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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88953153035
· 쪽수 : 340쪽
· 출판일 : 2026-05-20
책 소개
타협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살아 내는
오늘의 다니엘들에게.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 저자 J. D. 그리어!
가장 복음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뒤집는 조용한 혁명에 관하여
급속도로 세속화되는 사회, 복음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거센 압박과 비난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대로 무기력한 아웃사이더로 물러서야만 할까? 전작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을 통해 교회 안에 안주하는 끼리끼리의 신앙을 깨고 세상으로 들어가라고 도전했던 J. D. 그리어가, 이번에는 탈기독교 시대를 살아가는 '나그네'들을 향해 새롭고도 오래된, 강력한 복음의 길을 제안한다. 저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사자 굴에 들어갈 만큼 용감했으나, 동시에 적국의 왕이 그를 잃을까 봐 밤잠을 설치고 슬피 울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구약 바벨론의 '다니엘'의 삶에 주목한다.
이 책은 날 선 비난이나 정치적 투쟁으로 이 상황을 돌파하라고 부추기지 않는다. 대신, 이웃이 감동할 만큼 아름답고 탁월한 삶을 통해 복음의 통로가 되는 '일상 혁명'의 이정표를 보여 준다.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매료시키는 비결, 곧 가정과 일터에서 진리를 사수하되 온유와 존중으로 처신하여 세상이 먼저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를 묻게 만드는 지혜를 담았다.
시세를 통찰하고 하나님 나라 역사에 동참하라.
평범한 하루하루가 혁명이 되다!
저자는 에스더가 그러했듯이, 지금 각자 서 있는 일터와 가정이 '그리스도의 증인'인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전략적 파송'임을 일깨운다. 저자와 서밋교회가 지나온 성공과 시행착오의 생생한 기록을 통해, 세속 문화에 위축되지 않고 기독교의 공공성과 복음의 매력을 동시에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법을 펼쳐 보인다. 세속적 일터와 사회적 분열 속에서 지친 이들, 가족과 동료 등 가까운 이웃을 전도하기가 막막한 이들, 다원주의 사회에서 복음의 매력을 말과 행실로 선포해야 하는 교회 사역자들에게 이 책이 명확한 실전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목차
Part 1. 인생 지도를 업데이트할 시간
― 새로운 지형 위에 선 그리스도인
1. 예수님이라면 이 보라색 도시에서 어떻게 사실까?
2. 방관자로 겉돌 것인가, 나그네로 들어갈 것인가
3. 하나님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두신 이유가 있다
Part 2. 정체성은 명료하게
― 독보적인 그리스도의 ‘다르심’을 높이는 일상
4. 잃어버린 ‘증인’의 이름표를 되찾다
5. ‘구별된 걸음’으로 생명력을 퍼뜨리다
6. ‘신실한 현존’으로 이웃에 큰 기쁨을 안기다
7. 투표지 너머의 정치, 정당보다 먼저인 하나님 나라
Part 3. 삶은 조용하게
― 세상을 감동시키는 아름답고 탁월한 일상
창조 명령을 수행한다
8. “미완의 세상을 가꾸는 즐거움”
탁월함을 추구한다
9.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일할 때”
세상에 거룩함을 비춘다
10. “그분 성품 따라 정직하고 너그러운 행실로”
구속의 은혜를 보여 준다
11. “하나님 셈법으로 차려 내는 넉넉한 잔치”
선교적 사명을 진척시킨다
12. “내가 밟는 모든 곳이 선교지”
Part 4. 증언은 담대하게
― 우리 왕과 왕의 나라를 우렁차게 선포하는 일상
큰 소리로 용기를 내라
13. “사적 고백을 넘어 공적 증언의 광장으로”
큰 소리로 기뻐하라
14. “냉소의 시대를 멈춰 세우는 가장 강력한 변증”
큰 소리로 후히 베풀라
15. “적대적인 세상을 당황시키는 파격적인 관대함”
16. 큰 소리로 환대하라
“사랑의 온기로, 낯선 이들에게 집을 열 때”
17.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나도록 구하라
“신실한 순종 위에 더해지는 초자연적 확증”
에필로그. 왕의 길을 예비하며 세상을 뒤집는 일상 혁명가
주
책속에서
다니엘서는 특히 흥미롭다. 구약에 이중 언어로 기록된 책이 몇 권 안 되는데 그중 하나가 다니엘서다. 도입부와 종결부는 히브리어라서 주로 유대인을 위해 쓴 책임을 알 수 있지만, 내러티브 부분은 바벨론(바빌로니아) 언어인 아람어로 기술되었다. 모든 사건이 바벨론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BC 6세기에 정복 국가 바벨론이 유대 민족을 포로로 끌어갈 때 다니엘도 그 무리에 있었다. 느부갓네살이 통치하던 바벨론은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살랐다〕"(대하 36:19).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궁에서 일하며 바벨론의 학문과 풍습을 익혀, 말하자면 바벨론학 석사를 취득하도록 선발된 정예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었다. 이스라엘의 엘리트들을 장악한 뒤 그들을 앞세워 동족 포로들을 바벨론의 충직한 신민으로 개종시키려는 것이 느부갓네살왕의 치밀한 속셈이었다.
