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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54649797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18-03-31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빵
귀로
더이상 아닌 봄
그늘족
즐거운 독백
원반던지기 선수의 고독
눈썹
나프탈렌
점멸등
바퀴
광화
뿔
물의 집
붉은 새
쥐
2부
모래 날다
조문(弔問)
허밍
개곡선(開曲線)
동행
손톱
옹알이
몰운대에 서다
동물성
유령들
계단과 아코디언
발굴
오역
알코올 천사
가수 요조
3부
악기
고리
끝나지 않는 계절
알코올
경주
푸른 늑대
불광천
서쪽의 집
구석을 읽다
동굴이 견디는 법
곡두
감자가 있어요
어느 날의 고백
연필
북촌
4부
모르는 길
잔영
숨
드라이아이스
지하생활자의 수기
불가능한 사과
북촌 2
장흥
여름날
일인극
새의 기원
달의 풍속
당신의 리듬
피아노 수도사
공갈빵
고백
해설 | 바깥의 시
| 고봉준(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빈 그릇에 담긴 것은 다 식은 아침이거나 곰팡이 핀 제삿밥이었다 콜로세움의 노인도 피렌체의 돌계단 아래 핀 히아신스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은 유적의 차가운 발등에 남은 손자국만큼 허허로운 일이나 한 번의 키스는 신화로 남아 몇 개의 문장으로 태어났다 불꽃의 서사는 오래가지 않아서 가파른 언덕을 삼킨 저녁의 등이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지상의 꽃들은 숨쉬지 않았다 눈길을 주고받는 사이 골목은 저물고 나는 입 밖의 모든 입을 봉인하였다 여섯시는 자라지 않고 서쪽은 발굴되지 않았다 삽 끝에 부딪는 햇살들이 비명처럼 날카로워졌다 흙과 돌 틈에서 뼈 같은 울음이 비어져나왔다 오래전 죽은 악기였다 음악을 놓친 울림통 안에서 검은 밤이 쏟아져나왔다 나는 다만 노래를 가지러 왔다
-「악기」 전문
히아신스를 번역하는 일로 일생을 보낸 늙은 학자의 머리칼을 누가 번역하나 몸을 번역하여 끄집어내는 머리올은 가늘고 긴 백색의 문장, 아무리 살펴봐도 글자 하나 남아 있지 않은
구름에 복무한 몸은 지워지고, 천둥 번개를 삼킨 공중과 히아신스를 잡고 있던 손가락은 어디 있나
히아신스가 있긴 있었나 상가를 다녀온 날 검은 머리카락이 평생 중얼거린 말을 한 줄로 요약하는 거미를 본다 흰 거미줄에 이슬방울 하나 걸어놓고 어딘가에 크고 둥근 세계가 있다고 몸을 흔들면서
얼음을 따라가다 종점 근처에 빈 막대기로 서 있는 아이처럼 얼음은 어디에도 없고, 매미 우는 소리에 뜨겁게 달구어지는 햇살은 또다른 오역, 오역의 눈부신 한때였나
히아신스는 히아신스를 떠나고, 늙은 학자의 몸을 번역한 최종본은 소나무숲을 덮은 적설, 솔잎에 얹힌 눈의 무게만큼 밤은 왜 무거워지나 한쪽 눈을 찡그리고 봐도 토씨 하나 보이지 않는
-「오역」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