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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 1부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 1부

(주전 331~주전 4년,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부터 헤롯대왕의 죽음까지)

류모세 (지은이)
두란노
15,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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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 1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약편 1부 (주전 331~주전 4년,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부터 헤롯대왕의 죽음까지)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성경의 이해
· ISBN : 9788953118300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12-10-25

책 소개

신약편은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그리스(헬라) 시대부터 다루게 된다. 말라기서의 배경이 되는 페르시아 시대부터 마태복음의 배경이 되는 로마 시대 사이에는 무려 300년 이상의 역사적 간극이 존재한다.

목차

추천의 글
프롤로그

Part 1 70인역 성경과 헬레니즘 문명의 그리스 시대(주전 331-주전 167년)

Chapter 1-1 떴다! 세기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과 죽음 주전 331-주전 323년

Chapter 1-2 알렉산더 후계자들의 고만고만한 영토 쟁탈전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 이후 주전 323-주전 301년

Chapter1-3 성경의 세계화를 이룬 70인역 성경의 탄생과 프톨레미 왕조
이집트계 프톨레미 시기 주전 301-주전 198년

Chapter 1-4 피 말리는 유대교 탄압과 셀류코스 왕조
시리아계 셀류코스 시기 주전 198-주전 167년

Part 2 독립을 위한 피의 혁명과 마카비 시대(주전 167-주전 67년)

Chapter 2-1 유다가 이끈 죽기살기 독립 투쟁과 수전절 제정
마카비 혁명의 발발부터 성전 재봉헌까지 주전 167-주전 164년 00

Chapter 2-2 화려한 외교술의 달인, 요나단
성전 재봉헌부터 마카비 왕조의 탄생까지 주전 164-주전 142년 00

Chapter 2-3 유대 독립 만세! 시몬과 그의 후계자들
마카비 왕조의 탄생부터 멸망까지 주전 142-주전 67년 00

Part 3 억세게 운 좋은 헤롯과 로마 시대 제1기 :
폼페이우스의 등장부터 헤롯 대왕의 죽음까지(주전 67-주전 4년)

Chapter 3-1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폼페이우스와 로마에 편입된 유대
왕자의 난에서 마카비 왕조의 최종적 멸망까지 주전 67-주전 63년 00

Chapter 3-2 슈퍼스타 폼페이우스, 정치 삼단 카이사르, 갑부 크라수스의 결합
1차 삼두정치의 성립 주전 63-주전 55년 00

Chapter 3-3 삼두에서 이두로, 운명을 건 결투의 시작
로마-파르티아 전쟁과 크라수스의 죽음 주전 55-주전 53년 00

Chapter 3-4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도하 사건과 안티파터의 활약
1차 삼두정치의 와해 주전 53-주전 48년

