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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87812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2-07-29
책 소개
목차
승객
붓꽃
합
막연한 각오
사구미 해변
파푸아뉴기니 행성
굿바이 R
해설 | 서영인(문학평론가) 우애와 연대의 분신술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괜찮다는 말은 둘에겐 좋다거나 충분하다가 아니라, 견딜 만하다는 의미였다. 순례는 누가 너를 말리겠느냐는 얼굴로 구호를 쳐다보다가 문득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왜 웃어?”
순례는 구호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구호는 말은 건조하게 하지만 눈 속에 물빛이 어려 있다. 막막한 슬픔을 감정이 아니라 생각으로 바꾸는 눈빛이다.
“그냥.”
네가 냉정해서 좋아,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_「승객」 부분
“자기 할머니와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말하기를, 평생 남들 뒤치다꺼리나 했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산 적이 없다고 하더라. 다른 여자와 사는 것이 자기 삶인 건가. 이상하지, 난 언제나 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내 삶 말이야, 그건……”
정혜는 말을 멈추었다. 윤재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는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거니?”
정혜가 귀에서 손바닥을 떼고 말했다.
“누구에게 해명하고 싶진 않아. 내 삶은, 오직 나의 예술이야.”
_「붓꽃」 부분
소연은 인우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인우가 노래하면서 배에 힘을 잔뜩 주어 복벽을 밀었다가 당기는 게 눈에 보였다. 바람 자는 이 저녁 흰 눈은 퍼붓는데 무엇 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 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 눈은 퍼부어라 저녁때 흰 눈은 퍼부어라…… 인우는 곧 인천으로 이사할 것이다. 다음 계절에 그들은 인천의 어느 낯선 동네를 또 정처 없이 걸어다닐 것이다. 어쩌면 무서운 것은 낡은 집 마루에서 홀로 벌거벗고 밥을 먹던 남자가 아니라 그의 코앞으로 손을 잡고 지나간 중년의 남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텅 빈 데이트의 유령이었다.
_「합」 부분