 280쪽

책 소개

최성규 목사의 인생 이야기. 이 책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꼭 배우고 실천해야 할 신앙심, 애국심, 효심에 대해 최성규 목사의 인생 경험을 섞어 구성한 것이다. 최 목사는 인생의 가장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발견했고, 서른아홉에 늦깎이 목사가 된다.

목차

프롤로그
나는 ‘삼심’(三心)을 고집한다 4

^1부
고난은 인생의 스승이다

절대 호래자식 소리는 듣지 마라 14 헌 공책 한 권의 행복 18 가마니 짜는 소년의 첫 아르바이트 24 내 생애 최고의 교훈 ‘십인’(十忍) 30 똥벼락을 맞다 35 월급 없는 공장장 38 13년의 광야 훈련 43 “나와 결혼하면 고생할 겁니다” 50 빚더미 회사를 떠안고 55 아버지가 생기다 59 늦둥이 목회자 64 나의 스승, 나의 멘토 70 나는 인천에 빚진 사람 76 ‘하루 한 시간 기도하기’ 운동 82 진흙길을 걸어 모이는 감격시대 89

2부
신앙보다 좋은 유산은 없다

알면 행하라 98 사랑하면 가르치라 104 하나님은 부모의 눈물에 약하다 109 자녀에게 인정받는 부모가 돼라 114 ‘좋은 환경’이 아니라 ‘좋은 부모’가 돼라 119 자녀와 함께 예배를 드리라 125 믿음의 명문가 130 1등도 불행한 교육 136 교육과 신앙은 같이 가야 한다 142 실력을 갖추고 때를 기다리라 149 일상을 성실로 디자인하라 155 스펙이 아니라 사명을 좇으라 161

3부
효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의 하모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170 사랑하기 때문에 기발해지는 ‘이웃 사랑’ 176 나의 길, 나의 사명 181 왜 효인가? 186 ‘사건’이 ‘역사’가 되다 191 효는 삼통(三通)이다 197 “자넨 효자야” 202 효 지도자를 파송하다 208 관계의 하모니 214 빛나는 주연들 219 “최 목사는 나를 변화시켰어요” 225

4부
참 신앙은 나라를 품는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232 그때 그 신앙, 그때 그 애국 238 나라를 위해 울라 244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라 251 한 사람의 변화가 일으키는 기적 258 농담이라도 거짓말을 말라 264 출산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 애국하는 것 270

에필로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276

저자소개

최성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성령의 사람, 효하는 사람", "한국교회의 방향 제시자", "화합과 일치의 목회자"라고 불리는 최성규 목사는 한국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목회자다. 전형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교회가 없는 마을에서 자란 탓에 예수님을 몰랐다. 6ㆍ25전쟁으로 열 살 때 아버지와 두 분의 작은아버지를 잃었고, 주경야독의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서른세 살 때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서른아홉 살에 늦둥이 목회자로 헌신한 후, 1983년 11월 8일 창립한 인천순복음교회의 초대 담임목사가 되어 지하 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시켰다. "예수 사랑, 사랑 실천" 정신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 담이 없는 교회로서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또한 세계 유일의 성산효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해 효 신학의 기반을 닦고 효를 가르칠 지도자를 양성하여 효 운동 확산에 힘쓰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 대표회장을 역임했으며, 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와 HYO하모니선교회 이사장으로 성경적 효 운동을 통해 하모니를 이루는 교회와 사회와 세상을 만드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효 운동하는 목사 최성규의 고집》(두란노),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소서》(나침반), 《성경적인 삶》, 《최성규의 시편》(전 7권, 이상 쿰란), 《효학개론》(성산서원), 《교회복지 목회론》(한국강해설교학교)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우리가정의 비극이기도 했다. 전쟁으로 서른두 살의 아버지와 두 분의 작은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었으니 말이다. 그 바람에 우리 집안에 졸지에 과부가 셋이나 나왔다.
아버지를 잃은 나는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꾸려야 했기에 뭐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했다. 하지만 열 살 꼬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그리 많진 않았다. 더구나 전쟁으로 유린된 국토에서, 그것도 시골의 어린아이가 돈벌이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 경제를 두고 영국 타임스의 한 기자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느니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는 것을 기대하라”고 말할 정도로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였다. 암울한 시대적 환경은 내 유년을 전쟁의 상흔으로 물들이며 삶의 무게를 더해 주었고, 그 무게가 어찌나 버거운지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리워할 겨를도 없었다.
한참 뛰어놀 나이에 일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밭을 갈고, 잠잘 시간에 가마니를 지고 장터로 향해야 했다. 아버지가 있는 가정도 먹고살기 어려운 판국에 아버지마저 안 계셨으니 다른 집보다 어려운 건 당연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당시의 고생을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대한 희망을 품은 것도 아니다. 그저 숙명으로 알고 묵묵히 오늘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놀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마음을 눌러야 하고, 잠자고 싶어도 몸을 일으켜야 했던 그때의 삶은 나에게 책임감과 절제를 가르친 선생이었다.