Chapter 3-5 브루투스 너마저! 카이사르의 암살과 헤롯의 급부상
파르살로스 전투에서 필리피 회전까지 주전 48-주전 42년

Chapter 3-6 뛰는 안티고누스 위에 나는 헤롯, 대왕의 꿈을 이루다
유대인의 왕 헤롯의 등장 주전 42-주전 37년

Chapter 3-7 위기는 곧 기회! 잡아 옥타비아누스의 마음을 얻다
헤롯 통치 제1기: 왕권수립기 주전 37-주전 25년

Chapter 3-8 내가 제일 잘나가! 헤롯 왕국의 승승장구
헤롯 통치 제2기: 번영기 주전 25-주전 13년

Chapter 3-9 여섯 차례 고쳐 쓴 유언장, 비참한 말년
헤롯 통치 제3기: 가족 간의 갈등기 주전 13-주전 4년

참고문헌

저자소개

류모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직 ‘선교’ 오직 ‘말씀’을 푯대로 하나님께 붙잡혀 산 그에게 아직 달려가야 할 길, 주께 받은 사명이 남아 있다. 한의사, 이스라엘 선교사를 거쳐 그는 이스라엘 선교와 회복을 알리는 문서사역자이자 성경을 사랑하는 이 시대의 성경교사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남은 사명을 감당하되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고 찾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 선교사 된 정체성을 가진 사명자로서 오늘도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저서로 《열린다 성경 난해구절 1》(규장), 《열린다 성경》 전 7권, 《열린다 비유》 전 3권, 《이슬람 바로보기》, 《유대인 바로보기》, 《역사 드라마로 읽는 성경》 신구약편 전 6권(두란노), 《체질을 알면 사람이 보인다》(고려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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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집트 원정을 마친 이듬해인 주전 331년, 알렉산더는 겨울을 가사에서 보냈는데, 이때 성지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된 두 개의 재미난 에피소드가 전해져 온다.

첫 번째는 사마리아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사마리아인들은 알렉산더가 7개월간 두로를 포위 공격하고 있을 때 자진 항복의 뜻으로 군사 8,000명을 지원한 바 있다. 당시 사마리아 총독은 산발랏(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산발랏과는 동명이인)이었는데, 이 일로 알렉산더의 환심을 산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산발랏에게는 므낫세라는 이름의 사위가 있었는데, 그는 당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인 얏두아(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마지막 대제사장, 느 12:11)의 동생이었다. 므낫세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총독의 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더 이상 직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인을 졸라 사마리아 지방에 자신이 직무할 수 있는 자체적인 성전을 지어 달라고 떼를 썼고, 산발랏은 알렉산더의 허락을 받아 그리심 산에 사마리아 성전을 세웠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이후 변심해 알렉산더가 파견한 총독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임으로써 알렉산더를 격노케 했다. 이에 알렉산더는 군사를 보내 사마리아를 파괴하고 그곳에 마케도니아의 퇴역 군인들을 정착시켰다. 이때 마케도니아인들은 세겜을 거쳐 여리고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유대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다. 1세기 당시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가사에 있던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대제사장 얏두아를 만났다는 어메이징한 기사를 전하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이 두로를 포위 공격하던 알렉산더에게 자진 항복한 것과 달리 유대인들은 계속 페르시아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밝혔기 때문에 대제사장 얏두아는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얏두아는 담대하게 대제사장복을 입고 성대한 행렬과 함께 알렉산더를 맞으러 나갔다. 이때 놀라운,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알렉산더가 대제사장 얏두아를 보자마자 유대인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얏두아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희생제사를 드린 것이다. 알렉산더의 측근들이 그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기자 알렉산더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내가 마케도니아에서 어떻게 하면 세계 정복을 이룰 수 있을까 궁리하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저 얏두아 대제사장과 똑같은 옷을 입은 노인을 만났소. 그 노인은 자신이 도와줄 테니 지체하지 말고 세계 정복의 뜻을 이루라고 격려해 주었지!”
이 에피소드는 알렉산더의 일대기를 다룬 그리스의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고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만 나온다. 그런 탓에 알렉산더와 관련된 요세푸스의 전승은 한 번쯤 걸러서 이해하는 게 좋을 듯싶다.


