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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21263
· 쪽수 : 416쪽
· 출판일 : 2015-01-0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_믿음으로 산다는 것
Part1 믿음의 개척자/ 모험하는 인생을 살다
1. 부르심을 받다
2. 복의 근원이 되다
3. 참된 예배자로 살다
4. 큰 사랑으로 위기와 실패를 이겨 내다
5. 선택의 갈림길에 서다
6.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다
Part2 믿음의 연단/ 하나님을 의지하다
7. 사랑으로 마음을 넓히다
8. 복의 원리를 배우다
9.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다
10. 하나님의 의를 입다
11. 기다림의 의미를 깨닫다
Part3 믿음의 재도약/ 반복되는 실수, 은혜를 깨닫다
12. 절망의 순간, 놀라운 약속을 받다
13. 뜻밖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14. 중보기도로 하나님과 사귀다
15. 왜 위험한 선택을 했을까
16. 한순간 무너지는 믿음, 긍휼에 의지하다
Part4 믿음의 승리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벗’이 되다
17. 기다림이 ‘웃음’으로 열매 맺다
18. 결단할 힘을 얻다
19.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목마르지 않다
20. 사랑의 시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21. 마침내 승리하다
에필로그 _인생의 성공자보다 믿음의 승리자
[독자의 유익]
1.믿음과 믿음으로 사는 삶의 실체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2.자신의 믿음의 단계를 돌아보고 견고한 믿음을 소망하게 된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프롤로그 중에서]
한때 우상 숭배자였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그는 믿음을 통해 인생 전반부와는 전혀 다른 인생 후반부를 살았습니다. 75세에 새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믿음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믿음은 육체의 한계를 초월합니다. 그의 나이 100세에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과거를 초월합니다. 한때 우상을 섬기며 살던 그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자 그는 과거를 떠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모든 어려움, 모든 역경,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믿는 사람은 숙명이나 운명이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개척자의 삶을 삽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신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신념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믿음입니다. 신념이 만들어 낸 믿음은 인본주의적인 믿음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대상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한 믿음의 내용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사변적이라기보다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반응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순종에 의해 테스트 받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함으로 떠났습니다(히 11:8). 하나님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도 그는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훌륭하긴 하지만,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엄밀히 성경을 연구해 보면, 우리의 믿음에 의해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믿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는 거짓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아 키웠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를 서서히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 그 사랑과 헌신을 경험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것을 그와 그 후손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을 연구하면서 구약의 말씀이 어떻게 신약에서 성취되는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연구하지 않고는 결코 신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에 대한 말씀, 모리아 산에서 만난 숫양의 신비는 모두 예수님 안에서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은 구속사의 핵을 이룹니다. 그 믿음의 삶은 모든 믿는 자들의 모범입니다. 믿음을 따라 아브라함은 모험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베푸셨습니다. 그의 이름과 그의 후손을 창대케 하셨습니다.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전달해 주는 복의 근원이요 복의 통로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복을 사명으로 깨달아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모든 민족을 복되게 해야 합니다.
마침내 승리하다
믿음의 결단은 순간이지만 믿음의 성장과 승리는 점진적입니다. 믿음은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돌로 떡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 순식간에 영광을 받는 슈퍼맨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부활의 영광을 추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도 점진적으로 성장합니다. 먼저 일차적인 모습이 창세기 12장에 나옵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창 12:5).
갈대아 우르, 하란, 가나안, 이 세 지역은 우리의 신앙 상태를 보여 주는 지표입니다. 먼저 갈대아 우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머물렀던 죽음과 어둠의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죄와 사탄의 권세 아래 있던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믿게 하셨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믿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하란은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가나안 땅과 갈대아 우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자꾸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세상에 한 발을 걸쳐 놓은 채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 주일에는 예배드리며 경건히 보내지만 주중에는 믿지 않는 자들과 다름없이 생활하는 사람은 신앙 상태가 하란에 머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고전 3:1), 즉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신앙은 어린아이의 상태와 같다고 말합니다.
하란을 떠나 마침내 도달한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은 축복과 능력의 땅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충만을 경험하는 장소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이 이루어집니다. 구원받기 위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명하신 대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을 여전히 데리고 다녔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헌신의 땅인 가나안에서 아브라함이 온전히 자신과 모든 것을 드리도록 만드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혀 없는 갈대아 우르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믿지만 아직도 세상이 좋아서 중간 지역인 하란에 주저앉았습니까? 아니면 구원받은 자로 삶을 주 앞에 온전히 드린 가나안에 도달했습니까? 물론 가나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신앙이 완전한 단계로 들어선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나안은 헌신된 신앙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신앙의 세 단계를 거치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게 됩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마침내” 가나안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창 12:5). 이 “마침내”라는 단어 속에 깊은 감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가나안 땅이 좋아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친척도 있고, 오랫동안 살아 정든 갈대아 우르에 머무르길 원했을지 모릅니다. 또 하란은 풍요롭고 안전한 곳이어서 삶을 안착시키기에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된 약속의 땅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하시고 설득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셨음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우리가 믿겠다고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자비롭게 찾아오십니다. 죄악 중에 거할 때는 사랑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극한 상황에서 질병과 실패를 경험하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매순간 믿음의 길로
아브라함이 장막을 세운 장소는 벧엘과 아이 사이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 아이는 ‘멸망의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그 사이에 살던 아브라함은 계속되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계속해서 선택하는 영적 투쟁을 해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벧엘이냐 아이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순간 ‘멸망의 무더기’를 등지게 됩니다. 반대로 ‘멸망의 무더기’를 선택하는 순간 하나님을 등지게 됩니다. 내 뜻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뜻이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 내 뜻이 멀어집니다.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있었지만 늘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그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열심과, 마침내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애정의 손길을 보십시오. 또한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의 집을 선택하는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의 본질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보다 더 완전하게 사셨던 예수님을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온전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예수님은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사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점점 성장하여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믿음은 경배하는 것입니다. 사역 속에 빠져들기 전에 예배 속으로 빠져드십시오. 일꾼이 되기 전에 예배자가 되십시오. 훌륭한 일꾼은 참된 예배를 통해 배출됩니다. 참된 축복은 예배를 통해 받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 단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경주자들이요 순례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가볍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가볍게 살라 함은 물질 없이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장막에 거했던 아브라함처럼 초연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까지나 머물 수 있는 장막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떠남과 만남에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떠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거나 머무르려고 몸부림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