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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인물
· ISBN : 9788953144460
· 쪽수 : 420쪽
· 출판일 : 2023-04-26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그의 영성과 지성이 빚어진 시간 속으로
Part 1. 신에게 솔직히
( 1950-1972년 )
1. 완벽주의 엄마와 외로움
/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
2. 부조리한 인간
/ 버크넬대학교
3.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법
/ IVF
4. 용감한 캐시
/ 캐시 크리스티
5. 참된 신화
/ 잉클링스
6. 웰컴, 회의론자!
/ R. C. 스프로울과 리고니어밸리연구소
Part 2. 학문의 장, 벗과 스승들
( 1972-1975년 )
7. 신학적 다양성
/ 고든콘웰신학교
8. [탁상 담화]
/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울새들
9. 이견(異見)의 즐거운 공존
/ 로저 니콜과 신칼뱅주의
10. 영적 역학, 부흥의 역학
/ 리처드 러블레이스와 조나단 에드워즈
Part 3. 불 시험
( 1975-1989년 )
11. 남부 화학공업 중심지, 실전 목양
/ 버지니아주 호프웰
12. 전개되는 드라마
/ 에드먼드 P. 클라우니
13. 복음으로 빚어지다
/ 웨스트민스터신학교
Part 4. 뉴욕에서 전 세계로
( 1989년-현재 )
14. 우주의 지배자들 사이 둥지를 틀다
/ 뉴욕시
15. ‘예스’(Yes)의 나라
/ 리디머장로교회
16. 누구나 예배한다
/ 9·11 테러와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17. 《답이 되는 기독교》의 탄생
/ 도그우드 펠로십
18. 삶과 사역의 나이테
/ 마무리
에필로그. 멈추지 않고, 하루하루 그분께 더 가까이
후기
감사의 말
주
책속에서
어찌 된 일일까? 팀은 왜 달라졌을까? 악과 고난과 심판에 대한 그의 지적 관심은 돌연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타 종교에서 답을 모색하고 그리스도인들과 열띠게 토론한 끝에 팀은 결국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새로운 방식의 영적 깨달음이 아니라 마침내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자신의 죄에 압도되고 실패와 결함을 직시한 팀은 성경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계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주제넘게 하나님을 판단하던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의로우신 동시에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따르기로 했다. 정의로우신 그분이 그의 죄를 용서하셨다. 이로써 종교학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Jesus the King)에서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대학 시절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성경이 생생히 살아났다. 이렇게 표현하면 가장 좋을 것이다. 변화되기 전에는 내가 성경을 뜯어보고 캐묻고 분석했는데, 변화된 후에는 마치 성경이 또는 성경을 통해 그분이 나를 뜯어보고 캐묻고 분석하시는 것 같았다.” 물론 그는 어머니에게서나 성장기 시절 다닌 교회에서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복음의 기쁜 소식이 그에게 궁극적인 실재로 다가온 것은 이 인격적 만남이 있고 나서였다.
세상을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누면 기독교의 심오한 혁명성의 핵심을 놓친다. 감정 표현과 음악 선곡과 예배의 길고 짧음 등에 대한 선호는 문화마다 다를 수 있고, 그러면서도 동일한 기독교 신앙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선호를 신실한 실천의 절대적 요건으로 간주할 때가 많다. 그러나 부흥은 세상의 모든 장벽을 허문다. 그리스도인들이 더는 문화적 선호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기 때문이다. 러블레이스는 예수 운동〔1960-1970년대 미국 서부에서 시작되어 유럽 등지로 퍼져 나간 복음주의 기독교 운동으로 초대 교회의 회복을 지향했으며 대체로 반문화적이었다-옮긴이〕을 그런 부흥으로 보았다.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 운동을 반문화적 옷차림과 음악 때문에 수상하게 보았지만 말이다.
러블레이스는 예수 운동을 구태를 답습하는 것에 저항하는 반가운 도전으로 해석했다. 이런 부흥의 역학을 켈러는 교회에 접목했다. 처음에 호프웰에서도 그랬고 이후에 뉴욕에서도 그랬다. 그는 러블레이스의 다음과 같은 경고를 귀담아들었다. “회중을 전도와 사회 치유의 도구로 빚으려 애쓰는 목사들이 이런 격렬한 반발에 부딪치면, 교회에서 변화의 주역이 되려는 열의를 잃고 점차 안주한다. 목사의 육신과 회중의 육신 사이에 무의식의 공모가 이루어진다. 이 암묵적 합의에 따르면, 목사가 회중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생활 방식을 건드리지도 않고 하나님 나라 일에 평신도의 은사를 동원하지도 않으면, 평신도도 목사에게 특별 대우를 베풀어 목사의 은사를 마음껏 구사하게 해 준다. 이제 목사는 사역의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목사의 자존심이 채워지는 사이에 회중은 각자 즐거이 제 갈 길로 가는 양 떼로 남을 수 있다.” 뉴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후에도 켈러는 러블레이스에게 배운 대로 늘 회중을 떠밀어 안일에서 벗어나 부흥을 지향하게 했다.
많은 사람의 결론에 따르면 켈러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법을 호프웰에서 배웠다. 호프웰의 블루칼라 회중 덕분에 그가 어렵고 복잡한 개념을 그리스도인과 비신자가 똑같이 이해할 수 있게 다듬어야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만일 신학교에서 곧바로 고학력자 위주의 회중에게로 건너뛰었다면, 그는 결코 널리 대중적인 작가나 설교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의욕적으로 배우려는 이들에게 도전하면서도 나머지 모두의 덕을 세우는 글이나 설교를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 순서대로의 그림은 이렇듯 나중에 되돌아볼 때와는 또 좀 다르다. 켈러는 어디서든 목회의 기본을 배워야 했는데 마침 호프웰이 그곳이었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 그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집전하는 법도 몰랐고, 수련회와 노인 요양원과 기독교 학교 채플에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자신이 보기에 그는 사역의 귀재도 아니었고, 하나님이 남부의 이 소도시에 주신 선물도 아니었다. 그냥 젊은 목사이자 젊은 남편이자 젊은 아빠일 뿐이었고, 이런 새로운 역할 중 어느 하나에도 완전히 자신감에 차 있지는 않았다. 켈러 부부는 호프웰에서 함께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