학교에 다시 가게 된 겨울, 나는 어머니와 겨우내 가마니를 짰다. 가마니를 짜려면 먼저 볏짚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곰배로 볏짚을 빻는다. 짚의 숨을 죽여 보들보들해져야 비로소 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자격이 된다. 그런데 곰배로 볏짚을 빻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열한 살 소년이 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이지만 대신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곰배로 빻아 짚이 부드러워지면 새끼를 꼬기 시작한다. 몇 날 며칠을 새끼를 꼬다 보면 더 이상 새끼를 꼴 수 없을 정도로 손바닥이 아프다. 손바닥에 힘을 주어 새끼를 꼬기 때문에 며칠간 계속하면 몽둥이로 손바닥을 맞은 것 이상으로 통증이 심하다. 그렇다고 멈출 수 있는 형편도 아니어서 계속하면 나중엔 손바닥에서 피가 난다. 내가 그만두면 어머니 혼자서 그 일을 다 해야 하니 피나는 손으로 새끼를 꼬았다. 며칠은 새끼만 꼬고, 새끼가 다 꼬아지면 또 며칠은 가마니만 짠다.
그렇게 쌀가마니 10장이 완성되면 천안 장에 내다 팔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음 날 새벽 2, 3시경에 일어나 집을 나선다. 가까운 곳에 장이 있긴 하지만 가마니 값을 제대로 받으려면 30리 길을 걷더라도 천안 장에다 내다 팔아야 했다. 장에 갈 때는 보통 쌀가마니 10장을 지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출발하는데 언제고 어린아이는 나 혼자다. 어리다 보니 가마니를 지고 일어나지 못해서 고꾸라지거나 캄캄한 산길에서 발을 헛디뎌 구른 적도 있다. 가마니를 지고 5시간 동안 산길을 걸으면 한겨울에도 비 오듯 땀이 쏟아진다. 함께 떠나는 마을 어른들의 걸음을 놓칠 새라 코앞도 분간할 수 없이 어두운 산길을 잰걸음으로 걸어 장에 도착하면 훤하게 동이 터 오곤 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전에 일하던 화장품 공장 사장님으로부터 다시 와달라는 권유를 받고 죽도록 일만 하고 빈손으로 나온 그곳으로 다시 갔다. 젊은 날의 열정을 고스란히 바치고도 빈털터리로 나온 게 억울하기도 했지만, 회사 설립 초기부터 나의 손때와 흔적을 구석구석 남기며 구슬땀을 흘린 곳이라 외면할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간 회사에서 지난날처럼 일에 파묻혀 몇 년을 보내자 사장님은 회사 운영을 내게 맡기고 자신은 다른 사업에 손을 댔다. 하지만 무리하게 투자해서 시작한 나염공장으로 인해 잘나가던 화장품 공장마저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다.
사장님이 회사를 떠나실 때 내심 그동안 받지 못한 급여를 정산해 주거나 집을 사주겠거니 기대했다. 당시에 100만 원이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는데 그분은 집은커녕 밀린 급여도 정산해 주지 않고 회사를 떠났다. 열여덟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용돈 정도만 받으며 그분에게 충성한 셈이다. 그분은 집 사준다는 약속도, 공부시켜 준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13년 동안 그분을 위해 봉사했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던 1년 반 동안 학비를 대준 게 전부였다. 결국 13년 동안 죽어라 일하고 받은 것은 실망과 아픔뿐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중요한 인생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분에게서 받은 배신의 상처를 조용기 목사님을 통해 보상해 주셨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키운 나무에서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내가 준물과 거름과 정성이 그 옆에 있는 나무로 흘러 들어가도록 물줄기를 바꾸어 주셨고, 결국 옆에 있는 나무에서 열매를 거두도록 하셨다. 나무는 달라도 나무가 심긴 땅의 주인은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언젠가는 흘린 땀의 보상을 주인으로부터 받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고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고 낙심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