제2막: 폼페이우스의 해적 소탕 작전
주전 1세기 초반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등장한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오던 호민관 가비니우스를 내세워 민회에서 해적 소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킨다(주전 67년) . 통과된 해적 소탕안의 핵심은 앞으로 임명될 해적 소탕 총사령관에게 국가 로마의 1년 예산 중 절반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3년 이상의 절대 지휘권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공화정 로마에서 최고 통치자인 집정관의 임기는 1년에 불과했다. 전쟁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만 임시로 선출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관의 임기도 고작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로마에서 선출된 독재관이 이탈리아 본토를 넘어 그 바깥 영역까지 실력 행사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국가 예산의 절반이 넘는 자금을 임의로 주무르는 것과 함께 무려 3년의 임기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 이때 통과된 해적 소탕안의 획기적인 골자였다. 폼페이우스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해적 소탕안의 통과는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는데, 이것은 당시 해적들의 문제가 로마에 얼마나 심각한 골칫거리였는가를 보여 준다.
폼페이우스의 해적 소탕 작전은 가히 군사 작전의 교과서에 실려도 좋을 만큼 치밀하고도 용의주도하게 펼쳐졌다. 폼페이우스는 지중해를 크게 동부와 서부의 두 개 권역으로 나누어 먼저 서부 지중해의 해적들을 소탕했다. 그리고 마치 어부가 그물을 당기듯 남은 해적들을 동부 지중해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해서 서부 지중해의 해적 소탕에 40일, 해적의 소굴인 길리기아를 포함하는 동부 지중해의 해적 소탕에 49일, 합쳐서 불과 89일 만에 작전을 완수했다.
이로써 주전 67년 여름 그동안 신출귀몰하며 지중해를 주름잡던 해적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 폼페이우스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해적들에게 신전의 보물까지 분탕질당하던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에서는 폼페이우스를 신으로 추앙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폼페이우스와 관련해서 유행하던 말이 있다.
“폼페이우스, 내가 제일 잘나가!”


카이사르는 싸움이 종결된 이듬해 3월 말부터 두 달 동안이나 애인 클레오파트라와 나일 강 유람을 즐기며 휴가를 보냈고, 같은 시간에 도미티우스는 카이사르를 기다리며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미티우스가 보낸 급보를 받은 것은 카이사르가 휴가를 마치고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오고 난 후였고, 그가 원군을 이끌고 안디옥에 나타난 것은 6월이 되어서였다. 이 여섯 달 동안 파르나케스는 소아시아의 절반가량을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급보를 전해 받은 카이사르는 펠루시움, 아스겔론, 욥바, 도라 등 동부 지중해 해변에 있는 항구 도시들을 거쳐 시리아로 향했다. 카이사르의 배가 돌레마이 항구에 잠시 정박했을 때 안티파터, 힐카누스 2세, 안티고누스 등 유대 속주를 대표하는 유력 인사들이 카이사르를 찾았다. 먼저 아리스토불루스 2세의 아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안티고누스가 카이사르 앞에서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일목요연하게 호소했다.
첫째, 자신의 부친인 아리스토불루스 2세와 형인 알렉산더가 죽은 것은 단지 폼페이우스와 적대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폼페이우스 역시 카이사르의 적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곧 폼페이우스라는 공동의 적을 가진 자신과 카이사르는 친구가 아니냐는 논리였다.
둘째, 로마가 폼페이우스를 통해 유대 국가의 내정에 개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 국가의 합법적인 왕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점을 피력했다.
셋째, 알렉산드리아 전쟁에 안티파터와 힐카누스 2세가 참전해서 카이사르를 도운 것은 이전에 폼페이우스와 맺은 돈독한 관계로 인해 카이사르에게서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한 것이지 결코 카이사르에 대한 충성심에서 한 것이 아님을 지적했다.
안티고누스의 항변이 끝나자 곧 안티파터가 카이사르 앞에 섰다. 그는 긴 말보다 웃통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몸에 난 수많은 상처를 내보이면서 카이사르의 감정에 호소했다.
“카이사르에 대한 저의 충성심은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의 몸에 난 이 수많은 상처들이 소리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고소하고 있는 저 안티고누스의 아버지와 형은 이미 로마에 대항해 세 차례나 반역을 일으킨 전력이 있습니다. 만약 안티고누스가 왕이 된다면 그는 아버지의 피를 받아 로마에 대항해 다시 한 번 반역을 일으킬 것이 분명합니다.”
양쪽의 호소를 들은 카이사르는 안티파터의 손을 들어 주었다. 사실 듣기 전부터 카이사르의 마음은 이미 안티파터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다. 안티파터는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카이사르를 도운 결정적인 공훈이 있었고, 안티고누스 집안과 달리 로마에 대항해 반역을 일으킨 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파터의 호소에 깊은 감명을 받은 카이사르는 그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고 이전에 유대 속주의 ‘행정관’이던 그의 직위를 한 단계 올려 ‘행정장관’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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