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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간증/영적성장
· ISBN : 9788953145276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23-07-19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_ 초대 교회 박해의 불길 속에 만들어진 진리, 그 속으로
프롤로그_ 왜 사도신경이 여전히 중요한가
Part 1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
1.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니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그분을 믿을 수 있다
2.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말씀이 육신이 되시다
3. 내가 ‘성령님’을 믿사오니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것이다
4.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믿사오니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시다
5. 내가 ‘부활과 승천’을 믿사오니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
6. 내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사오니
이 소망을 품은 자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
7. 내가 ‘성도의 교통’을 믿사오니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하나이며 영원히 하나가 될 것이다
8. 내가 ‘용서받음’을 믿사오니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 용서받음을 기억하라
9. 내가 ‘영생’을 믿사오니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미래를 믿으라
Part 2 사도신경을 삶으로 실천하기
10. 올바른 교리
정통성에 겸손함을 더하라
11. 올바른 실천
신조를 행동으로 옮기라
12. 올바른 열정
행동하는 교리,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리
출처
책속에서
A. W. 토저(Tozer)는 기독교의 전통적 신조에 애정이 깊었고 그에 대한 글들을 즐겨 써왔다. 그는 사도신경을 가리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으며 수 세기에 걸쳐 성도들이 경건하게 가장 많이 암송해 온 신조라고 말했다. 수많은 성도들에게 사도신경은 기독교 진리의 핵심을 담보해 주고 있다. 토저는 신앙 선언문 같은 것에 갈수록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시대에 설교하고 가르쳤다.
(중략)
이에 대한 해독제로서 토저는 성도들의 삶에서 기본 교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2-3). 이 교리를 온전히 보전하는 일은 바울이 젊은 디모데에게 했던 권고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맡겨졌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6). 그리고 토저는 “성도들이 사도적 교제를 통해 공유하는 진리는 사도신경에서 신앙고백의 편의를 위해 요약된 것과 동일한 진리”라고 믿었다.('들어서며' 중에서)
한 사람의 신념은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오늘 한 사람이 하는 일은 오늘 그 사람이 믿고 있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발적인 개별 행동들은 실패하거나 용서받거나 속죄받을 수도 있으나, 믿음은 우리 삶의 전체적 방향을 결정함으로써 결국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념,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들은 신념이 없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신념은 그야
말로 삶에 대해 우리가 지닌 믿음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매우 조직적이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가도록 되어 있다. 신앙적 회의론자는 신의 존재, 불멸, 인간의 책임 같은 문제에 대해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가장 골수 회의론자도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마음을 결정했으며, 그가 결정한 모든 사항은 그의 신념이다. 회의론자에게도 신념이 있다는 말은 그의 기분을 매우 상하게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념이 있으며 그 신념은 마침내 그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오늘날 복음주의의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행동하기보다 지나치게 생각만 앞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행동은 적고 말들만 쏟아 내는 바람에 교회는 어긋나고 있다. 우리는 도덕적 행동을 신앙적 사고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여호수아서는 일부 교회가 젖어 있는 이러한 타성을 바로잡아 줄 책이다. 읽고 묵상하면 여호수아를 불타오르게 했던 행동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여호수아서는 교리가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교리서가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교리가 들어 있는 책이다. 그 교리는 군복이나 작업복을 입고 있다. 검과 망치를 들고 있다. 어떤 곳을 향해 가고 있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생각이 현실과 맞물려 있다. 영적인 생각들이 작업복을 입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만약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스스로 깨어나서 눈을 비벼 잠을 쫓아낸 뒤 작업복을 입고 멋진 신앙적 생각을 훌륭한 도덕적 행동으로 변모시키고 있다면, 나는 우리가 이제껏 기도해 온 부흥을 맞을 것이라고 믿는다.
시대를 각성하는 깨어난 석탄
나는 땅속 깊이 묻혀 있는 석탄과 기관차의 연소실에서 불타고 있는 석탄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어떤 시에서 “깨어나는 석탄의 위력”이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지구 한가운데에 잠들어 있는 석탄을 상상해 보았다. 여러 세대가 오고 갈 동안 석탄은 여전히 그곳에 숨겨져 있다. 나무가 자라다가 쓰러지고, 풀이 자라고, 동물들이 언덕을 뛰어넘고, 사람이 땅을 경작하지만, 그 누구도 놀랍고 경이로운 힘이 땅 표면의 바로 몇 발자국 아래 놓여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몇 세기가 지난 어느 날 사람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 석탄을 캐고 전국으로 실어 나른다. 마침내 석탄은 거대한 옛날식 기관차의 탄수차에 실린다. 연소실로 들어가 증기를 뿜어내고, 증기가 실린더에 들어가면 실린더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곧 수백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석탄은 상품이 가득 실린 백 량의 기차를 끌고 대도시들 사이를 이동한다.
여기서 당신은 긴 잠에서 깨어난 석탄의 위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석탄이 깨어나려면 불이 필요하다. 연소실도
필요하다. 먼저 발파되고 케케묵은 잠자리에서 끌어올려져 기관차의 불구덩이로 던져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 거대한 기차를 끌 힘이 생긴다.
신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성경책에서 얻은 생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음미하는 말씀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는 신학적 진리와 아름다운 영적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잠자고 있다면, 그저 생각에 불과하다면, 실생활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의 용광로에 던져지면 불이 붙고, 잠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새 견인력을 지닌 기관(an engine)이 되어 자신의 세대를 각성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