고국을 떠나와 환경이 바뀌다 보니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지침대로 살아갈 수 없는 부분이 생겼다. 정결의식, 제례와 절기, 사회 구조에 대한 모세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상전인 느부갓네살 정부는 정복과 폭력과 불의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야말로 '왕좌의 게임'에 휘말린 다니엘은 그 정황 속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아내야 했다.
도입부와 종결부는 히브리어로, 중심 이야기는 아람어로 기록된 이 책의 독특한 구조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이 있다. 바로 "'히브리어로' 하나님께 신실할 줄 아는 너희가 '아람어로도' 신실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문화적 '언어'가 완전히 다른 곳, 옳고 그름의 성경적 정의가 뒤집힌 곳, 마땅히 슬퍼할 일에 환호하고 명예로운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이곳에서 어떻게 하나님께 신실할 수 있을까?
다니엘의 경험은 비참하고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놀라웠다. 그는 바벨론 왕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노라고 고백하게 했다. 하지만 주변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때로는 어색할 만큼 튀었고, 때로는 위험할 정도로 눈에 띄었다. 남들이 먹는 것을 먹지 않았고, 남들이 무릎 꿇을 때 서 있었으며, 남들이 서 있을 때 무릎을 꿇었다. 그는 철저히 역행하는 삶을 살았기에 사자 굴에 던져질 정도였지만, 동시에 어찌나 큰 사랑을 받았던지 금령을 내려 그를 던지게 한 왕조차 그를 잃을까 봐 근심하며 밤을 지새웠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예수님도 자신의 사역을 아버지께서 이미 하고 계신 일에 동참하시는 것으로 이해하셨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7, 19).
예수님의 이 말씀은 왜 자신이 베데스다 못가의 특정한 병자만 고쳐 주시고 나머지는 다 그냥 두셨는지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시는 맥락에서 나왔다. 그날 못가에 병자가 많았지만 그분은 한 사람만 고쳐 주셨다. 아버지께서 이미 그 사람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그분이 아셨기 때문이다.
잠시 멈추어 마음에 새겨 보라. 예수님도 사역을 스스로 주도하지 않으셨다. 사역에서 그분의 핵심 질문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곁에서 하고 계신 일, 나를 불러 동참하게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였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가 아니라 "주권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시려는 일,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여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면 잘못된 것이다. 이는 현대의 바벨론에서 신실한 삶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려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진리다. 단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하고 계신 일이 무엇이냐의 문제다. 우리가 그분의 능력을 얻을 곳은 바로 그분이 일하고 계신 그곳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하나님이 내 곁에서 늘 일하고 계심을 인식해야 한다. 어디에 있든 내가 할 일은 그분이 하고 계신 일을 찾아내 거기에 동참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내 손에 영적 자석이 들려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주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석을 대 보아, 하나님이 작업 중이신 '쇠붙이'가 누구인지 분별해 보려는 것이다. 교육 목사가 새벽 6시, 공항 대합실에서 바로 그 일을 하는 동안, 듀크대학교에는 동일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수고하는 동료가 있었다. 하나님이 이 모두를 한데 엮어 아름다운 구원의 이야기를 이루신 결과로, 정처 없이 방황하던 한 여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얻었다.
사실 그날 아침에 그 교육 목사는 이런 상황을 구상하면서 집을 나선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비행기 좌석이 업그레이드되지 않아 한껏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한 사람 차이로 자리를 놓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그 좌석을 대신 차지하게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기내에서 그의 말소리가 그 여성에게 잘 들리게 하시려고 말이다.
사회라는 이름의 비행기에서 그리스도인에게 더는 '일등석'이 주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 일로 우리는 좌절할 수 있다. '긍정적 세계'에서는 그런 특권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이 원하시는 바로 그곳에 두신다. 그분이 일하고 계신 대상이 있기에 우리에게 그들의 사연을 듣게 하신다.
자신이 어쩌다 현재의 상황에 이르렀는지 의아한가? 왜 하필 이 학교, 이 직장, 이 옆집 사람이란 말인가? 당신이 그 자리에 있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어떨까? 적어도 현재로서는 말이다. 그분의 뜻에 저항하기보다 당신의 '바벨론'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능력으로 일하고 계신 하늘 아버지가 문득 당신에게 보이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계획이 있어 우리를 여기에 두셨다. 우리가 생각하던 최고의 계획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분의 계획이 훨씬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